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나는 '영업사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서기준입니다. HK그룹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준은 1월 초 2주간 이어진 그룹 신입사원 연수 이후, HK그룹의 케미컬 계열사로 배정되었다. 화학 소재 및 다양한 산업재를 생산하는 계열사로 주로 화학공학이나 신소재공학 등 엔지니어들이 많이 배정되는 계열사였으나, 기준은 그곳에 영업사원으로 배정되었다.
계열사 출근 첫날, 인사팀의 안내로 강당에 모여든 2013년 입사 동기는 총 80여 명이었다. 엔지니어 직무로 지원을 해 이미 각 지역 공장으로 발령이 확정된 인원을 제외하면 본사 근무 인원은 30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기준과 같은 영업 직무는 20명이었다.
오전 내 회사 소개와 간단한 HR 제도 소개 이후, 오후 시간에는 각자가 배치받은 부서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짤막한 부서별 소개 이후, 대리정도로 보이는 선배 직원들이 신입사원들을 인솔해 각 부서로 이동했다. 30명의 본사 근무 신입사원 중 기준이 속한 사업부로 배정된 동기는 안타깝게 단 1명도 없었다.
"서기준 사원 이죠? 박진영 대리입니다. 사업부 내 자리 안내 해줄 테니 지급받은 노트북과 물품 챙겨서 이동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대리님!"
홀로 박대리를 따라 이동하는 기준을 나머지 동기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왜 하필 나만 혼자 배정받은 걸까' 불안한 생각을 품는 것도 잠시, 기준은 이미 배정된 팀으로 안내되었고 딱 봐도 나이 지긋한 부장님처럼 생기신 분이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네 이름이 뭐꼬? 올해 몇 살이고?"
"네! 신입사원 서기준입니다. 올해 28살입니다."
"마, 적당히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여기 있는 네 선배들 깍듯이 모시고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일단 네 옆에 김동수 과장에게 물어봐라. 인마가 이렇게 생겼어도 아직 30대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말고. 네 사수니까 맘 편히 먹고 잘 따르레이."
"팀장님, 전 인솔 끝냈으니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랜만에 배정받은 신입사원이니, 잘 아시겠지만 특별히 잘 좀 케어해 주세요."
"그래 그래, 박 대리. 김 과장이 드디어 팀 막내 딱지 떼게 생겼는데, 내 나중에 인사과장이랑 해서 술 한잔 살게. 고맙데이."
사수인 줄 알았던 박 대리는 그렇게 기준을 덜렁 데려다 놓고 자기 자리로 사라졌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팀장님, 그리고 꽤 나이 들어 보이는데 좀 전까지 팀 막내였다는 과장님. 차장 명패만 있고 비어있는 자리 하나, 그리고 새롭게 막내를 담당하게 된 신입사원 기준까지 총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기준이 입사 전 생각해 왔던 팀 구성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함께 지내야 할 직장 동료이자, 선배들을 처음 만난 기준은 긴장감에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올해 신입사원 서기준입니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됐고,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자. 난 유통영업팀 김동수 과장, 여기는 우리 팀장님이신 배호걸 부장님, 그리고 옆에 빈자리는 임무영 차장님 이신대 오늘 외근 가셨다가 늦어지시는 거 보니 아마 내일 오실 거야. 다른 건 천천히 배우면 될 거 같고, 너 차는 있냐?"
"차 말씀이십니까? 집에 아버지가 쓰시는 차는 있습니다."
"아니, 집에 있는 차 말고 네 차. 인사팀에서 제대로 안내 안 했나 보네. 작년부터 영업사원 여비 규정이 바뀌어서 자차로 운행하고 유류비와 기타 비용을 지원받는 구조야. 너 차 없으면 일단 중고차부터 한대 사."
'입사하자마자 첫날부터 차를 사라니 이건 무슨 경우인가' 농담하는 건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기준이었지만, 중요한 질문 한 가지가 계속 목에 걸려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 과장님, 그런데 제가 아직 면허가 없는데 중고차를 살 수가 있나요?"
"뭐? 면허가 없어? 너 영업으로 지원한 거 아니야? 이건 또 무슨 경우야, 팀장님 얘 면허가 없다는데요?"
자리에서 한가롭게 휴대폰을 보고 있던 배 팀장은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라는 표정이었지만, 곧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일단 회의실로 가제이. 우리 팀 소개도 좀 하고, 면허 없는 영업사원은 어째야 하는지도 얘기해 보자고. 동수야, 회의실 하나 잡으레이."
그렇게 기준은 입사 첫날, 급조된 팀 첫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주제는 '면허 없는 신입 영업사원'에 대한 대책 회의였다.
이미지 출처:Unsplash의Bas Peperz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