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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Feb 23. 2021

모두에게 완벽한 교사는 없다

교실 역시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고군분투의 현장이다.

아이들은 젊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젊은 선생님들 중에서도 남자 선생님을 특히 더 좋아한다. 물론 예외인 학생들도 있지만 내가 교직에 있으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바는 그랬다. 그러나 학교에서 젊은 선생님으로 살았던 내게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어떤 연령의 담임 선생님을 원하 싶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30대 중반 이상의 여자 선생님'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할 것 같다. 물론 짧은 내 교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처음 신규 발령을 받았을 적 나는 인간으로서도 교사로서도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수업 진행 경험도 부족하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을 대할 때도 여러 면에서 미숙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우리 학교에는  수업 연구도 열심히 하시고 생활 지도에도 철저한 선생님들이 계셨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 수업 진행에 노하우가 있으시고, 가끔은 친근하게 또 엄격하게 선생님으로서 중심을 잡고 학생들을 대해 주실 줄도 알았던 분들. 그 경험이 '30대 중반 이상의 여자 선생님'이라는 내 선호도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그때도 미숙한 나를 좋아해 주었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나. 첫 학교에서 근무한 지 3년쯤 되던 해에 청소년 단체 활동으로 안면이 있던 학부모가 올해 선생님이 우리 아이 담임이 되었으면 했는데 아니어서 못내 아쉽다, 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지나가며 예의상 한 소리였을 수도 있지만, 그 한 문장이 준 감동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남았다. 약간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허점 투성이인 내가 담임교사가 되길 바라는 이유가 있었을까.


내 눈에 훌륭해 마지않던 선생님들도 가끔은 학생이나 학부모 문제로 골머리를 썩으셨다. 대다수가 만족해하는 활동이나 생활 지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속상해하기도 하고,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학생에게 마음 아파하시기도 했다. 내 눈에 기라성 같은 선배 교사들이 결국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자못 충격이었다. 아무리 경력을 쌓고 노력해도 결국은 컴플레인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라는 암담한 현실을 느꼈다.


같은 학생도 교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산만해서 수업에 지장이 된다, '라는 설명을 들었던 아이는 딱 그 나잇대의 활발함으로 내게 즐거움을 줬고, '다혈질로 화가 나면 친구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진다.'던 아이는 교사와 소통하는데 열려있었다. 어떤 선생님께는 잘 맞는 아이가 나와는 잘 맞을 때도 있었고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는 것처럼, 한 학급 안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다양한 의견들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한 교실에 25명 이상의 학생과 그 뒤의 학부모들이 있고, 다들 저마다 다른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참견을 받다 보면 내 계획은 끊임없이 바뀌고 결국 전혀 엉뚱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고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교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치 한 가족 안에서 부모 형제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눈떠보니 같은 공간에서 일 년을 살게 된 사람들은 투닥투닥 서로를 알아가고 어떻게든 공존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가끔은 운명처럼 잘 맞는 상대일 때도 있지만, 또 가끔은 어쩌면 이렇게 맞는 게 하나도 없을까 싶은 조합이 될 때도 있다. 심지어 구성원의 수가 가족보다 크다 보니 그만큼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될 확률도 크다.


모두에게 완벽한 선생님은 없다. 존재할 수 없다. 일 년을 함께 지내다 보면 어느 면은 너무 잘 맞는 것 같다가, 또 어느 면은 전혀 맞지 않아 불편해지기도 한다. 학교 안도 어쨌거나 사회라서 끊임없이 서로를 맞춰가려 일 년간 고군분투하는 과정이다. 한때 모두가 좋아하는 교사가 되고픈 마음에 부흥하지 못하는 현실에 상처 받기도 했으나, 경력이 차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조금씩 체득해나갔다. 물론 정답은 없었다. 다만 나 자신이 좀 둥글둥글해지고 단단해졌으며,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유지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씩 양해하는 요령 있는 직장인이 되었을 뿐이다.


완벽이라는 단어처럼 비현실적인 말이 있을까.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고 사람답게 살았더니 오히려 모든 일들이 더 쉽게 느껴졌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라는 것은 실은 교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투닥거리며 배워나가는 곳. 학교 본연의 성격처럼 사는 방법을 배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모두에게 완벽한 교사는 못 만날지라도 모두를 성장시킨 교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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