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마포구청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20킬로그램의 삶』(박선아, 어라운드)
사실 그날 어떤 아이템을 들고 갔었는데 카페 고잉홈에서 『20킬로그램의 삶』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서 들고 있었을 거예요. 평소 어딜 가나 책을 들고 다니려고 해요. 책을 펼쳤을 때 공간이든 시간이든 내 의지로 분절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특히 좋아하거든요. 물론 박선아 작가님이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은 맞아요. 세상과 세상을 둘러싼 사람, 사물, 자연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굉장히 따듯해요. 솔직하죠.
인터뷰에 임할 때마다 호기심은 한정 자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궁금해하는 태도는 전문적으로 길러질 수 있지만, 사람에 끌려서 묻게 되는 건 조금 다른 영역이다. 질문에는 미리 인터뷰이를 읽고, 상상해보고, 가늠해본 시도가 담기게 마련이라, 때로 이 과정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았으나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가정해보고, 그 사람이 느끼고 혼자 품어야만 했던 감정과 사건들을 같이 느껴보면서 말이다. 그건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서 때때로 나조차 놓치곤 한다. 내가 인터뷰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현경 님은 내게 사람에 관한 호기심이 큰 것 같다고 말하며 품고 있던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면서 생각하느라 시선이 왼쪽 위를 향했다.
호기심은 이 사람을 파헤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이 사람의 적당함을 알고 싶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꼭 들어맞는다는 의미의 적당 말이다. 그건 쉬이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묻고 다시 묻고 세밀하게 물어야 알아갈 수 있다. 만약 인터뷰에서 서로 호기심을 드러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건 보이지 않는 티키타카다.
간단한 본인 소개와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을 알려주세요.
이름 뜻을 좋아해서 풀어보자면, 한자로 어질 현(賢), 굳셀 경(倞) 자를 써요. 이름에 맞게 살려고 무던히 애쓰는 편이에요.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은 이번 달 말이면 꽉 채워서 3개월이 돼요. 이직을 위해 퇴사를 선택했기에 구직활동 중이에요. 하지만 매진하고 있다고는 못해요. 생애주기에 맞는 적당한 역할이나 지위를 가지려 애쓰는 사람처럼 보이고자 하지만, 어떤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있거든요. 회사를 지원하는 주기도 길고 충분히 알아본 다음에 마음이 가는 회사에 지원하는 편이기도 해서 굼뜨게 행동하게 되네요. ‘꼭 조직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병행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현경 님은 무소속으로 지내는 동안 어떤 루틴으로 지내시나요?
일단은 이 생활을 유지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웃음). 퇴사 후 몸과 마음에 안정이 찾아와서 좋아요. 수시로 배탈이 났던 지난해 겨울에 비하면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죠.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워 나가고 있고, 사람들과 전보다 더 부대끼며 지내고,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느껴요. 감사한 것도 매일 늘어나고요.
직장생활을 한 번밖에 안 했지만 그동안 제가 지워진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무소속으로 지내는 3개월간 자율적으로 루틴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고, 가족들과 함께라 패턴을 가지고 살 수 있더라고요.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번번이 해보고요. 9 to 6으로 일하는 사람처럼 그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운다면, 주로 글 쓰거나 책 읽는 일이 업이 되길 바라요.
학생 때 수업 시간으로 하루를 잘게 쪼개듯 하루 중 8시간을 쪼개서 생활해보자고 생각했어요. 해보니까 저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부채감이 큰 사람이더라고요. 2시간 동안 하기로 했는데 완성하지 못하면 계속 붙드느라 다음 일로 넘어가질 못했어요. 못한 부분에 무한정 시간을 할애하지 말고 다른 일로 넘어가 보면서 골고루 진행해보려고요.
그러면서 생긴 고민도 있을까요?
제일 자주 생각하는 건 경제적인 고민이죠. 지금은 퇴직금이나 실업급여를 받아서 생활을 유지하는데요. 제 생활비만큼은 스스로 충당하자는 게 제 모토라 앞으로는 이 삶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생겨요.
