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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Jul 30. 2024

소득 수준과 다양성, 그리고 성소수자

라멘 두 그릇과 맥주 한 잔

개인적으로 홍대 옆에 있는 합정에 자주간다. 지금 살고있는 당산과 가깝고, 당산이나 직장인들이 많은 여의도와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는 여자친구와 합정동에 있는 오레노라멘 본점에 갔다.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이다. 라멘 한 그릇 가격이 1만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 반면에 유명 맛집에 왔다는 만족감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합정 오레노라멘 본점. 주말에 가면 사람들이 1층까지 서서 기다리고 있다. (출처: 익스트림무비 홈페이지 게시글)


주문 자판기에 영어가 실려있지 않아 쩔쩔매는 외국인 커플을 도와주고, 15분쯤 대기했을까.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 7시인데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반주를 좋아한다. 밥 먹을때 술 한잔씩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식사에 곁들이는 맥주나 와인 한 잔은 나도 기꺼이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 날은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간만에 차를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은 여자친구 혼자 마시기로 하고, 라멘 두 그릇과 더불어 맥주를 한 잔 시켰다.


라멘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맥주는 금방 나오겠지. 금방 나올 맥주를 기다리며 여자친구에게 물었다. 한 잔 나오는 맥주 잔을 종업원은, 나한테 줄까 아니면 여친한테 줄까?


남녀 둘 중 한명만 술을 마신다면 아무래도 그건 남자일 가능성이 높겠다.


맥주는 여자친구만 마실테지만, 보통 커플이 맥주 한잔만 시키면 남자 쪽이 마신다. 그러니까 종업원은 남자인 내 자리에 맥주가 담긴 맥주잔을 놓으렸다.


여자친구는 '글쎄'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한테 줄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누구한테 줄지 물어보고 줄까 아니면 그냥 내 자리에 올려놓고 갈까?'


두번째 질문에도 여자친구는 지켜봐야 할거같다고 대답했고, 나는 '안 물어보고 나한테 주고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예상대로 종업원은 맥주를 가지고 왔다. 주문하고 5분이 지나지 않아서다. 맥주잔을 어디에 둘지는 묻지 않았고, 예상대로 내 자리에 두고 갔다. 모두 예상대로였다.


'뭐 한그릇에 만원 하는 식당이니까.'


내심, 물어보고 여자친구에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저렴한 식당에서 이런 서비스를 기대하는건 욕심이렷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여긴 저렴한 가게니까 잔을 안 묻고 내려놓는게 문제는 없는데, 만약 1인당 10만원 하는 비싼 식당이었으면 맥주를 누구에게 줄지 물어보고 주지 않았을까?' 여자친구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그랬을거 같다고 대답했다.


이런 고오급 식당에서 물어보지도 않고 맥주잔 대충 나한테 주고가면 좀 황당할거 같다


생각해보면 소득 수준이 이런 서비스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때 식당가면 별 생각 없이 주문하고 그랬던것 같은데.


10년 전 쯤, 그러니까 2015년 공중보건의사 시절에 중국 사천지방의 한 식당에 갔을때가 떠올랐다. 모든 식당이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 식당은 사람이 참 많았다. 그에 비해 종업원 수는 부족하고 또 시끄러워서, 종업원을 부르려면 服務員(Fuwuyan, 후우옌)이라고 소리를 질러야했다. 그 곳에선 메뉴 외에 고를 수 있는게 없었다. 워낙에 정신이 없으니까 물어보는것도 메뉴 뿐이었지.


우리나라에선, 내가 어릴때는 음식점에 알러지를 묻거나 디테일하게 뭔가를 고르는걸 할 수가 없었다. 알러지 있으면 그저 독특한 사람 취급하고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달까. 비건식당 같은건 그냥 흥미로운 대화주제 수준이었던거 같고.


2000년 즈음인가, 신문 사설에서 '이제는 알러지 호소도 유난떤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땅콩 알러지 있냐고 묻는다거나, 비건 식당이 길거리에 툭툭 튀어나오는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얘기였는데, 어느날 보니까 우리나라도 그러고 있더라. 1인당 GDP가 1만달러 하던 내 유년기의 한국과 3만달러가 넘은 2020년대의 한국은 많은게 달라졌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수준이 늘어나면서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20년 전에는 그저 농담의 소재였는데 요새는 사회에서 좀 더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LGBT 관용도 통계지도. 전반적으로 소득수준과 관련이 높아보인다.


젠더이슈가 한창 불붙었던 2016~2022년과 비교해서 요즘은 다소 소강된 양상이다. 그럼에도 최근 르노코리아 '손가락 논란'을 보자면 언제든 다시 불붙을 가능성은 있어보인다.

 

작년의 '넥슨 메갈 손가락' 사태에 이어 올해는 '르노 사태'가 터졌다.


젠더이슈와 성소수자, 다양성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통 전자에는 관심이 크고 후자에는 관심이 적어지게 되는데,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철학적인 근거가 일치하기 때문에 젠더이슈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해보고자 하다보면 성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해서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언급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남성 관점에서 젠더이슈를 언급하는 분들을 보면, LGBT라던가 하는 것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에서 영감받은 프랑스철학을 근간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더 포용적인 분위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젠더이슈 논쟁에 뛰어들면서 LGBT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로(좌익진영에서 주로 인용되는 정치이론이라는 이유도 있겠다) 포스트모던, 프랑스철학을 배격하면 10년, 20년 뒤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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