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따준게 왜 감동인지 남자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실상' 신혼여행 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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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가 뉴욕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요.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데, 미국의 버팔로와도 가까이 있습니다. '버팔로 윙'으로 유명한 그 버팔로입니다.
저희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잘 보이는 ㅇㅇ호텔에 묵었습니다. 약간은 낡기도 했고, 바로 옆 메리어트만큼 폭포 전경이 훤히 다 보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평이 나쁘지 않아 이 호텔로 결정했습니다.
폭포 전경은 캐나다 쪽에서 더 잘 보입니다. 그래서 관광객 대부분은 다리를 지나 국경을 건너 캐나다로 건너가게 되는데요. 캐나다로 건너가는 다리에서는 초라해보이던 나이아가라 폭포가, 한참을 걸어가도 도착을 안 합니다. 택시타고 도착해 바로 눈 앞에서 본 모습은 정말 웅장하더군요.
폭포는 누구나 그렇듯 유람선 타고 재미있게 봤고요. 남들 다 하는 얘기하면 재미 없으니,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버팔로윙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호텔에 위치한 케그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먹었었는데, 폭포가 가까워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더랬습니다.
문제는 야식이었습니다.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터라, 저녁먹기 전에 잠들어서 밤 11시에 깼었는데요. 열려있는 식당이 없어 룸서비스로 버팔로윙을 시켰습니다. 병맥주도 4병 시켰었는데요. (맨날 보던 맥주 밖에 없어서 하이네켄 시켰습니다)
룸서비스 배달오셨을 때, 병 따드릴까요 묻길래 알아서 할게요 하고 보내고나서 보니 방에 병따개가 없습니다. 다시 전화해서 병따개 갖다달라 해도 호텔에 병따개가 없다네요. 그러면 처음에 병은 어떻게 따준다는 얘기였던건지. 조금 당황스럽더라고요.
숫가락이나 젓가락만 있어도 어떻게든 따보겠는데 그런것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 맥주는 그냥 내일 먹어야겠다 하고 버팔로윙부터 먹었는데, 이게 왠걸 점심때보다 짭니다. 많이 짭니다. 점심 때는 이러지 않았던거 같은데,, 맥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짠맛! ㅠㅠ
(익힘의 정도를 굉장히 중시하는지 버팔로윙의 익힘은 좋았습니다)
왠만해선 병따개 없이 병 안따고 숫가락 있어야만 간신히 따는 저지만 여자친구가 딸 수도 없겠다 제가 직접 탁자에 병뚜껑을 대고 병을 따기 시작합니다. 나름 민폐 끼치는건 싫어서 병뚜껑에 탁자 긁히지 않는지 조심히 보면서, 휴지통으로 병 입구를 10분 동안 내려쳤습니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어찌어찌 병이 전부 따지긴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내가 해야하니까, '여긴 야식을 팔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투덜거리면서 병을 땄는데 여자친구는 나름대로 감동받았나봅니다.
'난 내가 남자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여자라 생각하는데, 내가 못하는걸 오빠가 하는 모습에 감동받는거 같아'
어 이게 왜 감동이지 싶으면서도, 여자친구가 감동받았다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특히 여자친구가, 본인은 원래 남자 없이도 살 수 있다고한 말은 사실입니다. 자기 일도 잘 하고 심심할때 만날 친구들도 많이 있고 하니깐요.
여자친구가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말하는지 아니까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목넘김이 시원한 하이네켄은 보너스였고요.
나이아가라 폭포가 세계 3대 폭포 중 높이나 넓이로는 제일 작은 폭포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량은 셋 중 제일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람선 타고 들어가니까 사방에서 쏟아지는 물에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나이아가라 처음 보고 받은 인상은 솔직히 좀 별로였습니다.
'아 여기 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오는 곳이네' '우리나라로 치면 유명한 절 같은데 온거잖아' '2, 30대는 전부 동양인인거 같은데' '젊은 사람들이 놀러오기에는 좀 노잼 관광지 아닌가'
그런데 막상 유람선도 타고 산책도 하고 이러니까 정신없는 뉴욕 벗어나서 북미 대자연을 느끼는거 같아서 기분 좋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여행 끝나면서 여자친구가 제일 기억날거 같은 순간을 뽑으라니 나이아가라 갔을 때를 뽑아서 더 좋았습니다. 제가 병따고 있는 모습이 제일 좋았다면서요. 평생 기억날거 같다나요.
제가 20대 때는 여행을 혼자서 잘 다니는 편이었습니다. 워낙에 걷는 것도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좋아하고 현지에서 외국인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좋아해서요.
그러다 30 넘어서부터는 추억 나눌 사람 없는게 아쉬워 여행을 잘 안 다녔는데, 이렇게 여자친구랑 나오니까 시간 내길 잘했다 싶습니다. 야식 줘놓고 병따개도 안 주는 호텔가서, 병뚜껑 따주니 평생 기억하겠다고 해주는데 개이득 아닌가요 이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