그러면서도 잊지 않으려는 건 ‘계좌잔고의 압박에 쪼들려서 어딘가에 바로 취직하지 말자’예요. 첫 직장이 그런 이유로 들어갔었던 게 컸거든요. 당시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서, 도와드리진 못해도 지원받지 않아도 될 만큼 자립하자고 다짐했거든요. 무소속으로 지내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계속 지내고 싶다’라는 마음이 결국 방법을 찾게 한다고 봐요. 경제적인 독립이자 자립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계기가 있나요?
한 살 한 살 나이 먹으면서 부모님이 제 나이 때 어땠을지에 비추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늘어요. 엄마는 지금 제 나이인 27세에, 아빠는 28세에 결혼하셨거든요. 가정을 꾸려서 오빠와 저를 낳고,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나 역할이 생긴 거예요. 그걸 감당해 나가는 부분을 자주 더듬어 보곤 해요. 저는 아직 조급하지도 않고 진로, 미래를 고민할 때 저만 놓으면 되는데, 부모님은 보호자가 됐고 가정을 꾸렸다는 이유로 여러 몫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아빠가 저랑 성격이나 감수성이 비슷하다 보니 아빠를 볼 때 여러 생각이 들어요. 질풍노도의 생애를 보내셨기에 40대까지 방황하면서 일을 많이 쉬시고 술에 의존해 지내신 기간도 꽤 길어요. 만약 지금 청년 세대가 30~40대에 그렇게 보낸다면 방황한다고 표현하고 언제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할 텐데, 당시에 아빠는 역할의 무게로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겠다 싶더라고요. 하루라도 빨리 아빠 개인만 생각하는 삶, 엄마 개인만 생각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독립을 떠올린 거죠. 그렇다고 두 분을 위해서만은 아니고 저 역시도 독립하면 자유로워지겠다는 판단에서요.
저는 장녀라 그런 마음을 품을 때가 잦아요. 대체로 제 주변 장녀들은 그런 종류의 책임감을 느끼더라고요. 부모님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고 생계가 됐건 복지가 됐건 자기 일처럼 여기는 거죠.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삶을 1순위로 두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서 씁쓸할 때가 있어요. 그게 나쁘다, 좋다는 문제는 아니고, 이기적이어야 될 때조차 무리해서 가족을 먼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정도.
맞아요.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걸 어려워한다는 생각도 했고 그걸 핑계 삼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도 여겼어요. 부모님 때문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일을 선택할 때도 당장 급하니까 취직한다는 게 결국 부모님 때문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는 거니까요. 겁 나는 걸 상황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게 아닐까 싶어서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우선으로 하자고 마음을 정리했어요.
무소속 기간이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줬나요?
완전히요. 무소속이 아닐 때는 하는 일과 이 생활로써 얻어지는 안정밖에 눈에 안 들어왔어요. 동시에 괴로웠죠. 일하는 동안 공공에 보탬이 된다고,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때부터 매너리즘이 생기고 이 일과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만두니까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좋았어요. 심신이 건강해지고 여유도 생기면서 그동안 제가 잊고 있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거든요. 하루하루 좋아서 이 생활을 더 유지하고 싶다, 나를 우선순위로 두는 게 결국 나에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직해야겠다고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미란 님처럼 저도 에디터가 되고 싶어요. 아직 관련 계통에 일 경험이 없어서 조직에 들어가 일을 배워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첫 직장에서 20개월 정도 일해보며 조직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다방면으로 많다는 걸 알았거든요. 다른 조직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싶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인 기사를 쓴다든지 에디터로서 하는 일련의 일을 겪어보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풀인지 가늠하기 위해 우선 조직에 들어가야겠다는 판단으로 이직을 마음먹었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콘텐츠 제작을 병행하면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요.
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이 커다랗게 다가와서 시작조차 못 할 때가 많은데요. 구직활동 때 되지 않을 것이 두려워 에디터 직무가 아닌 비슷한 직무를 지원한 적도 있어요. 이런 제 문제를 알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삶이 더욱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또 나중에는 책방을 꾸려보고 싶어요. 책방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모임들이 있으니까요.
글 쓰는 직업 가운데 왜 에디터였어요?
