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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21. 2021

이웃 나라 당일 치기 여행

유럽이기에 가능한 버스 타고 떠나는 당일 치기 여행

 라트비아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해 1월 중순쯤 끝이 난다. 그 뒤 2월에 학기를 시작해서 6월 말쯤 끝이 나는 게 한 학년의 흐름이다. 2019년, 29살 9월 처음 시작한 나의 라트비아 대학원 생활은 12월 중순에 첫 학기를 마무리지었다. 원래는 1월 중순까지 시험과 과제 일정이 있어야 하지만, 외국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우리 과의 특성상 학생들의 귀국 일정 편의를 위해 교수님들께서는 모든 일정을 12월 중순까지 마무리 짓는 것으로 짜 주셨다. 얼핏 보면 좋은 것 같지만 결국 조삼모사인 게, 배워야 할 양이나 시험 범위, 과제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시험과 과제로 가득 찬 11월과 12월 초반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포르투갈로 넘어가 포르토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 리스본에서 부모님을 만나 리스본과 스페인 여러 도시를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틈틈이 여행 계획을 세우며 유럽 도시들과 크리스마스 마켓을 검색했는데, 검색 결과 중에 에스토니아 크리스마스 마켓이 그렇게 예쁘다는 글을 보았었다. 시험기간에 시달리며 늘 창밖의 자유를 동경하던 우리는 종종 쌓여있는 과제를 두고 도서관을 탈출해 올드타운 한가운데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가곤 했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밖으로 쏘다니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나가는 말로 내가 인터넷에서 본 에스토니아 크리스마스 마켓 이야기를 건넸더니, 루스가 눈을 반짝거리며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 같이 에스토니아 크리스마스 마켓에 놀러 가자고 말을 꺼냈다. 당시 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지나가는 말로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이전에 라트비아 라운드 트립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루스와 야스민은 라트비아에 오기 전부터 발트 3국 여행 관련 책을 구입해서 읽은 후였고, 당연히 에스토니아에 관한 여행 안내도 그 책자에 있었다. 내가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이 친구들은 시험 끝나고 다 같이 에스토니아에 갈 계획을 세웠고, 덕분에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바로 다음날 우리는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실은 이번에도 계획은 친구들이 세우고 나는 따라만 가는 거라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비몽사몽 한 이웃나라 여행이었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서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까지는 버스로 네 시간 정도 걸린다. 아침 여섯 시쯤 버스를 탔던 우리는 오후 열두 시쯤이 되자 에스토니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나름 북쪽으로 올라가서인지 라트비아보다 바람이 더 차가운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탈린 올드타운으로 이동해보니 라트비아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아기자기한 올드타운이 펼쳐졌다. 미리 탈린 올드타운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둔 친구들을 따라 도심을 한 바퀴 돈 후 다 같이 벤치에 앉아 추위와 싸우며 각자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친구들과 몇 번 여행을 한 후 알게 된 거지만, 어딜 가든 현지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게 익숙한 나와 달리 친구들은 간단한 샌드위치 같은 음식들로 한 끼를 준비해 현지에서 먹곤 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몇번의 여행으로 학습이 되어있었던 나는 이번에는 잊지 않고 빵과 치즈를 챙겨가 땅콩 버터 샌드위치를 먹는 친구들 옆에 나란히 앉아 빵 사이에 치즈를 끼운 샌드위치를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도시락을 까먹고, 예쁘기로 유명하다는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의 낮을 구경한 후 우리는 추위를 피해 카페를 찾아가 커피와 차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체력을 회복한 후에는 탈린 올드타운 성곽에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에스토니아 전경도 즐기고 주변의 작은 상가들도 구경한 후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크리스마스 전구에 불이 들어온 크리스마스 마켓을 다시 한번 감상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백배 즐기기를 완성하기 위해 마켓에서 추위에 떨며 글루와인과 사워 크라프트까지 사 먹고, 근처의 중세시대 방식으로 운영되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에 들어가 가게의 시그니처 음료까지 깨알같이 챙겨마신 후 근처 쇼핑몰로 이동해 서점을 찾아가 옹기종기 앉아 책도 읽었다. 그리고 저녁 열 시쯤, 우리는 밤 버스를 챙겨 타고 라트비아로 돌아왔다.


아마 유럽이기에 가능한 버스 타고 떠나는 이웃나라 당일치기 여행이지 않았나 싶다. 남이 보기엔 평범한 여행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정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던 시험을 마치자마자 훌쩍 떠난 여행이었고, 게다가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겠다는 목표만으로 떠난 낭만적인 여행이라 더 기억에 남았다. 이 여행은 라트비아 첫 학기의 공식적인 마침표가 되었는데, 이 다음날 에이미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 다음날은 야스민이 독일로, 그다음엔 내가 포르투로, 그 다음날 루스는 네덜란드로 순서대로 떠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힘에 부치기도 했으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한 학기였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우리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학기는 이 첫 학기가 마지막이었다. 두 번째 학기에는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고 세 번째 학기는 코로나 속에서 각자 교환학생을 떠난 채 보냈기 때문이다. 네 번째 학기도 온라인 수업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다들 각자 국가에서 공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두 학기는 첫 학기처럼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또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는 학기들이었다. 


아마 다음 편부터는 두 번째 학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이때부터는 내가 집을 구해서 시티센터에서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라트비아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글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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