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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Jan 31. 2023

개인적인 철학

Socrates Express 서평

책 표지에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보인다.

KTX처럼 말끔하고 빠른 고속열차는 아니다. 유럽의 시골 마을을 지날 것만 같은 낡고 느린 기차 그림이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 본건 언제였을까. 기차 시간을 검색할 때면 10분이라도 빨리 도착하고 최소한의 역을 거치는 기차를 고르곤 했다. 이 책은 나처럼 빠르게 이동하고 간편 결제로 편리하게 계산하듯 생각도 후딱 결론 내리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미국의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칼럼니스트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그의 네 번째 책이다. 서울국제도서전 인터뷰에서 그는 철학을 연구하는 학구적인 느낌보다는 좀 더 가볍고 개인적인 철학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다른 어떤 이동수단보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기 좋아한다는 작가는 기차로 철학자들의 자취를 따라 움직인다.




책은 3부로 나뉘어 14명의 철학자들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소크라테스, 니체, 간디, 공자, 쇼펜하우어, 루소... 500페이지에 달하는 그리 가볍지 않은 두께지만 이 책이 술술 읽히는 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철학 이야기임에도 독자가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느낀다. ‘배가 고프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 이끌려 읽기 시작하면 소크라테스에 대해 깜빡하게 된다. 때로는 유명한 일타강사보다 작년에 수능시험을 마친 선배의 말이 현실적으로 더 와닿는 것처럼 그는 솔직하고 유쾌하게 대다수 우리의 모습을 공유한다.


철학보다 스마트폰에 손을 뻗고 수많은 정신의 소음에 시달리는 우리를 대표해 기차여행을 하며 과거의 철학자들을 만나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캐주얼하지만 그렇게 가볍지 않고 인터넷 기사의 제목처럼 자극적이지 않지만 생각을 자극시킨다.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중략) 확실하진 않지만, 철학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하지만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고, 바로 거기에 큰 가치가 있다.

철학은 스파보다는 헬스장에 더 가깝다.

                                                                                                                             p. 10~11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화성으로 여행하고 AI와 소통할 것 같은 미래의 인류에게도 철학이 필요할까.


과거에 내가 읽으려고 시도했던 철학책들은 거대담론의 세계와 범접하기 힘든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책을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가방에 넣어 다닌 이유는 아마도 철학을 일상으로 가져와서 쓰라는 외침이 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이면 따뜻하고 안전한 침대에서 나오는 일부터 보고, 듣고, 걷고, 싸우고 황혼을 맞이하는 순간들에 질문을 던지는 일,  철학에 담긴 지혜를 내 삶에 적용해 보는 일. 아이들에게 정답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뿌듯해하는 일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 일 같은.


저자의 딸이 했던 질문이 뇌리에 남는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가 아니라, 왜 성공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모습이 성공인가. 이 질문은 나를 붙들고 한참이나 놓아주지 않았다. 맞다. 그의 말대로 ‘좋은 질문’은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효를 실천하는 것은 (오직) 효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절이라는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다.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공자는 진심에서 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효도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무게에 몇백 그램을 더 얹는다.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p.314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논어』를 읽다가 시대착오적인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고 매력이 떨어져 중도하차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와이너가 표현한 공자 부분을 읽고 킥킥 웃고 말았다. 헬스장에 가서 복근은 만들고 싶어 하는 1인으로서 마음 깊이 찔렸다고나 할까.




얼마 전에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테리어용으로 좋아 보이는 명화 표지를 보고 읽고 싶은 용기를 내기엔 너무 두꺼웠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철학책에 대한 편견을 깨는 책이었다. 방대한 역사와 철학의 세계를 넘나들며 간결하게 정리하고 독자에게도 덤빌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러셀의 책이 세미정장을 입은 기분이라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청바지를 입은 기분이랄까.


이 두 책의 매력은 철학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에게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해석하기도 한다. 에릭와이너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철학과 연결시킨다.


이 책의 부제는 ‘죽은 철학자들로부터 얻는 인생의 교훈’이다. 저자의 말대로 수백 년 전 철학자들의 지혜는 와인처럼 숙성하는 시간이 걸리고 세월을 거쳐 더 오래 숙성될 것이다.




웃기고 재미있기만 한 영화는 뭔가 아쉽다. 그런데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질문’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게다가 실용적이다. 토익 책만 실용적인 건 아니다. 저자가 철학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비행기는 하늘의 길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만의 동력이 있다. 고속열차는 바람의 속도로 철로를 달리는 자신만의 동력을 자랑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나에게 특별한 동력을 만들어준다.


천천히 달리는 낡은 기차처럼 너만의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라고. 위대한 사상가들이 남긴 깨달음의 시를 듣되 압도당하지는 말라고. 대신 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라고.


지혜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지혜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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