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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l 12. 2022

6 SAENANSEUL : 마이너리티에서 프라임넘버로

2022.04.15. @목동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에요. 프리랜서분들이라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긴 해요. 일하든 누군가와 연락하든, 노트북이 없으면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어요.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데서 오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이돌의 3분여 퍼포먼스, 피아니스트의 90분여 연주, 연극배우의 110분여 연기 등 그 무대를 오롯이 책임지고 관객을 만족시키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몸을 유려하게 다루어 그걸 지켜보는 상대의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기에 그렇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객석보다 높은 곳에 있고,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며, 공연을 마치면 박수가 쏟아진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지켜보고 있기에 긴장감이 팽팽함은 물론, 실수하면 금세 느슨해져 만족도가 떨어진다. 과거 새난슬 님 역시 무대 위에 오르는 게 당연하고 그 긴장감을 감내하는 게 즐거움이라 여겼다. 타인이 자신을 봐주고, 칭찬해주고, 그로써 생동감을 느끼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기회가 한 번뿐인 순간이 계속될 때, 무한히 늘어날 듯 보이던 고무줄이 핑, 끊어지듯 알아차리고야 만다. 그 삶에 부재한 것, 그러니까 나에게 필요한 것. 그에게 필요한 건 관계와 지지와 글이었다.







일, 커리어로 나를 보려 한 이유가 궁금해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한창 일하는 게 좋은 때예요. 쉬지 않고 일하면 힘들 법한데도 힘들기는커녕 상태가 괜찮아요. 어제는 12시간을 일했는데도 괜찮더라고요. 나도 남들처럼 일했다는 성취감이 느껴져서 오히려 좋아요.


지금 내 상태나, 일하는 게 좋다는 말이 듣기 좋네요. 저도 일할 때의 저를 좋아하거든요. 문득 일하는 데 집중한 나에게서 시선이 분리되며 지켜보는 듯할 때! 뿌듯하고 커리어우먼이 된 것 같죠(웃음).

맞아요. ‘나 일하는 사람이야, 백수 아니야’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기분! 인터뷰를 통해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남들도 불안하구나’를 알면 안심이 되더라고요. 프리랜서, 그러니까 무소속은 회사가 없으니까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없거든요.


새난슬 님은 무소속으로 지낸 지 얼마나 되셨어요?

2020년부터요. 대학 졸업하고 곧장 취업 준비를 했는데 줄곧 떨어졌어요. 쇼핑몰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쇼핑몰 아르바이트로도 일해봤죠. 같은 해 12월에 불현듯, 어차피 원하던 분야로 취업 준비한 게 아니었고, 번번이 떨어졌으니 내가 붙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나 지인도 없고 실력도 없고 플랫폼도 없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지만, 1년 안에 뭐라도 결과를 내서 나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때 처음 글을 썼어요.


그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주변에서 공무원이나 간호사를 해보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물론 저희 엄마도, 애인도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돈만 벌면 막노동을 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셔서요. 그런 제언이 강요는 아니었고 제 선택인 셈이에요.

예전부터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글 쓰는 게 좋은 사람은 책 읽는 것도 좋아하잖아요? 마침 학창 시절 유일하게 상을 받은 분야가 글짓기나 다독이라 자연스럽게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 때문에 무소속을 선택했나요?

여태 가장 오래 일한 곳이 쇼핑몰 회사 사무보조 알바였어요. 대표 1명, 정직원인 언니 2명, 저까지 4명이 일하는 작은 규모였죠. 모두 좋은 분들이었음에도 문제는 제가 자잘한 실수를 매일매일 저질렀다는 거예요. 작은 실수도 큰일로 이어질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화를 내실 법한데 다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곤 했어요. 어떤 날은 메신저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서 그건 제 잘못이 아니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씀해 주시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배려받고 좋은 환경에서 일했는데도 일하는 동안 우울증이 왔어요. 사람들도 좋고 일도 어렵지 않고 보너스도 많이 주시는 등 좋은 것투성이지만, 한 가지가 견디기 힘들었어요. 제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는 루틴이요. 운 좋게 다른 회사에 취직한다 해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처럼 좋다는 법도 없거니와 제가 그 고정된 루틴으로 생활하는 일을 견딜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됐어요. 정해진 곳에 소속되어서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 때문에 차라리 알바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 일을 통해 나에 관해 뚜렷하게 알게 된 셈이네요. 요즘은 자의적으로 시간을 쓰시나요?

