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용 Jan 05. 2024

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리뷰에 앞서.

그녀의 목적은 살인이었다.

 뇌출혈 후 식물인간이 된 채 병상생활한지 3년째의 50대 남성이 병실에 누워있었다. 대학병원의 번잡한 6인실. 간병인은 50대 여성. 지쳐보이는 표정. 그의 배우자였다. 그 여성이 갑자기 환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목적은 살인이었다.


 사건 전날 교수가 회진을 왔을때 보호자가 부탁했다. 콧줄로 공급되는 유동식으로 연명되는 남편의 유동식을 끊어달라고. 배우자는 이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고 허리는 90도로 숙였다.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면 보통 수명을 2년 정도 남았다고 본다. 의사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내 질문을 받은 교수님은 그렇게 대답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은 누워서 생긴 흡인성 폐렴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전에 깨어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환자는 3년이 지났는데도 생명이 위독하기는커녕 생을 마치기에 너무 적은 나이였기 때문인지 폐렴하나 없이 건강했다. 배우자가 숨을 거두어달라 요청한 것은 결국 이 때문이었으리라. 3년째 쌓여만 가는 치료비와 체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간병일을 기약 없이 지속할 수는 없다고.


 보호자가 환자의 목을 조른 것은 오후 3시였다.

"정말로 남편을 죽일 생각이었으면 오후 3시가 아니라 새벽 3시에 목을 졸랐겠지."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제지했다는 우리과 1년차의 노티(보고)를 듣고 대답했다.


 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사실은 배우자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죽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배우자의 목에 닿아있던 손이 간호사에 의해 떨어지고 바닥에 주저앉은 보호자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환자는 며칠뒤 우연히 폐렴에 걸려 우연히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호자의 요청 하에 기관삽관도 하지 않았고 중환자실로 옮기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이뤄진 마무리였다.

배우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기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바라던 것이 이뤄졌는데 조금이라도 기쁘진 않았을까?


 이런 상황에서의 기쁨은 언급되기 굉장히 불편한 감정이다. 안도에 가까운 기쁨의 감정은 분명히 있었으리라. 도스토예프스키 스타일로 묘사하자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을 불편해하며 언급하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심지어는 그런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기까지도 한다. 실제로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되는 상황이 현실에서는 굉장히 흔한데도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슬퍼하며 기뻐하고, 사랑하면서 증오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한심해하는 감정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목 기괴해 보이기도 한다. 흡사 정신병자들로만 이뤄진 정신병원을 연출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들이 현실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하는 것들이기에 줄거리가 전개되면 될수록 정상인들이 살아가는 우리 현실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이었던 듯한 기분도 든다. 내가 바로 옆에 있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이로서 영화관에서 온몸을 울리는 최고사양 스피커로 연출되는 웅장한 효과음에 압도되는 기분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문체만으로 느껴지게 해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느낀 기분은, 별점 5개짜리 영화를 10개 연달아본 기분이었다. 내가 못 느끼고 못 찾은 숨겨진 것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면 리뷰를 꼭 찾아보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리뷰가 별로 없었다. 기대 이하였다.


사실 이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게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 왜냐하면 스토리가 너무 중첩되어 진행되고, 따라서 해당 내용을 짧게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읽지 않은 사람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리뷰 독자층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미 읽어본 사람만을 대상으로 설정했다. 내용은 최대한 짧게 적으려 한다. 20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을 나도 읽는데 반년 가까이 걸렸다. 다른 일도 많긴 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만연체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 때문이다. 하지만 1독째에는 기쁨을, 2독째에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1독하고 찾아내었다면 무척 기뻐했을만한 내용으로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10~20개의 글을 연재할 생각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공감할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앞부분은 특정인에 대한 묘사가 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각색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으며, 비슷한 경험을 겪으신 분들이 느끼셨을 모든 감정과 행동에 깊이 공감하고 존중하며, 나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 있었으면 충분히 그렇게 행동하고 비슷한-아니 동일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하며 양팔에 힘을 줘서 껴안고 양손으로 등을 천천히 가볍게 두드리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을만한 상황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