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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May 23. 2024

젊은 남성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막혀있다

'여의도 2시 청년'과 '젠더 갈등'

(사진은 '모비인사이트' 홈페이지의 사진을 사용)


내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젠더갈등'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서였다.


PC주의니 LGBTQ니 하는 것들은 전부 현대철학에서 기인된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젠더갈등은 현대철학과는 동떨어져있었다.


젠더갈등을 이용해서 한자리 차지해보려 하는 분들은 아전인수 격으로 현대철학에서 유리한 것만을 따오고는 하지만, 불리한 것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이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이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책을 쓰고 싶었다.


글이 쌓이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는 한다던데, 아직 받아본 연락은 없다. 이유는 알 것같다.

20개 넘게 썼지만 기승전결 완벽하게 짜임새를 맞출 정도도 아니고, 여성권에 반대하는 내용은 출판해봤자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만약 끈다해도 수익창출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얼마전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분의 연락이 왔다. 인터뷰 요청이었다.


나는 의사로서 인터뷰 요청은 받아본적이 많다.

최근 의료사태와 관련해서도 그렇고 의료 관련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서다.


하지만 '젠더갈등'과 관련해서 공식매체의 연락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코노미스트지라니 ..


친구들에게 말하니 대박이라며 인터뷰 꼭 해보라 했다.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일 수록 리액션은 더욱 컸다.

" 와 너 진짜 대박이다 " 라고.


이코노미스트지에 대한 설명이 .. 굳이 필요할까?


하지만 결국 인터뷰는 하지 못 했다.

시간이 안 맞아서 그랬던거 같다.

가능한 날짜를 제시해주시길래 그 중에 하나인 토요일 오전을 말씀드렸다.

(나는 토요일마저 그나마 격주로 일하고 있다)

근데 토요일 오전은 이미 일정이 잡히셨다길래 금요일 저녁은 괜찮으시냐 물었는데 ..


불금 저녁 8시는 아무래도 무리였던것 같다.

시간이 안 맞더라도 내가 의미있는 거물이었으면 그 쪽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관련해서 내가 책을 낸것도 아니고 주목을 받고 있는것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있다.

인터뷰 시간으로 토요일 오전이나, 금요일 저녁이 아닌, 목요일 오후 2시를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인터뷰 했을거고 유명매체인 만큼 어쩌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 와 너 진짜 대박이다 " 라고 말하던 내 친구들의 반응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후 2시에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일 오후 2시는 내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한 30대 남자,

내 또래 대부분이 그러는 것처럼

돈 버느라 바쁜, 평일 낮에는 일에 집중해야하는 사람이다.




청년 정치를 두고 2022년 핫했던 용어가 있다.

"여의도 2시 청년"


평일 오후 2시, 정치 행사에 참여하는 청년을 가르키는 말이다. 평범한 청년은 오후 2시에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오후 2시 하는 정치행사에 평범한 청년은 참여할 수 없다.


그 말인 즉슨 '오후 2시 여의도 정치행사에 참석하는 청년'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즉 나이만 청년이지 청년을 대표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미지는 이준석이 장예찬을 오후2시 여의도 청년이라 비판하는듯 한데, 사실 시작은 장예찬 쪽에서였다.


국민의힘 청년정치인 장예찬씨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그 측근들을 두고 '청년을 대표할 수 없다'며 여의도 2시 청년이라는 표현을 해서 화제가 됐다.


이준석 측은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해당 용어를 그대로 이용해 상대방을 역공했다. 누가 봐도 "여의도 2시 청년"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었다.


평범한 청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기 바쁘고, 아직 취직하지 않은 청년들은 취준하느라 바쁘다.


202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모두가 2030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청년들이 아니었다.

남들 취준하고 일하느라 바쁜 시간에 일하지 않고 집회, 시위 나오고 정치활동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2010년대에 여성 운동이 활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받는 취업 압박은 남성이 받는 그 것에 비하면 절반 이하이기 때문이다.


아마 문정권 이후 혼인율이 바닥나면서 그것도 옛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2020년대 들어서 여성운동이 위축된 가장 큰 이유도 '취집'이 어려워진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도 한가하게 여성운동 같은거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졌다, 이 말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여의도 2시 청년'이라는 표현은 정치권이 아닌 젠더갈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23년 발생했던 대표적인 젠더갈등인 '넥슨 손가락 사건'도 마찬가지다.


'넥슨 손가락 사건'은 '스튜디오 뿌리' 측에서 남성혐오 표현인 '메갈 손가락'을 넥슨 게임 이미지에 삽입해서 논란이 된 사건이다.


스튜디오 뿌리는 사건 발생 직후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후 사과문을 삭제하고 해당 이미지가 남성혐오가 아닌 것을 해명하겠다며 설명회를 가졌다.



재밌는 것이 이 설명회가 또 '오후 2시'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뿌리의 '메갈 손가락' 설명회. 이 설명회도 2023년12월29일, 평일인 금요일 오후 2시 열렸다.

<뿌리의 ‘집게손가락 음모론’ 설명회, 유저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401021532001




평일 오후 2시 열렸던 스튜디오뿌리의 '메갈 손가락' 설명회에 유저가 한명도 오지 않았다고 여러 언론에서 비판했다.


나는 이 비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후 2시 한가롭게 설명회 같은거 듣겠다고 시간 낼 수 있는 젊은 남자는, 평범한 남자 중에는 없다. 비판하는 이들에게 진짜 설명을 하고 싶었으면 저녁 8시로 잡아야지 오후 2시에 오라면 평범한 남자는 오지 말라는 말 아닌가.


기자들이야 오후 2시에 시간내서 설명회 참석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청년들은 평일오후2시에 설명회가 열리면 참석하지 못한다.

이번에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제안까지 받은 나도 오후2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젠더 갈등과 관련된 여성 운동은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정체성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목소리를 강하게 낼 수 있었던 것은, 취업과 진로에 대한 절박함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여성이었다.


경제활동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남성들은, 특히 '평범'한 남자들은 여기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던 것이 현실이다. 나 마저도 그렇다.


2022년 대선에서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가 주목받았던 것은, 그동안 구조적으로 외면받았던 젊은 남성들의 정치적 대리인을 찾고자 하는 니즈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동안 있었던 젠더갈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작가들이 이대남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는 있으나, 현대철학(특히 포스트모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작가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한계다.


하지만 세계적인 페미니즘 운동과 그 흐름은 현대철학을 근거로 두고 있다. 현대철학적인 근거 없이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하면,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보여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국의 여성운동은 현대철학, 특히 포스트모던 철학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동안 브런치에 게시해왔던 글들은, 그래서 현대철학에 이론적인 기반을 두고자 노력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봐도 흥미로운 글을 쓰고 싶다. 현대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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