네. 3월부터 정기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일을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가끔 알바하거나 말 그대로 개 백수 상태로 지냈죠(웃음).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모두 원고를 작성하는 거예요. 이런 일이 좋은 점은, 마감일이 일요일이면 일을 수요일에 하든 금요일에 하든 상관없다는 거예요. 장소도 집이든 카페든 무관하고요. 저와 정말 잘 맞는 부분이었어요. 직장인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보수지만, 이 메리트가 있는 한 계속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멋있는데요! 다만 소속이 없으니까 일을 설명할 구체적인 타이틀이 없고 지금까지의 언어로는 백수, 프리랜서, 글은 쓴다는 설명 정도인 거죠. 본인만의 수식어나 더 좋은 표현을 붙였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무슨 일하냐 물으면 대개 대리나 주임 등 직책을 말하면 되지만, 저는 집에서 일한다고만 해요. 글을 쓰니까 글 쓴다고 말하고요. 뒤이어 어떤 글을 쓰냐고 물으면 자세히 대답할 수가 없어서 곤란해요. 계약상 세부적인 내용을 발설하면 안 되는 것도 있어서요. 설명이 장황해지니까 저만의 이름이 있으면 확실히 편하겠네요.


뚜렷한 하나는 결국 글쓰기. 청탁받으면 글을 납품한다!

맞아요(웃음). 며칠까지 이런 주제로 글 써달라고 하면 네, 하고 임하죠. 어디선가 그런 표현도 봤어요. 글로 노동자! 근로 노동자인데 변주를 준 거죠. 되게 괜찮은 표현 같더라고요.


창작에 관해 여쭤볼게요. 진로 때문이 아니더라도 연기하고 싶었다고요. 그런데 취미로 남겨두려는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는 매일매일 꿈이 바뀌었어요. 글쓰기를 하나의 목표로 삼기 직전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학원에서 연기를 배웠고 극단에 들어가기도 했거든요. 이제는 글쓰기가 더 좋아졌으니 연기는 취미로 남겨두려고 하는데요. 사실 제가 관심받는 걸 좋아해요(웃음). 입시 준비할 때 연기한다고 소개하면 모든 애들이 제게 관심 보이며 물어보는 상황도 좋고,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이 저만 보는 상황도 좋았어요. 게다가 칭찬까지 해주니까 좋은 건 물론이고 내가 잘한다고 여겼어요.

그러다가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도저히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왔어요. 서울시에서 청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신 상담을 받다가, 선생님께 이 부분을 처음 얘기했어요. 연기할 때는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연기를 못하고 살면 죽을 것 같다고 스스로 세뇌하면서 지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를 안 해도 살 수 있음을 알았다고, 너무 과몰입한 것 같다고요. 만약 연극배우가 되면 무대에서 실수 없이 연기해야 할 텐데,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자신감이 뚝 떨어지기도 했어요. 연기학원에 다닐 때 경험한 것처럼 소위 인싸들 사이에서 사는 것도 싫고, 특히 연영과 여자에게 강요되는 면들을 감수하는 것도요. 성추행도 여러 번 당했거든요. 다 질린 거죠. 여자들끼리 취미로 모여서 가볍게 연기하는 게 좋지, 업으로 삼으면 도리어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다른 길을 찾아야 했어요. 할 이유가 없어진 것, 결과적으로 제가 글쓰기를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연기는 취미로만 남기기로 한 거고요.


책이랑 친하다고 해서 글쓰기가 단박에 붙지는 않거든요. 어린 시절 글쓰기에는 어떤 기억이 있어요?

