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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Jan 03. 2024

『월든』이 나를 괴롭힌다

책이라는 낙원에서

독서모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밤이었다.

책을 다 읽지 못해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은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잠자리 오디오북을 요청했다. 어제 읽은 동화책을 뒤로하고 내 책을 가져왔다.


“있잖아. 엄마가 내일까지 읽을 책이 있는데 같이 읽어줄래. 옛날옛날에 어떤 미국 사람이 호숫가에 진짜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살았대.”

“혼자? 얼마나 작은 오두막인데?”

“5평 정도?”

“5평이 어느 정도야. 내 방 정도?”

5평을 설명하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근데 그 사람은 왜 그런 집을 짓고 산 거야?”

“그러니까 그게...”     




그러게 말이다. 왜 그랬을까.

한창 일할 나이인 스물여덟에 소로는 왜 숲 속 호숫가에 다섯 평도 되지 않은 오두막을 지었을까. 그는 2년 2개월 동안 두 손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직접 지은 집에서 혼자 살았다.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보다 싼 생활비로 살기 위해서라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말한 나만의 일이란 무엇일까.

그는 어둠 속에서도 자기 몸을 만질 수 있도록 간소하게 옷을 입었다. 4달러로 문지방이 없고 바닥이 흙으로 된 판잣집을 샀다. 28달러를 들여 굴뚝을 세우고 지붕널을 달았다. 옥수수 가루에 소금만 넣어 옥수수빵을 만들어 먹었다.


여름날 아침이면 목욕을 마치고 해 뜰 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옻나무 향으로 둘러싸여 공상에 잠길 수 있었다.


해가 지는 시각이면 지저귀는 쏙독새,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우리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썩은 고기를 독수리가 뜯어먹고 힘을 얻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인공적인 불보다는 태양열로 몸을 녹여 자신을 쾌적하고 건강하도록 길들였다.


그는 집을 짓고, 먹고, 입는 일에서부터 소박한 삶을 추구했다.

소로는 옷이란 생명과 무관한 속세의 번뇌나 다름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속옷과 러닝, 히트텍과 니트 그리고 조끼와 아우터를 입고 있다. 그 많은 옷들을 고르고, 주문하고, 진열하고, 코디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소로가 우리에게 아파트를 버리고 오두막을 짓고 살라고 한 건 아니다.


정리하고 또 해도 금방 허전해 다시 물건을 채우는 우리 집 팬트리 창고, 먹을 것이 넘쳐나 버리고 버리는 냉장고, 수많은 잡생각이 오고 가는 나의 머릿속... 나에게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정갈하게 정리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건넨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군더더기는 또 무엇일까.


『월든』을 읽은 후, 나에게 머무른 질문이다. 그 질문이 나의 일상으로 스멀스멀 끼어들어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빈한하더라도 감미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내면의 신대륙을 찾을 방법은 무엇인지.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p.135     



『월든』은 내가 읽은 고전 중에서도 가장 나를 괴롭힌 책이다. 을 볼 때도, 옷을 살 때도, 유튜브를 듣다가도, 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도 소로가 한 말들이 떠오른다.


술술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글자가 빽빽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속의 먼지를 털고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려는 그의 탐험을 나는 가만히 앉아 독서하며 누린다.


그저 덜 입고, 덜 먹고, 사람과의 교제를 자제하며 한 사람이 숲 속에 고립되는 것을 바라보는 책이 아니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삶의 구석구석을 건드린다.          


거실 책장에 꽂아둔 『월든』이 나를 자주 응시한다.

월든이 살았던 얼음이 있는 호숫가 옆의 작은 오두막. 상상만으로도 정신이 간결해지는 것 같다.      


마침 새해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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