학부 때 쓰던 글쓰기가 학술과 산문 사이였다고 할까요? 전공이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이라 학술적인 글과 산문, 감성이 섞인 글을 섞어서 쓸 수 있었어요. 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해 거기서 주제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에 빗대어 얘기하다 보면 객관적인 글, 딱딱한 글을 벗어나는 중간 지점의 글을 쓰게 돼요. 글 쓸 때 참고하는 자료로 논문도 있지만 매달 주제를 정해서 발간하는 잡지도 많았어요. 특히 <어라운드 매거진>을 좋아해서 박선아 작가님의 글을 즐겨 읽었죠. 마냥 세상이 따뜻하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따뜻하다, 어떻게 해서 살 만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의 글을 주로 읽었어요. 그래서 에디터가 되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에디터로 일하고 싶다는 출발점이 잡지였을 뿐, 꼭 잡지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에요. 막상 에디터로 일해야겠다고 정하고서 채용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콘텐츠 에디터가 대부분이었어요. 하는 일은 대체로 마케터 성격이 강했고요. 아무래도 웹 기반으로 홍보하는 일이 주가 되는 시대이다 보니 SNS 채널 관리하는 것도 에디터의 일로 포함되더라고요. 글이야 어떤 형식이든 쓸 수 있겠지만 ‘일하는 동안 회의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고려하면서 회사를 보고 있어요.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회사를 꼼꼼하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됐죠.
쓰고 있는 글이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전 직장이 도시재생 사업을 주로 하는 곳이라, 주민분들 만나서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그 과정에 재미를 느꼈고, 팀장님께서 제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셔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어요. 배운 적은 없지만 인터뷰나 관련 원고를 썼고, 2019년에 개인적으로 독립출판물을 제작했어요.
우와 독립출판이요? 제목이 뭐예요?
『삶이 가엾다가도』예요. 지금은 팔지 않는데 보여드리려고 가져왔어요. 2~3년 동안 쓴 글을 모아서 엮은 산문집인데요. 제목에는 제 삶의 태도가 담겨있어요. 하루하루는 우울하고 불행한데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돌아보면 이런 데서 감동하고 이런 데서 아름다운 걸 발견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좋아하고 만나는 것도 좋아하니까, 내 삶이 가엾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결국 하고 싶은 말이에요. 수록된 글 제목을 표제로 택했죠. 올해도 책을 만들고 싶은데 따로 시작한 건 없어요.
직업인으로서 글을 써서 당장 돈이 되게끔 하는 활동은 아니라도 책 한 권을 만들어 보신 게 큰일 아닐까요. 글을 썼고 그걸 갈무리해서 책에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에디터뿐 아니라 편집자의 역할까지 도맡는 거잖아요. 에디터로 이미 역량은 다 갖추신 것 같은데요(웃음)?
에디터로 일하고 싶은데도 떨어질 걸 걱정해서 지원해 보지 않았다고 하셨죠. 현경 님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는 뭘까요?
최근에야 확실히 마주한 것 같은데, 제가 온 마음을 다한 작업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걸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일도 비슷하게, 간절히 원하는 일에 지원했는데 잘 안되고 거듭 실패하다 보면 상처가 클까 봐 피했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계속 시도하는 단계예요.
작은 실패 경험이 쌓여 두려움을 만든다면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야 나를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는 선택을 한다고 하셨죠.
선택에 따라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모든 일에는 배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손해 보더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제 가치를 기준 삼아 후회 없는 선택인가, 미련 없는 선택인가 가늠하곤 해요.
예전에 중고 거래를 하다가 사기당한 적이 있어요(웃음). 맥북을 사는데 직접 거래하지 않았거든요.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그런 고가의 거래는 당연히 만나서 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기도, 사람을 잘 믿기도 했죠. 통화했을 때 사람 좋다는 느낌만으로, 나를 이렇게나 배려해 주니 사기이더라도 교훈 삼으면 된다고 여기고 단숨에 믿었어요. 거래가가 100만 원이라 앞뒤 재지 않은 것도 있겠죠. 너무 갖고 싶으니까. 아빠가 제게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으니까 괜찮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말하지 못하고 며칠간 숨겼던 게 속상하다”라고 말해주셔서 금세 털어낼 수 있었어요.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제는 그렇게 안 하겠지만요.
