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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Mar 11. 2024

살려주세요! 병원에 감금당했어요!

뇌출혈 환자의 섬망 증상

먼저 말하자면 우리과는 정신과가 아니다. 신경외과다. 신경외과는 신경계, 그 중에서도 주로 중추신경계를 본다. 뇌와 척수다.


중추신경계 관련 질환은 뇌종양 선천성뇌질환 등등 많다. 입원환자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뇌졸중. 그 중에서도 주로 뇌출혈이다.




뇌출혈은 뇌졸중처럼 자발성 뇌출혈도 있는데 외상성 뇌출혈도 많다. 내 기억에 거의 반반은 되었던것 같다. 이 분은 외상성 뇌출혈 환자였다. 평범한 외모의 40대 초반 남성.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수술할 정도가 아니어도 출혈량이 어느정도 이상이면 중환자실에 입실하게 된다. 출혈량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의식을 잃는다던가 하는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식을 잃을때 소리를 내며 잃는게 아니기 때문에 집중감시는 필수다. 그래서 중환자실이 필요한 것이다. 영어로도 짐중감시다. ICU. Intensive Care Unit.


이 환자는 응급실을 거쳐 며칠간 중환자실에 입원 후, 상태 악화 없어 일반병실로 전실된 분이었다. 심근경색 같은 지병도 없고. 


고혈압, 당뇨도 없고 술도 많이 드시지 않는 분. 이런 분들의 경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입원 치료 수주 후 상태 호전되어 퇴원.


정확한 치료는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수련받았던 병원은 이런 경우 2~4주간 입원하며 상태 이상 없는지 보고 문제 없으면 퇴원을 진행했다. 


이 환자도 비슷했다. 별 문제 없었다. 의식이 말짱해지기 전까지는 ..




일단 수술할 정도는 아니었다.


외상성 뇌출혈이 발생하면 대부분은 피가 뇌와 두개골 사이에 고인다. 뇌와 두개골 사이에 있는 얇고 질긴 경막(Dura)이 있는데, 피가 이 경막 밖에 있느냐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경막하출혈(Subdural hemorrhage)'와 '경막외출혈(Epidural hemorrhage)'로 나뉜다. 참고로 최근에 사망한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씨가 '경막하출혈'로 사망했다.


의사라면 누구나 익숙한 EDH vs SDH. 둘 다 외상성 뇌출혈로, 자발성인 경우는 드물다. 출처는 Radipaedia.


여기서 경막하출혈의 두께가 1.0cm보다 두꺼우면 의식이 있어도 수술을 진행한다.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두께가 그 이하여도 의식이 없으면 수술을 진행하지만 그 이하에서 의식이 없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이 환자의 출혈량도 수술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고, 다만 뇌기능이 떨어져서 의식이 살짝 쳐진 (기면, drowsy)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병이 없는 40대 남성에 MRI 소견도 나쁘지 않으면 퇴원 전 말짱해진다. 이 분도 일반병실에 나오자 의식이 말짱해졌다.




문제는 그 뒤 발생했다. 


기면 상태에서는 우리가 뭐라해도 네네 하던 분이, 의식이 깨니까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는 말했다. '퇴원하고 싶어요. 퇴원시켜주세요. 지금 바로요.'


중환자실에 나온지 며칠 안 됐다. 아직 안전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혈종(피)이 흡수가 안 돼서 수술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직 퇴원은 위험하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들은 배우자도 환자분에게 조금만 참자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빨리 퇴원시켜주세요!!'


의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섬망 증상때 사용하는 haloperidol 같은 안정제(?)를 써도 소용이 없다면 더욱. 일단 6인실에서 1인실로 옮기고 잡아두는 수 밖에. 보호자나 간병인이 컨트롤을 하고 그게 안 되면 간호사, 그래도 안 되면 의사가 힘으로 막아야한다.


1인실에서도 환자의 난동은 끝나지 않았고 .. 한동안 잠잠해지나 싶더니 갑자기 병동에서 난리가 났다. 환자가 112에 신고했다고. 경찰이 출동한다나. 병원에 감금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출동! 병원에서 경찰 볼 일은 은근히 많다.


사실 2년차때라 나는 병동 담당이 아니었다. 병동은 1년차 담당. 중환자실 업무를 끝내고 병동에 가보니 모든 상황은 끝나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결국 병원에 왔고, 우리과 1년차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의 설명을 듣고 돌아갔다고. 환자는 여전히 난동이고 ..


다행히도 그 뒤로는 별 일 없었다. 1주일인지 2주일인지 지나서였을까. 환자분이 나를 보고싶어한다는 연락이 왔다. 오늘 퇴원 예정인데, 그동안 고생시켰던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셨다고. 


'아 오늘 퇴원하시는구나. 다행이다.'

병동에 가서 직접 뵈니 의사가 감금하고 있다고 소리지르던 분은 어디로 가고 말끔한 분이 미안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서 나를 맞았다.


'아이고 많이 힘드셨죠. 제가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그래서 뵙고 싶었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고생이야 1년차 레지던트와 병동 간호사들이 다 했는데 뭐. 내가 힘든건 딱히 없었다. 내겐 그저 해프닝일 뿐이었지. 고생 많으셨다고 몸조리 잘 하시라 웃으며 말씀드리고 대화를 마쳤다. 그 분은 아마 잘 지내고 계실거다. 난동부린 얘기를 하면 '그 땐 내가 왜 그랬나 몰라'라고 하시겠지.

(글 쓴 뒤 기억나서 덧붙인건데 인권센터에도 신고하고 그랬었다)




신경외과 병동에는 뇌손상을 입은 분이 많다. 덕분에 여러가지 해프닝도 많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생각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기억들이 있다. 의사들이야 환자들이 그래도 함부로 하지는 못하는 느낌인데 간호사들이 특히 고생을 많이 하는거 같다.


이 글은 그래도 뇌손상 입은 분들이 난동부리던 기억 중 가장 깔끔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사실, 증상이 저런 식으로 나타나는 분은 별로 없다. (보통은 폭력적이다) 경찰까지 부르는 경우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했고. 어쨌든 시작은 고생이었으나 마무리는 죄송했다고 말하시는 정중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다. 많이 좋아져서 퇴원하신거니까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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