스승의 날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무슨 자격증이 있냐고 말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끝을 흐렸다. 대학 때 땄던 컴퓨터 관련 자격증, 태권도 1단 품증, 유대인 교육에 심취해 있을 때 땄던 하브루타 자격증.... 딱히 유용하지 않은 몇 가지가 떠오르긴 했다.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가진 가장 전문적인 자격증이 떠올랐다.
2급 정교사 자격증.
마지막으로 자격증을 활용한 건 10여 년 전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몇 년 간의 교사 생활은 나에게 진한 에스프레소 향처럼 여운이 남아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오래 근무하셨던 아빠는 내가 교육대학원에 가는 걸 극구 말리셨다. 그러나 나는 아빠에게 물려받은 피를 거스를 수 없었다. 아빠가 권한 행정실보다는 교실에서 칠판과 분필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아빠는 그때 이 시대를 예상했을지 모른다.
아빠가 교사였던 시절, 나와 동생은 스승의 날이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트렁크에 쇼핑백이 한가득이라 아빠 혼자 들고 올 수 없었다. 집에 오면 아빠는 제자들이나 학부모들이 손수 쓴 편지를 읽었고, 우리는 선물 포장을 뜯느라 정신없었다. 내 선물은 없는데도 나는 멋도 모르고 그저 신났다. 선물은 대부분 아빠가 쓸 손수건, 넥타이, 펜이었다. 가끔 여자 화장품이 나올 때면 엄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집엔 하루가 멀다 하고 졸업한 아빠의 제자들이 찾아왔다. 아빠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밥상을 폈고, 엄마는 익숙한 듯 냉장고에 식재료들을 꺼냈다. 반가운 얼굴의 오빠들이 오면 나는 그날 슈퍼에 가서 과자를 맘껏 고를 수 있었다. 오빠들은 깔깔 웃으며 그 시절 친했던 친구들, 성적이 떨어져 매 맞은 이야기, 아빠가 생일날 책을 한 권씩 사줬던 이야기들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아빠는 길을 가다가 10년 전 제자들의 뒷모습만 보고도 누군지 알고서는 ‘야 이놈아’ 하고 뒤통수를 쳤다. 깜짝 놀란 제자들은 아빠가 자신들의 가정사와 국어 성적, 짝꿍이 누군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더 놀라곤 했다.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한 사람. 서울대를 가지 않았는데도 나를 기억하는 한 사람. 나는 그런 아빠와 제자들을 바라보며 자랐다.
그 시절, 부패도 많았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봉투를 건네기도 하고, 치맛바람도 거셌을 것이다.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친구도 있었고, 학교에서 친구에게 당하는 괴롭힘은 쉽게 묻히기도 했다.
퇴직할 즈음이 되자 아빠는 변화하는 환경에 교사생활을 힘들어하셨다. 내가 교사가 되려는 뜻을 굽히지 않자 아빠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 교생실습을 신청하게 했다. 그리고 배울 점이 있는 선생님에게 나를 맡겼다. 아빠는 교사 생활을 하다 언제든 힘들면 학원으로 나오라고 했다. 수틀리면 빠꾸 하라고,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폭삭 속았수다’ 속 애순이 아빠처럼.
나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10년 전, 그 시절만 해도 학부모들은 나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사소한 일이라면 선생님에게 믿고 맡겼다. 아이들은 내가 어설프고 부족한 선생이어도 자신들을 위한다는 걸, 관심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몇 년이 지나 나는 학교를 나왔고, 학부모가 되었다.
나는 하이클래스라는 앱을 통해서만 선생님께 연락할 수 있다. 연락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선생님과 나는 때로 AI처럼 대화를 주고받는다. 서로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일념을 가진 사람들처럼.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는 이제 서로가 경계하고 각자를 보호해야 하는 삼각관계가 되었다.
얼마 전, 엄마들 몇몇이 모인 자리가 있었다.
“우리 애가 엊그제 나한테 이러더라. 선생님이 칼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야겠다고. 요즘 진짜 무섭다. 학교도 믿을만한 데가 못되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파래질 뻔했다. 함께 모인 학부모 중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별생각 없이 아이와 학부모 입장에서 선 채 뱉은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하늘이 사건 이후로 학교는 교문을 꽁꽁 잠가야 하는 입장에 섰다. 학부모는 방과 후 교사와 늘봄 교사를 의심하게 되었다. 마음이 아팠다. 교단에 선 세상의 수많은 교사들이 한 사람의 큰 과오로 입지가 휩쓸려 가는 것만 같았다. 작은 불씨가 바람에 속절없이 번져가는 산불처럼.
가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일하지 않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복직하면 월급보다 스트레스로 몸 상하고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으니 집에 가만있으라고들 했다.
얼마 전,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전화로 상담을 했다. 시간은 15분 제한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선생님은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자신이 알아야 할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구체적인 질문과 요구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1시간을 얘기할 것만 같은 아줌마처럼 굴고 싶진 않았지만 왠지 다른 얘기는 하면 안 될 것 같아 딱딱해졌다. 공식적으로 교우관계와 학습태도를 묻고, 숙제를 성실히 안 한다고 자식 험담을 살짝 했다. 10분이 지나자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얼굴도 보지 못한 선생님의 말을 끊다시피 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선생님, 어려운 시기에 고생이 많으시죠.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커가는 중요한 한때에 함께 하시는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분이 선생님이라 생각합니다. 힘내시면 좋겠어요.”
“네, 어머니. 말씀 감사합니다. 가끔 저에게 아이들이 이빨이 빠졌다고 가져올 때가 있는데요. 저는 아이들이 이빨 빠지는 시기를 함께 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AI처럼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마지막 몇 분 동안 인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학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주 생각한다. 선생님도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내 새끼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선생님을 향한 신뢰와 존중 없이 내 새끼가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교육열에 힘입어 원어민 같은 영어를 구사하고, 미적분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인재들이 사람을 존중하는 능력 또한 지닐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을 믿고 아이가 성장하는데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들이 교실 안에서 온전히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고 돕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 아이들. 우리들의 삼각관계가 부디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기 초, 선생님이 무섭다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많이 웃으셨어.”
아이도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꽃 한 송이 전할 수 없는 스승의 날,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께 마음의 카네이션을 드린다. 그들이 마음 편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