기억도 안 날 때부터 글을 썼어요. 학교에서 여는 대회는 주로 글과 그림으로 분야가 나뉘잖아요? 저는 언제고 글을 선택하는 애였어요. 다른 영역에서는 칭찬을 들어본 일이 없는데 대회에 제출한 글만큼은 선생님들이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상도 여러 번 받았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칭찬받은 기억이 도화선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관심사가 연기에서 글로 옮겨가면서 내심 글과 연기를 비교하게 돼요. 둘 다 창작임에도 연기는 상대의 눈앞에 몸으로 보여주는 일이라 결과물이 한순간에 결정되고 판단된다는 지점이 있어요. 준비하는 과정부터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일인데다 연극 연기는 보통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는 점도요. 몇 년간 열심히 배웠는데 뮤지컬 넘버 악보집 말고는 기록이 남지 않는 게 아쉽더라고요.

반면 글은 오래 준비한 뒤에 내보일 수 있어요. ‘가나다라마바사’를 써놓더라도 지우고 새로 써도 되고요. 몇 번이고 수정할 수 있는 점, 맞춤법 검사기라는 좋은 도구가 있는 점, 지우지 않는 한 기록이 남는 점, 관객이 없어도 일단 쓰기만 하면 된다는 점 등의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듣고 보니 새난슬 님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자, 칭찬을 들을 만큼 잘하는 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둘 다 예술 쪽이기도 하고요.

항상 예술계 사람들이 부럽고 멋있어 보였어요. 사무직 특유의 틀이 정해진 일, 생활을 못 견뎠고요. 정확히는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해요. 그래서 평균보다 돈을 못 번다고 해도 저는 프리랜서 생활이 좋아요.


새난슬 님이 주로 쓰는 글의 장르는 에세이예요?

네. 여러 번 소설과 희곡을 써보려고 시도해봤어요. 짧게 한 페이지라도 완성해보자는 목표였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상상력이 희박한 사람이더라고요. 읽는 건 좋아해도 만드는 건 다른 영역이라, 작법서를 읽으며 매력적인 인물 창조하는 법, 문장당 하나의 상황만 들어가게 쓰는 법 등을 바탕으로 해도 제가 만든 캐릭터가 이후에 뭘 할지 알 수 없었어요. 말 그대로 캐릭터가 한 발짝도 안 움직여서요. 오랜 시간 붙잡고 썼다고 해도 억지로 만든 티가 나고 캐릭터가 왜 그런지 납득이 안 되어서 이상했어요.

하지만 에세이는 달라요. 과거에 직접 겪었고 그 경험을 글로 풀 때 문체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소설에는 의미나 교훈이 들어가야 한다면, 에세이는 있었던 일과 제가 느낀 감정들 위주로 써도 돼요. 이유가 없으니 이유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이유가 없어도 되는 장르를 찾은 셈이에요. 그렇더라도 나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면 소설과 희곡 창작을 배우려고 생각 중이에요.


제 기준으로 소설은 인물 뒤에 숨을 수 있고 그 이야기가 가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잖아요. 설령 실제에 기반했다고 해도 독자가 만들어 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반대로 에세이는 화자가 나니까 숨을 데가 없어요. 그런 데서 위험 부담이 크다고 여기거든요. 그런 부담은 없으신가요?

어떤 사건을 써도 결국 글에 무엇을 담을지는 제 선택이거든요. 어떤 말을, 어떻게 담을지, 어떤 뉘앙스로 쓸지… 사실에 기반해도 말하는 사람은 저라서 어떻게 보일지도 당연히 다 생각하고 써요. 욕먹을 만한 건 일부러 빼고, 날카롭게 말한 건 둥그렇게 바꾸고, 글 말미에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옛날의 내 모습이 좀 후회된다는 식으로 보호한다거나. 그런 부분은 철저하게 일종의 조작이죠. 그럼 이건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어떤 면에서는 다큐멘터리도 비슷하죠. 실제 일어난 일에 특정 관점을 담아 편집해 보여주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 기인할까요?

소설, 희곡 두 장르도 결국 글쓰기의 일종이라 에세이만 쓰기보다 다른 장르도 오가면서 써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끝끝내 완성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도 있고요.







쇼핑몰에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분들한테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매일 들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에게 참 고맙긴 한데,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곧 내가 실수했거나 용인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뜻이니까 괴로웠다고요.

