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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pr 02. 2022

냉장고 비우기

사람의 마음속에도 냉장고가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냉장고가 있다.

말 못 할 사연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개인 냉장고.


가끔 나도 나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냉기 속 켜켜이 쌓여있는 사연들. 이를 하나씩 꺼내보면 그때 그 시절의 풍광과 함께 그때 느꼈던 감정도 마시게 된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말을 들어놓고 왜 마음에만 담아두었을까.


이런 이야기들은 남들과 함부로 나눌 수 없었다.

모두 나만의 이야기 같아서.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냉장고 안이 쌓이고 쌓여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사연을 하나씩 꺼내본 것이 아닌데, 냉장고 앞에만 서있어도 냄새가 났다.

그건 바로 나의 치부. 패배의식과 열등감, 낮아지는 자존감, 질투와 분노.


냄새를 없애고자 냉장고 앞에 방향제도 갖다 놓고, 향수도 뿌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다른 사람들이 쓴 책 읽기.

냄새가 옅어지는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지속되는 시간이 짧았다.

더욱더 방향제와 향수를 가까이했지만 끝내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방향제와 향수를 뿌려보니 얻은 것이 있었다.

나만 이런 냉장고를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였고 그녀의 이야기였다.

비슷한 생각. 비슷한 아픔.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어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혹은 슬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것이 때로는 용기가 된다는 것을.




사실 냄새를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미 알고 있었다.

냉장고 비우고, 정리하기.


결국은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사연을 하나씩 마시고 비워야 했다. 그 시절 나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오랜 시간 냉장고 앞에서 방향제와 향수를 뿌려보니 띵해지는 머리와 함께 용기도 얻었다.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이제는 냉장고 문을 열고 들여다봐야겠다.

하나씩 비우고 정리를 시작하자.


부패한 이야기, 악취나는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그리고 다 마셔버릴 것이다.

그리고 토해내며 글을 쓸 것이다. 


비워진 자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넣고, 유통기한 전에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을 음미하며 그것에 대해 글을 쓸 것이다.


냉장고 비우고, 새로 채우기.

그렇게 나만의,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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