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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텅 빈 방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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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Jul 23. 2022

칼과 쟁기

- 베를린, 폴란드 일기 19 (바르샤바)

바르샤바 민중봉기 박물관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 줄의 대부분은 학생들이다. 6월에 수학여행을 많이 떠난다더니, 봉기박물관으로 일정을 잡은 모양이다. 잘 차려입은 아이들 목에 조개껍질 목걸이가 걸려 있다. 지루한 줄 서기에 지친 아이들 뒤로 선생님이 슬쩍 다가와 한 아이의 배낭을 열고 봉지를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귓속말을 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했다. 여행 중에 생일을 맞은 학생에게 담임이 선물한 사탕이었다. 곧이어 가방을 연 아이는 친구들과 사탕을 나눠먹었다.    

 

1944년 8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폴란드 지하저항군은 나치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칼과 쟁기를 결합한 저항군 상징을 내걸고, 저항했으나 독일군은 바르샤바를 초토화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바르샤바는 평온해져야 한다!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봉기에는 게토에 살던 유대인들도 합류했고, 끝까지 저항했으나 화염방사기로 건물을 불태우고, 비행기로 폭격하고, 닥치는 대로 쏘아죽이고 강간하는 등 독일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결국 무너졌다.     


그때 바르샤바를 폭격하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고, 저항군이 인쇄하던 비밀 신문들과 전황 소식들이 벽 곳곳에 걸려 있다. 신문을 인쇄하던 곳과 폴란드인들의 싸움이 어땠는지, 시가전에 구축했던 진지는 어땠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물은 내 얼굴형과 비슷한 저항군을 홀로그램으로 맞춰주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려고 사진으로 찍었다.     

박물관에는 당시 바르샤바가 얼마나 파괴되었는지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지붕은 하나도 남지 않고 벽체만 남은 건물들, 끊어진 다리들, 온통 회색빛인 도시.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이때 주민들은 대규모로 강제 소개하여 폴란드 곳곳과 독일 본토 수용소로 이송했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는 로만 칼라를 입은 신부를 비롯해 당시 봉기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곧 싸우러 갈 듯한 의지를 드러낸다. 누군가 이 봉기가 실패한 봉기라고 했다. 봉기했으나 도시가 더 파괴되게 했고, 인명 피해가 컸다. 그러나 폴란드는 나치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곳곳에 칼과 쟁기로 표시한 상징을 함께 두면서.     

이 근처에 ‘바르샤바 게토 영역 표시(Warsaw Ghetto boundary makers)’가 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겠다. 게토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설명한 표지판도 서 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념물은 ‘Pomnik Ewakuacji Bojowników Getta Warsawskiego’이다. 봉기 당시에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저항군은 하수관을 통해 도시 곳곳을 이동한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나치가 하수관을 폭파하고 이곳을 드나드는 저항군을 잡아내는 등,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봉기박물관에는 하수관에서 나오는 저항군을 조롱하듯 쳐다보는 독일군의 사진도 있다. 

    

‘퀴리 박물관’은 퀴리 부인의 생가를 활용했다. 그가 자주 입었던 작업복과 작업실을 보면서 폴란드가 사랑하는 과학자 ‘마리 퀴리’와 만났다. 물리학과 화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여 노벨상을 받았고, 조국을 떠올리는 ‘폴로늄’이라는 방사성 원소를 발견했다. 이후 ‘라듐’도 발견했고, 현재 X-ray 기술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었다.

박물관 2층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구시가가 보이는, 이 집에서 마리를 만나 기뻤다.  

    

성 요한 대성당은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 저항 세력과 독일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많이 부서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둘레로 열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신부님께 열두 제자가 아니라 왜 열 명이냐고 물었더니, 저 분들은 제자가 아니라 선지자들이라고 했다. 엘리아 같은 선지자 열명.      

바르바칸은 크라쿠프보다 장엄하고 높다. 이 또한 다시 만든 것인데, 곳곳에 조각들이 숨겨져 있다. 

팔이 잘린 조각상은 몸이 뒤틀린 채 버둥거린다.

작고 조그만, 소년병 조각상 앞에서 묵념을 했다. 봉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 소년병들도 끼어 있었다.    

  

바르샤바 대학교 안에도 봉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에 봉기에 참가했던 교수들 명단을 벽에 남겨두고, 봉기의 상징을 함께 기록했다.     


성 십자가 대성당에는 쇼팽의 심장이 묻힌 기둥이 있다. 몸은 프랑스에, 심장은 폴란드에, 나라를 빼앗긴 예술가는 편히 쉬지 못했다.   

  

광장 한쪽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다. 천동설을 주장한 학자를 상징하듯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궤도를 따라 도는 그림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나는 그 옆 벤치에 앉았다. 쇼팽 벤치에는 ‘play’ 단추를 누르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봉기와 항쟁의 기록으로 가득한 바르샤바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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