언니들에게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를 배운 것 같아요. 자잘한 실수에 혼나기보다 괜찮다는 반응을 마주하니까, 주눅 들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어요. 누군가 제게 실수할 때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전보다 유연해졌고요.

때때로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왜 이렇게 체력이 안 좋지, 왜 정해놓은 걸 못 하지, 난 남들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집에서 카페에서 내 마음대로 일하는데 왜 이것도 잘 안되지,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잠깐 괴로워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분은 사라져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로 생각이 전환돼요. 화가 오래 안 가는 게 바보 같으면서도 좋은 점 같아요.


나를 지키는 좋은 태도네요. 빨리 까먹는 거. 체력이 안 좋다고 하신 걸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라고 여겼는데 현재는 에너지가 빨리 방전되는 걸 의미하네요.

주변에 저와 비교할 사람들이 대개 운동했던 사람들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제 애인만 해도 운동선수 출신이고요. 남들이 3층까지 거뜬히 올라갈 때 저는 2층부터 힘들었거든요. 그때 내 체력이 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진짜 그렇게 되어가나 싶기도 해요. 따지고 보면 오래 하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어도, 단거리에는 강했어요.


일하는 나를 키워드로 얼렁뚱땅, 소란스럽다고 표현해 주셨어요.

예를 들어 이번 주 일요일이 마감일이에요. 쓰는 것에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 어떻게든 마감을 지키기 위해 오늘치 할당량을 정해두거든요. 그런데 오늘 해야지 해놓고 내일 하거나, 피곤하니까 맞춤법 검사기를 제대로 안 돌려서 메일 보낸 뒤에 똑같은 단어를 두 번 써서 보낸 걸 확인한다든가 하는 일이 있어요. 원고에는 실수가 없도록 꼼꼼히 살피는데 담당자분께 보내는 메일에 오탈자가 생기곤 해요. 제 이름만 해도 자판 리을 옆에 히읗이 있어서 ‘새난슬’을 잘못 쓰면 ‘새난슿’이 되는 식이에요(웃음). 그럴 때마다 나 얼렁뚱땅이네, 정신 안 차리네, 그래요.


마감을 잘 지키는데 얼렁뚱땅이라니, 상충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얼렁뚱땅 때문에 난감했던 적 있으세요?

아직은 없어요. 있으면 그건 명백한 실수겠죠.



새난슬 님의 제1원칙이 마감이라는 데서 아주 철저한 분이라고 느껴요.

일하기 전부터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상태였고 나한테 일을 준 분들에게 예의란 마감을 잘 지키는 거예요. 학교에서 조별 과제만 해도 자료 조사 해오는 애가 마감 안 지키면 짜증 나는데, 생계가 걸린 일을 안 지키면 안 되죠. 민폐 끼치는 것도 싫어하고 마감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서 이 부분을 지키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불안하기 때문일 거예요. 만약 일이 끊기면 다시 우울한 상태로 돌아갈 것 같으니까. 내게 일을 제안해주는 분들에게 잘하자, 그 사람이 예의를 지키지 않더라도 나는 잘해주자, 꼬박꼬박 감사하다는 말을 붙이자는 나름의 기준이 만들어졌어요.


마감과 연결된 친절이군요(웃음). 이전 상태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 두려움이 어느 정도의 동력일 수도 있겠어요. 그 상태를 안 좋게 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여쭤봐도 돼요?

서울에서 월세로 살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요. 그 비용을 내가 번 돈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힘을 빌려 해결한다는 것이 민폐라고 느꼈어요. 어렸을 때부터 20살이 되면 독립해서 스스로 돈을 벌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거든요. 그런데 그러질 못해서 애인에게 너무 미안했죠. 애인의 월급으로 제 생활까지 책임진다는 사실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백수 상태로 있으면 자신감이 줄어들고, 처지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 시절을 안 좋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일을 늘리려는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게다가 반려동물이 많아 책임감이 필요한 위치라서 그런 것도 있겠죠. 쉬면 안 돼, 나는 일을 해야 해, 돈을 벌어야 하고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 물고기, 거북이를 먹여 살려야 해.