작년에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성수역에서 한 아저씨가 급히 부산에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려 돈이 없다고, 전화번호랑 계좌번호 알려주면 갚겠다고 도와달라는 거예요. 얼마가 필요하시냐 물었더니 기차표는 5~6만 원 하는데 넉넉하게 달라고 해서 10만 원을 인출해서 드렸어요. 문득 이게 사기면 어떡하지? 근데 다급하다는데 어떡하지? 고민했지만 결국 믿어보기로 택했어요. 주면서도 반은 포기했는데 사기더라고요. 그 뒤로 친구들한테 바보 소리를 듣지만(웃음) 저는 이런 일도 있어야 다음에는 또 안 그러겠지, 대꾸해요.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거지,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돼서 다른 친구가 그런 일을 겪으면 공감해 줄 수 있잖아요. 제가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사기당하는지 의아할 테니까요.
사소한 에피소드에서도 현경 님이 타인을 신뢰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시대의 분위기에서 점차 실용성, 가성비를 따지고 사람을 사귈 때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태도를 읽곤 해요. 손해 본다는 차원을 넘어서, 마음 내줄 여지조차 없다는 느낌이요.
최근에 비슷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더라고요. 택시 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였고, 한 남성이 아내 출산 비용 1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선뜻 돈을 줬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본 사람들의 반응은 도대체 돈을 왜 주냐는 거였어요. 저는 분개했죠, 아니 사기 친 놈이 나쁘지 왜 도운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냐고요.
저는 좋은 영감을 주거나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은 문구나 문장들을 틈틈이 수집하는데요. 더 나은 걸 고민하거나 곁에 두지 않으면 결국 사람은 계속 나빠지는 듯해요.
참 중요한 일이에요. 나빠지지 않는 거. 나빠지는 걸 쉽게 바보 되지 않는 거로 생각하는 게 안타깝죠. 세태에 맞춰 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내 양심과 소신껏 거리 두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동체도 고민하신다고요. 단순히 사람이 좋고 어떤 관계를 계속 맺고 싶은 데서 나아간 영역이다 싶어요.
전공 공부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문제에 관심이 커졌어요. 범죄면 범죄 사회학, 가족이면 가족 사회학, 환경이면 환경 사회학… 이런 식으로 앞에 갖다 붙이면 다 전공과목이 되니까, 사회의 면면들을 세부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죠.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곤 했는데 유독 흥미를 둔 부분은 사람과 관련된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 같은 주제요. 한국 사회에 굳게 자리한 불평등, 여러 문제 등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통해 다양한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을 고민하며 지냈어요. 건강하고 안전한 울타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시기예요.
여대를 다녔는데, 전공 수업 중에 조별로 서로의 기분을 묻는 것부터 시작해 자기 경험을 꺼내는 시간도 있었고, 여성이 스스로 과도하게 몰아붙이는 성향이 있는 부분에 관해 얘기하면서 서로 풀어주는 시간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옛날처럼 부대끼면서 사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나누고, 공동체라는 주제에 늘 관심 뒀죠. 사회, 그에 소속된 개인 간의 연대, 공동체를 이루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교수님들이 강조하시기도 했고요. 도시재생 일할 때도 공동체 활성화 팀에서 일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게 하는 접근을 자주 시도했어요. 평소 읽는 책도 그런 분야고요.
현경 님의 삶에 중요한 키워드인 폭력과 우울에 관해 얘기해볼까요. 구체적으로 학교 폭력이잖아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 경험하는 것 같아요, 가해자든 피해자든 방관자든. 지금의 본인에게 분기점이 된 부분에 관해 풀어주실 수 있나요?
돌아보자면,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워낙 좋아해서 무리에 들어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른바 노는 애들이라고 불리는 애들과 같은 무리를 이뤘죠. 초등학생 때부터 싸우거나 말썽을 많이 피웠어요.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 도토리를 뺏고 뺏기는 일 같은 거요.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날이 잦았는데, 어떤 날은 제가 괴롭힘을 당해서 오시고, 어떤 날은 제가 괴롭혀서 오실 정도였어요.
