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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Feb 27. 2021

왜 우리는 매번 엉뚱한 이들에게 화를 내나

화가 바른 곳으로 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년쯤 되던 시절, 우리 엄마는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늘 집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간식을 만들어주던 엄마가 일을 한다니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즈음 해서 친구들 어머니들도 하나 둘 맞벌이를 시작하셨기에 으레 다들 그렇게 사는 거니 했다. 왜 일을 하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너희 피아노 학원 보내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댔다. 나는 안 그래도 지긋지긋한 피아노 학원을 보내려 직장까지 다닌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 무렵 우리 집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우리 집의 상황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상황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3대째 장남 며느리 자리를 꿰차고 있던 우리 엄마는 십 년이 넘도록 독박 시집살이 중이었고, 암 진단을 받으신 할아버지의 병시중은 엄마 차지, 병원비는 대부분 우리 집 부담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결코 시어머니와는 못살겠다는 친할머니의 어깃장 덕에, 우리 집에서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시는 증조할머니까지 모시고 살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아니래도 이미 신경 쓸 일이 너무도 많았지만, 셋이나 낳아놓은 자식들은 점점 돈 들어갈 데가 많아지니 엄마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렵부터 엄마는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옴과 동시에 우리를 혼내거나 화를 내곤 했다.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자극에는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마련이라, 나는 조금씩 엄마에게 혼나는 것에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퇴근시간이 되면 곧 내게 화를 내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혼나기 전에 혼날 요인들을 미리 제거하는 영리한 딸을 기대했겠지만, 게을렀던 나는 매번 그냥 혼나는 쪽을 택했다.


실은 엄마를 화나게 한 것은 조금 지저분해진 방이나 덜 풀어놓은 학습지보다는 엄마의 숨을 죄어오는 삶의 무게였을 것이다.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 우리 집에 모든 일들을 미루고 나몰라라 하는 일가친척들, 여기저기 늘어가는 돈 들어갈 일들에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끝나지 않는 일들까지. 그리고 그 화를 내게 풀었을 것이다. 화가 난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또 화를 풀어내기에 가장 손쉬운 대상에게.


삶에 지친 부모는 토끼 같은 자식을, 며느리는 호되게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보다는 내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며느리를, 군대에서 고생을 하고 돌아온 이들은 자신들을 군대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사회나 자신들을 괴롭힌 선임병보다 군대에 가지 않은 이들을, 직장의 상사들은 이제껏 자신들이 당해온 부당대우보다는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려 하는 신입 사원을 미워한다. 자신들을 화나게 한 문제에 직면하기보다는 그보다는 손쉬운 화풀이 대상을 찾아서 화를 내고 미워한다. 이렇게 엉뚱한 이로 향한 미움은 이제껏 우리가 겪어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때 우리 엄마가 자신을 힘들게 한 이들에게 항의했다면, 부딪힐 용기를 가졌다면 우리 엄마가 훨씬 편안하고 행복한 젊은 날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러지 못했고, 계속해서 어려운 시절을 살며 내게 화를 냈다. 이런 엄마에게 때로는 나도 화가 났고, 상황이 개선되기보다는 그냥 화가 난 사람 수만 늘었다. 이것은 비단 우리 엄마만의 일이 아니다. 때로는 나도 엉뚱한 데 화를 내곤 하니까. 우리 모두의 화가 근본적인 이유를 향한다면 의미 있는 개선을 이뤄내겠지만, 대체로 화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에 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아지지 않고 화난 사람들 숫자만 늘어난다.


내가 겪은 한국 사회는 언제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주변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들 그 속에서 화가 나 있었다. 실은 화를 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싸우고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는 거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이 버거웠고 근본없이 내게 달려드는 몇몇의 분노를 뒤집어쓰다 어느 쯤에서는 화낼 힘도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그리고 화를 내기보다는 포기를 택했다. 포기는 나쁘다. 나아가지 못하니까. 우리의 사회는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여기저기 쏘아대는 사람들과 화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뒤엉킨 곳이 되어가고 있다.


화가 있는 사회가 지속되길 바란다. 화가 바른 곳으로 향하는 사회, 그래서 꼬이고 엉킨 잘못된 것들이 하나둘씩 풀리고 개선되는 사회.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싸우는 이들이 힘내어줬으면 좋겠다.




엄마와 나는 사이가 아주 좋다.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우셨고,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엄격하고 무서운 엄마였지만 또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따뜻한 엄마였다.


그런데 어째 글을 쓸 때면 아프고 나쁜 기억을 주로 사용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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