먹여 살릴 식구가 있으면 마음가짐부터 다르겠어요. 원고 받을 때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요?

제안이 오면 대체로 거절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아직 거절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웃음).


앞으로 일하는 내 모습에 붙이고 싶은 키워드가 있을까요?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던 시간이 아직 제 등에 붙어 있어선지, 지금은 열심히 살고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아마 한동안은 계속 듣고 싶은 말일 거예요. 지금보다 자신감이 오르면 좋겠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저부터 느끼길 바라요.


저는 체력이 없으면 의욕도 생기기 어렵다고 봐요. 새난슬 님은 체력이 없다고 하시지만 일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잘하고 싶어 하신다는 인상을 받아요. 칭찬받을수록 쑥쑥 자라는 사람!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죠. 잘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제가 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본인의 정체성을 90년대생, 여성, 레즈비언, 동거라고 하셨죠? 이 키워드를 공유하는 비슷한 사람들, 결이 맞는 사람들이 주변으로 점점 모이는 것 같다고요.

맨 처음 쓴 에세이를 블로그에 올리고 그 링크를 트위터에 공유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분이 재밌게 잘 읽었다는 피드백과 함께 제 계정을 팔로우하셨어요. 운이 좋잖아요, 처음 쓴 글이 이런 반응을 얻었다는 게. 알고 보니 그분은 레즈비언 글쓰기 모임 장이었고, 자연스럽게 그 모임에 들어가서 제가 쓴 글로 얘기도 하고 영어 공부 같은 소모임도 하게 됐죠.

저희 같은 소수자들은 오히려 현실보다 랜선에서 더 잘 모이곤 해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드러내면 자연스럽게 그에 관심이 있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거예요. 나이대도 비슷하고 한 분은 저와 겹치는 키워드가 많았어요. 레즈비언이고 애인과 동거하고 글을 쓴다는 데서요.


모임에서 느낀 점이 있을까요. 가령 연결감, 동료가 생겼다는 느낌일 수도 있고 안정감이 될 수도 있고.

활동은 2021년 1월부터 했어요. 주제와 기간을 정해두고 강제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으면 쓰자, 올릴 수 있으면 올리자는 게 모토였어요. 큰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글을 쓰면 봐줄 사람들이 거기에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쓴 글을 내가 바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좋았어요.


여성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여성들에게 글쓰기를 권장하는 괜찮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글은 혼자 쓸 수 있는 건데도 누군가를 자꾸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동료 작가일 수도 있고 읽어줄 여성일 수도 있고. 소수자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알리고 싶다고요. 본인의 이야기가 책, 매거진, 혹은 아직 상상하지 못하는 장르 등을 통해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세상에 이런 애도 있구나, 또 하나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정체성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유대감을 느꼈으면 해요.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고 나도 그렇다, 그러니 괜찮다고 느끼길 바라요.


그 얘기에 저도 위로받아요. 제가 요즘 제일 크게 느끼는 게 고립감이거든요. 삶에서 오는 근원적인 고독이 있겠지만 사람을 통해서 괜찮다는 걸 알고 위로받으면서 더 나아진다고 믿어요. 새난슬 님의 글도 그런 역할을 해주실 거라고 기대해봐요.

제가 힘들 때 애인이 도와줄 테니까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라고 꾸준히 말했어요. 혼자였다면 다시 고향에 가서 힘겹게 살았을 텐데, 애인과 같이 살면서 집세나 생활비를 도와준 덕에 비교적 평탄하게 일을 시작한 듯해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돈을 지원해준다는 데서.



새난슬 님에게는 애인이 소중한 존재네요. 불안할 때 옆에 있어 준 사람에게 각별해지잖아요.