한 번은 중2 겨울에, 중3 언니들이 다 모이라고 해서 맞은 적이 있어요. 그간 저는 배제돼서 몰랐는데 친구들은 선배들한테 주기적으로 맞았더라고요. 그러면서 너희도 후배들 불러서 혼내주라고 하기에 하루 사이에 3학년에서 2학년으로, 2학년에서 1학년으로 일방적인 폭행이 이뤄졌어요. 그날 연루된 사람이 워낙 많아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상황이 커지자 그제야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어요. 그러고 얼마지 않아서 친한 오빠가 그와 비슷한 일로 죽는 일이 벌어졌어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복잡했죠. 만약 제가 피해 경험만 있었다면 가해자를 죽일 놈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저도 가해자였던 면이 있기 때문에 그게 내 일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워낙 익숙해서 못 느끼다가 제삼자가 다치고 심지어는 죽는 걸 목격하면서 모든 게 잘못돼 있음을 안 거예요. 오빠에게, 제가 아픔을 줬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폭력의 심각성을 크게 깨달았어요. 그 뒤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에 관해 배우고, 만회하는 삶에 의무를 지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괴로움을 혼자 감당하면서 삼켜야 했던 거잖아요. 우울이라는 걸 언제쯤 알게 되셨어요?
이후 엄마는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라고 고등학교를 다른 데로 보내셨어요. 아주 친한 친구는 5살 때부터 알고 지낼 만큼 작은 동네였거든요. 중학교도 한 반뿐이라 9년 넘는 시간을 함께 지냈고요. 그런 친구들과 떨어졌으니, 당연히 힘들죠. 보통 그런 일은 20살에 겪는데 저는 고작 17살이었어요. 주말마다 집에 갔다가 일요일 밤이면 울면서 제발 전학 보내달라고 했어요. 무려 1년간이요. 폭력, 외로움부터 시험까지 하나하나 중압감이 엄청나서 그 괴로움들을 기숙사에서 혼자 삭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울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해요.
22~23살쯤에 우울하다는 감정을 인지했어요. 중고등학생 때와 비슷하다고 기억한 거죠. 중학생 때 엄마 아빠가 싸우면 저는 침대에 누워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울었어요. 너무 무서운 상황이고 싫은 상황이니까. 20살 이후에야 돌이켜보면서 내가 그때 우울했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심리상담을 받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 있어요?
중학생 때는 가정에 그런 일이 있어도 표가 안 났어요. 학교 가서 친구들 만나면 괜찮기도 했고 전날 울더라도 눈이 잘 붓지 않아서요. 그러다가 상담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제게 해주신 얘기가 있어요. 어머님과 아버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네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과하게 몰입하고 있다고요. 당시에는 어린 맘에 선생님이라면서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의아했고 상처였는데 지금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는데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방법도 과거 상담 선생님의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 보고, 구분해서,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쪽으로 생각을 진전시키라고요. 그렇게 하는 게 실제로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전만 해도 우울하다, 어쩌지, 진짜 너무 힘들다 하는 부분에만 매몰돼 있다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에 초점을 맞추는 훈련을 계속하니까.
‘우울이 내 정체성 중 하나’라고 표현하신 것도 인상적이에요. 그게 우울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해요.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를 좋아해요. 『멀고도 가까운』이란 책을 접한 게 23~24살쯤이었거든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작가가 느낀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특징은, 어머님이 작가를 시기 질투한 거예요. 여성으로서 본인이 갖지 못한 걸 딸이 가졌다는 것에 시기하고, 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죠. 보통은 가족을 미워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잖아요. 그런 면면을 촘촘하게 써 내려간 걸 읽으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어요. 이렇게나 솔직하게 다 표현할 수 있구나, 나도 우울을 외면하고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동반하는 존재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우울하고 슬픈 게 개인으로 보면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할 능력을 길러주기도 했어요. 저는 그래서 좋거든요. 누군가의 우울이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래서 정체성 삼을 수 있었던 듯해요.
저도 제 어린 시절의 경험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예민한 감수성으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결론을 나 스스로 맺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은 참 다행이라고 느끼고 또 그걸 잘 쓰고 싶다고 여기곤 해요.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언젠가 그 얘기를 풀어내고 싶다고 자주 생각해요. 제가 쓴 책을 가족에게 보이고, 지인들한테만 판매했는데요. 엄마나 아빠가 나빴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고, 책 말미에 지금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썼는데도, 책을 다 읽은 부모님이 엄청나게 미안해하셨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아는 동생의 어머님도 제게 장문의 카톡으로, 저를 통해서 자기 딸을 이해하게 됐고 미안한 것도 많이 느꼈다고 얘기하셔서 놀랐어요. 부모님 얘기가 많지 않은데 읽는 입장에서는 그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갔구나 싶었죠.
