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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Jan 31. 2023

#0. 영업은 T.O가 많은 직무?!

연재소설 [나는 '영업사원'입니다.]

"입사 지원서를 면밀히 검토하였으나, 이번 기회에는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기회에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준이 받아 든 딱 50번째 서류 탈락 안내 메일이었다. 서울 소재의 인문대학 졸업예정자이고, 학점은 평범한 수준인 3.8 정도, 900점 내외의 토익점수, 방학기간 수행한 대외활동 2건의 이력만을 가지고 2010년대 초반 취업시장을 뚫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10번째 탈락까지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회사에 대해 먼저 콧방귀를 뀔 정도로 자신 만한 했다. 그러나 20번째 탈락 이후엔 지원 회사에 대한 분노가 피어올랐고, 30번째를 넘어서니 하반기 취업가능성에 회의가 밀려왔다. 그리고 오늘 50번째 탈락에 이르자 보잘것없는 자신의 이력에 대한 한탄이 밀려왔다.


"기준아, 이번에는 결과가 어때?"


"뭐 이제는 초탈했다. 어김없이 서류탈락. 넌 좋겠다. 진즉에 은행 2군데나 붙었고 이제 골라서 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겠네."


"이번에도 마케팅 직무에 지원한 거야? 그러지 말고 좀 규모가 큰 회사들 중심으로 영업 직무로 지원해 보는 건 어때? 영업이 아무래도 TO가 가장 많을 텐데 문과생인 우리에겐 그나마 수월하지 않겠냐?"


"영업? 내 성격에 어디 가서 뭘 제대로 팔 수 있겠냐? TO가 가장 많다지만 반대로 나처럼 애매한 인문대 학생들은 죄다 지원해서 경쟁률도 높을 거 같은데? 아서라 올해는 일단 마케팅 직무로 승부 보고 안되면 내년에는 영업으로 써보던가 하지 뭐."


"그래, 하고 싶은 직무가 중요하긴 하지. 기죽지 말고 기운 내라. 다음 주에 술 한잔 살게."


기준은 애써 거절하긴 했지만 친한 친구의 한마디 조언에 직무를 바꿔서 지원해 볼까 고민이 되었다. 딱히 마케팅에 큰 뜻이 있어 지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올 하반기는 마케팅 직무를 우선하겠다던 결심은 반나절만에 손쉽게 뒤집어졌다.


'그래, 일단은 합격을 목표로 써보자. 직무야 뭐, 마케팅이나 영업이나 큰 차이가 없을 거야.'  


이미 지원했으나 지원서 수정이 가능한 회사들부터 직무를 바꿔 지원하기 시작했고, 새롭게 올라오는 신입공채 공고는 영업직무 대상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어느덧 70번째 지원서를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하나둘 서류합격의 메일을 받아 들 수 있었다.


'난 영업형 인간인가? 아니면 TO가 확실히 많아서 유리한 건가?'


서류합격한 회사 중 산업/회사에 대한 선호보다는 큰 회사, 처우가 좋다는 회사 중심으로 면접을 준비했다. 평소 대학교 학회활동에서 발표를 도맡아 했던 기준에게 면접과정은 의외로 서류전형보다 손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1차 면접은 케이스 스터디 발표, 다대다 인성면접 순으로 진행되었고, 2차 임원면접은 그냥 관상면접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했다. 2차까지 이어진 4~5곳 회사의 전형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휘몰아친 이후에는 결과만 기다리는 나날이 이어졌다.


"HK그룹 2013년 신입사원 채용 전형 최종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신입사원 OT 및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개별 메일로 별도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기준은 지원한 회사 중 그래도 규모가 가장 컸던 HK그룹 계열회사에 최종합격했다. 4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졸업예정자 신분에서 어엿한 회사원의 신분으로 뒤바뀔 기쁨에 도서관에 전공서적을 내버리고 학교 앞 술집으로 달려가며 동기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야, 회사 앞 공룡호프로 다 모여. 오늘은 내가 산다! 나 오늘 최합 했다!"


"오 축하해 기준아! HK그룹 붙은 거야? 뭘로 지원했냐?"


"나?! 물론 영업이지! 회사의 꽃은 결국 영업 아니겠냐? 일단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 빨리 튀어와!"


입사하게 될 HK그룹의 계열회사가 정확히 어떤 것들을 만드는 회사인지, 또 기준은 그곳에서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은 잠시 뒤로했다. 영업직무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 같이 졸업예정자 신분이었으나, 하나둘 신입사원이 돼 가는 동기들의 대열에 자신도 합류했다는 기쁨에 흠뻑 취했을 뿐이다.


합격의 깃발을 나부끼는 동기들 간의 축하턱이 이어졌고, 거의 백지상태에서 치른 4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뒤로하고 나니 신입사원 연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로 첫발을 내딛을 시기였다. 그리고 기준은 생각보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UnsplashEric Prouz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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