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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28. 2021

유럽에서 하는 자가격리

라트비아의 겨울은 왜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오스트리아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왔지만, 음성 확인서와는 별개로 나는 열흘간 자가격리에 돌입해야 했다. 지금 라트비아 시간으로는 27일 밤이니 나의 자가격리도 24시간이 조금 넘게 남았다. 실은 도착한 날인 18일부터 자가격리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만, 도착한 다음날부터 열흘을 생각한다면 28일까지는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실은 조금 헷갈리길래 넉넉잡아 28일까지 자가격리를 하기로 개인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한 달 전쯤 부모님께서 우연히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자가격리를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자가격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셨었지만, 논문이나 쓰며 천천히 보내면 되지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가격리는 정말인지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실은 유럽의 자가격리는 한국의 자가격리와는 조금 개념이 다르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만 피하면 산책을 나갈 수도 있고, 마트로 장을 보러 나갈 수도 있다. 실은 산책과 장보기가 가능하면 내게는 평범한 일상과 마찬가지인 거라 이게 무슨 자가격리인가 싶었다. 게다가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 대중교통이나 택시, 우버와 비슷한 개념인 볼트나 얀덱스 택시 등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신, 한국의 경우 자가 격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한 레토르트 식품이나 햇반 등을 챙겨주지만, 이곳에선 그런 것 따윈 없다. 


라트비아의 경우 입국 48시간 전에 어느 나라에서 입국하는지, 입국 전 열흘 간 어느 나라 등을 거쳤는지, 자가 격리할 곳은 어디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입력하고 큐알코드를 받게 되어있다. 그리고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할 때와 라트비아 도착 후 입국장으로 들어갈 때 해당 큐알코드를 확인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 앱을 설치한다거나 담당 공무원이 있다거나 하는 안내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과연 어떻게 자가 격리자를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해외 생활을 오래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탓에, 스스로 한국식 자가격리를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실은 라트비아로 막 돌아왔을 때는 정말인지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지만, 자가격리와 회색빛 라트비아 겨울의 날씨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부족한 일조량에 더해서 집에만 있으려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몸도 마음도 더 축축 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가격리 처음 3일은 여전히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라트비아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근 이 주간 마음고생을, 이동하는 삼 일간 몸고생을 한 덕에 쌓였던 피로가 몰려온 탓이었다. 첫 3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겨우 넷플릭스를 보거나 유튜브 비디오를 몰아보고 꾸벅꾸벅 졸며 시간 죽이기를 하는 날들이었다. 이때까지는 내가 자가격리를 잘하는지 누가 찾아오지도, 연락이 오지도 않아서 과연 자가 격리자를 관리하고 있는 걸까 조금 의문이 들었다.


비몽사몽 보낸 3일이 지나고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리고 나니 시간이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3일은 자가격리가 아니라 집에서 강제로 내보낸대도 한 발자국도 못 나갈 것 같았는데, 3일을 기점으로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문득 우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전반적으로 사람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블루가 이런 것이구나를 정말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경우 다행히 친구가 꾸준히 식료품을 사다 주고 말동무를 해 준 덕에 조금 더 상황이 나았지만, 만약 이 친구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자가격리 6일째가 되는 날 오후쯤 모르는 번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받고 보니 라트비아 경찰이었는데, 내가 자가격리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고 했다. 실제 집 문 앞까지 오는 건 아니고, 경찰차를 타고 내가 사는 빌딩 앞에 와서 전화를 통해 내가 있는지를 밖에서 확인하는 식이었다. 이 날따라 그간 눈이 왔다 녹았다를 반복한 탓에 창문이 열리지 않아 창밖으로 경찰차가 보인다는 나의 대답에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자가격리 10일째가 되는 오늘 오후에도 다시 한번 연락을 받았는데 오늘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볼 것을 요구했다. 실제 내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나에게는 자가격리 말고도 논문 pre-defence라는 장벽이 하나 더 있었다. 원래 29일 예정이었던 프리 디펜스가 27일로 옮겨졌지만, 교수님께서 해당 사실을 평소 사용하던 지메일이 아닌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라트비아 대학교 메일로 안내한 덕분에 프리 디펜스 3일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리 디펜스가 있는 날까지 논문의 절반을 완성해야 했는데 자가격리 처음 3일을 비몽사몽으로 보내고 갑자기 기한이 3일 빨 라지고 나니 정말인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무기력한 와중에 논문까지 쓰려니 정말인지 죽을 맛이었지만, 또 어쨌거나 시간은 가고 나는 오늘 오후에 무사히 프리 디팬스를 마무리지었다. 물론 논문 절반은 아직 못 끝내서 주말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


나의 자가격리 일상은 넷플릭스, 유튜브, 논문 쓰기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은 새로 구한 집에 오븐도 있어서 빵도 굽고 요리도 이것저것 해 보고 싶었지만, 논문 덕에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어차피 자가격리도 해야 하는 기간에 논문 작성도 휘뚜루 마뚜루 어느 정도 해치워서 잘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제 다시 라트비아의 일상을 즐기며 내 마지막 학기를 잘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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