그래서 지금은 신중하게 그 이야기를 풀어가야겠다 싶어요. 글로 표현된 상황을 그 관점으로밖에 볼 수 없게끔 한 게 아쉬워서 주의를 기울일 생각이에요. 저는 그 부분이 다 정리됐고 원망이 없거든요. 엄마, 아빠를 개인으로 봤을 때 분명히 괴로웠을 테고 헤쳐 나가야 하는 일 중 하나였을 텐데, 부모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피해 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어려운 이야기인데 꺼내주셔서 감사해요.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로 22년 지기 친구도 있고 아빠도 있고 작가분도 있는데요.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꼽아주셨더라고요. 좋은 점들이 엄청나요.
새로이 알게 된 건데, 저는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쓰는 걸 즐기는 편이더라고요. 좋은 것들이 더 많았음에도 쓰면서 많이 덜어낸 거예요(웃음). 그는 선입견이 없고, 늘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람이었어요. 잘 아는 것에 관해 말할 때도 겸손을 잃지 않고 신중했으며, 다정의 기본값이 참 높고 안전 감각도 뛰어났어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웃음 포인트가 잘 맞았죠. 그 사람이 가진 면면이 모두 좋아서 제게 귀감이 되었고, 차차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 시작했어요. 사소한 하나하나에서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구나, 이런 부분도 신경 쓸 수 있구나 싶었어요.
워낙 챙겨야 할 게 많은 민감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나 봐요. 저는 무딘 편인데 누군가가 절 챙겨주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다,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시야를 넓혀준 덕에 이후로 연애관도 바뀌었고요. 비록 마음의 크기가 같지 않아서 관계가 발전되지 못했지만 헤어질 때도 가르침을 준 사람이에요.
현경 님에겐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현경 님과 관계 맺는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좋은 것을 자꾸 수집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셨다는 인상이 들더라고요.
사주를 공부하는 언니가 해준 말이 있어요. 제 사주팔자에 맺고 끊는 글자가 없대요. 어떤 사람은 끝났을 때 그걸 제때 정리하고 씻어내는 일을 잘하고, 또 어떤 사람은 헤어졌는데도 사진 못 지우거나 못 버린다는데 저는 후자래요. 그러면서 네가 그런 걸 미련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팔자가 없는, 글자 탓을 하라고 했어요(웃음). 절반 정도는 팔자 탓이고, 절반 정도는 제가 살아온 모양이 그랬던 것 같아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 된 데는 아빠의 영향을, 행복해서 나는 눈물,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는 눈물 등을 알려준 동시에 무한한 사랑이 무언지 알아가는 데는 22년 지기 친구 아름의 영향을, 쓰는 일에 관한 무게와 의미, 그 영향 등을 고민하고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는 자유로운 감정을 느끼는 데는 백은선 작가님의 영향을 받았어요.
맺고 끊는 것과 그 기억을 좋게 남기는 건 다른 영역 아닐까요? 사진첩에 좋은 순간들을 모아놓듯이 사람들의 면면을 그렇게 모으는 거죠. 그래선가, 어른에 대한 기준이 구체적이기도 해요.
저는 어른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 자기 삶에서 더 나아가 타인의 삶을 물리적, 정신적 차원에서 책임지는 사람, 자신의 행동과 말이 어떤 영향을 낳는지 의식하는 사람, 실수와 미숙한 점이 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 잡아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중 만회하는 삶을 먼저 꼽고 싶어요.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에 관해 배우고 만회하는 삶에 의무를 지게 되었다고 말했는데요. 제 생 내내 계속 있어야 한다,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만회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저한테는 어른이 되는 길과도 같아요. 제가 하는 행동이 어떤 영향을 낳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에요. 지금의 저를 두고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을 계속 가고 싶고, 누구나 실수하거나 잘못할 때 그걸 외면하지 않고 바로 잡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그걸 계속해 나가는 거, 언행일치가 정말 어렵죠.