엄청나죠. 제 애인은 부모님도 좋은 분이고 오빠도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편이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해요. 성격이 무던해서 친구들로부터는 부처 같다는 말도 듣는 편이죠. 반면 저는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누군가를 만나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고 싶은데, 애인은 다 수용하더라고요. 또 애인은 대학을 졸업한 뒤 그 분야에서 일도 잘했고 지금 부모님이 하시는 쇼핑몰과 본인 쇼핑몰을 같이 운영하면서 탄탄하게 살고 있어요. 그에 비해 저는 정신적으로 좀 불안했고 이뤄놓은 것도 없고 전공을 살려 취업한 것도 아니다 보니 자괴감이 컸어요.

언젠가는 이런 부분을 애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 있어요. 이런 면을 다 포용해 줄 걸 알고서 말이에요. 저희는 3살 차이인데, 애인은 이 차이도 크다고 여겨요. 그때는 당연히 그런 거라고 계속 얘기해준 덕에 ‘언니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애인이 워낙 애정을 풍부하게 표현해서 누구에게나 서로 잘 만났다는 얘기를 들어요.


상성이 잘 맞는 커플이네요! 애인을 통해서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나 이야기가 있어요?

애인이 하는 말은 항상 비슷해요. 잘 잤어? 사랑해. 같은 말들. 친구들로부터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 건 아닌데 애인을 만나면서 제가 느끼는 면이 있잖아요? ‘나 지금 좀 안정됐구나’를 제일 크게 느껴요. 애인을 만나기 전 인생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게 이 사람 만나려고 그랬던 거구나 싶어요. 부작용은 헤어지면 큰일 난다는 거죠. 깨지면 끝장이잖아요(웃음).

서로 장난으로라도 절대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말자고 얘기해요. 애인이 화를 여간해서 안 내는 성격이고 헤어질 이유가 지금으로서는 없거든요. 한 20년 뒤에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래서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이북으로 발간한 책 『커밍아웃 했더니 엄마가 웃었다』에도 애인과 연애하는 얘기를 썼고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다 넣었어요(웃음).


헤어지지 않겠다는 결심인가요(웃음)?

헤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니까요. 일단 저희에게 헤어진다는 선택지는 없어요. 헤어져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있거든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책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때 제가 쓸 수 있는 글감은 애인과 같이 사는 생활,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언니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데이트하고, 어떻게 사귀었는지, 동거의 시작부터 동거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였어요. 쓰면서는 레즈비언 당사자의 에세이니까 다른 소수자들이 봐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나오는 무수한 에세이 가운데 이런 내용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요. 가짓수를 늘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이야기가 그중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엄마가 엄청나게 좋아하셨어요. 그 반응을 통해 깨달았죠, 이 일을 해봐도 괜찮겠다고. 저는 혼자서는 확신을 못 얻는 편이라 주변에서 괜찮다, 잘한다고 말해줄 때 비로소 알아채요.





인터뷰를 마치고 새난슬 님이 이북으로 발간한 책을 열었다. 서론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레즈비언이 여자친구 만나는 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지금 내가 고민하는 지점과도 맞닿아있었다.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SNS로, 커뮤니티로 발길을 이끌고, 미약한 단서를 가지고 우물가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 마찬가지의 갈증으로 우물가에 모인 사람들을 그리는 마음.


“여자친구가 있다면 내가 가진 고통과 슬픔뿐만 아니라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의 기쁨과 행복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되도록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많이 주고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사람을 만나야 했다. 꼭 여자친구가 아니더라도 교류할 지인이 있었으면 했다. 꼭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이길 바랐다.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은 인터넷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같은 고독과 불안을 때때로 잊게 하는 마취제이자, 결국에는 혼자 감당할 용기를 건네는 각성제. 접촉과 교류. 그는 본인의 예민함을 다정함으로 누그러뜨리고, 확신 없이 휘청거리는 순간에 기댈 무던한 사람을 발견한 뒤에야 변화한다. 단단한 지지를 바탕으로 해갈되자 나에게 고정된 시선을 상대로 뻗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으로 확장하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품는다. 내 갈증을 채웠으니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마중물이 되자고. 그가 파 내려가는 우물은, 그로부터 시작될 마중물은 이제 시작이다.



새난슬 님을 더 알고 싶다면



레즈비언 연애 에세이 『커밍아웃 했더니 엄마가 웃었다』


여성 창작자를 위한 뉴스레터 <새파란>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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