되게 어려워요. 오빠랑 서로 생각도, 가치관도 판이해서 종종 언쟁하곤 해요. 한 번은 저더러 왜 집에서까지 좋은 사람이려고 하느냐고 해요. 그건 제 삶의 지향이거든요, 사소한 대화를 나눌 때조차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말해야 한다는. 설사 착한 척이라 할지라도 일상 대화에서조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얘기할 수 없다면 사회적 규범이 강하게 작동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여기는 편이에요.
그 부분이야말로 현경 님이 버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 삶의 큰 줄기 아닐까요? 저는 도덕성, 예의, 사회화를 같은 궤라고 보는데, 인간 본성이라 부르는 소위 날것들은 사회화가 덜 된 거로 여겨요. 야만에 가까운 상태죠.
진짜 딱 맞는 말이에요. 그건 야만적이에요(웃음). 그래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그런 톤을 가진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려 해요.
예전에는 삶을 버티는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배부른 소리 같다고, 힘들어서 버티는 게 고작이다 싶었어요. 무소속으로 가만히 지내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무언가 발견하고 감사함을 느껴보니, 나도 여한 없이 잘 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뭐랄까,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의욕이 생겼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제게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크고 진솔해요. 이 마음은 다시 저에게 충만함을 느끼게 해서 매일 시간을 내어 감사일기를 쓰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반려견 이름이 복덩이죠?
네 맞아요. 계정도 있거든요. (계정에 업로드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생겼어요. 얼굴에 기복이 있는데 정말이지 귀여워요(웃음). 몸통이 약간 길거든요. 이렇게 아기였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커졌어요.
함께 사는 반려견 복덩이를 보면 너무나 좋은데 가슴이 아파지곤 해요. 얘를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는 거예요. 볼 때마다 예쁘고, 더 잘해주고 싶은데 방법은 잘 모르겠고, 아찔해요. 가끔 아빠한테 얘기하거든요. “아빠, 난 얘를 보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고 가슴도 아프다, 절절한 게 있다.” 그랬더니 아빠가 저를 보면 꼭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항상 우물가에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이래요. 앞으로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했어요. 복덩이 덕분에.
멋진 일이네요. 대단한 결심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존재가 아직 없어서 그걸 알려면 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현경 님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에 관해 골몰하고 집중해서 고민하는 분이라는 인상이 남아요.
제 MBTI가 ENFP라(웃음)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좋아해요. 전에는 누군가 만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 만큼 혼자 있는 걸 어려워했죠. 코로나 시기를 맞으면서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해보면서 나아졌어요. 어디선가 본 이야기 중에, 어떤 성향이 혼자 있는 게 편하다면 그건 MBTI 때문이라기보다 누군가와 관계 맺지 않아도 스스로 충만한 상태여서 그렇다고 해요. 저는 관계를 통해 채워지고 바로 서게 되는 면이 있다는 걸, 자신을 채워가는 루트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는 걸 알았죠.
또 공동체를 중시하는 면도 있어요. 사람은 절대 혼자 못 산다, 혼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걸 문자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써 직접 살아나가고 싶어요.
티키타카 속에서 나는 현경 님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쉽게 사람을 믿지 않으며, 허락된 사람에게만 마음을 주는 모습을. 현경 님이 간절하게 원한 일을 하지 못하거나 상처받을까 봐 지레 피했다는 말처럼, 나는 사람을 믿는 데서 상처받을까 봐 지레 피해왔다. 그런 점에서 인터뷰는 공과 사가 혼재된 안전한 장소다. 그 순간만큼은 믿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삶에서는 다르다. 사람을 만나는 영역이 방대하고 관계의 끝도 언제가 될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자꾸 재면서 몸을 사린다. 세태를 탓하지만 이미 내가 그 세태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며 현경 님이 삶으로 드러내는 타인을 믿는 일,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낼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는 태도는 아주 귀하다.
그가 수집하는 매일 감사일기에는 자신을 향한 존중, 좋은 사람들의 면면, 흘려보내기 아까운 순간들이 포착돼있다. 그저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보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누군가는 기쁨에 미소 짓는다. 삶의 본질이 뭔지 평생 고민하며 살아갈 때 그의 삶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우선 나는 그 힌트를 한동안 굴려볼 생각이다.
반려견 복덩이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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