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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미상 Aug 10. 2023

네일샵에서 인생을 들었다#5

캐치 미 이프 유 캔

 나만 내뺄 순 없었다. 

당장 이번달 월급부터 나올 구멍이 없어 보였다.

  날짜가 밀리긴 했어도 지난달까진 모든 직원이 월급을 수령했다. 이대로라면 이번달 월급은 더 밀릴 것이고 어쩌면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재료값도 관리비도 없는 마당에 월급줄 돈이 있을 리 없다. 


같이 동고동락하던 회사가 어려울 때 기다려줄 마음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안될 때도 있고 잘될 때도 있는 법이지만이건 경우가 달랐다.

  직원들 모두 자기 자리에서 본인 몫을 해내고 있고 심지어 매출도 잘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원장의 불찰로 월급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라니

이 샵은 접히는 게 맞다.


지금 같으면 퇴직금 문제가 불거졌겠지만 그땐 마지막 월급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더 급했다. 

그만둔다는 얘기를 전하는 순간 월급조차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그동안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나를 판단해 월급을 깎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일반 정규직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일이고

비정규직조차 손사래를 칠 실상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이 또한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이 바닥이 싫다면 중이 떠나면 된다. 

무언가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용업도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것이 바뀌었고

나는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남은 4명 중 피부관리사 한 명이 급히 발을 뺐다. 

역시 똑똑한 애였다. 눈치를 금방 챈 모양이다. 자기는 먼저 그만두겠다며 엄마를 대동하고 와 

짐을 꾸려 나갔다. 연락해 보니 엄마아빠가 쌍기를 들고 월급을 받아냈단다. 

오케이.

일단 아이들에게 나의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제 그만두려 한다고. 

그러니 너희도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후임 찾아두고 떠나라고. 

들어오게 될 후임은 후임대로 그 사람 몫이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이샵이 접히든 계속가든

그건 원장님의 몫이다. 


일단 한 명은 떠났고, 한 명은 남았다. 남아있는 직원은 어차피 몇 달 후 서울로 이사 계획이 있던지라

한 두 달만 버티다 나가기로 했나 보다. 

이제 내가 그만 둘 차례였다. 

그냥 그만둔다는 말로는 원장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명 또 찾아올 테고, 또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말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제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쁜 면을 감추고 

좋은 면을 더 많이 드러낸다. 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 쉽게 자신의 나쁜 면을 드러낸다.

  좋은 사람이 아닌 사람 옆에 있기에 나는..... 너무... 나약하다. 


무작정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씹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식의 끝맺기는 내가 취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댔다간 무슨 수를 써서든 마음을 돌리려 할 거다.

 그 쫓고 쫓기는 시간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면 된다. 


해외로 떠나는 거다. 


나이스한 해결책이다. 

이왕 도망치는 거 파라다이스로 가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억울할 것 같지 않았다. 


해외에서 한 번쯤 살아보는 낭만을 꿈꾸지 않은 이가 있을까. 

떠밀리듯 밀려온 기회였지만 낚아챈 듯 살아봐야지. 도망을 핑계로 날아가봐야지. 


급히 공고문을 내고 사람을 뽑았다. 최대한 똑스럽고 독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후임으로 뽑아두고

샵을 나왔다. 그럴싸한 외관에 잘 정돈된 샵에서 후임을 물색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원장님은 잡고 또 잡았지만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나는 잡힐 마음이 없었다. 


일단 샵을 그만두고 해외로 떠나기 전 필요한 걸 준비했다.

한 번쯤 해보고 싶던 영어회화도, 혼자만의 여행도, 이번이 기회였다. 

 대학 졸업 후 일만 해왔다. 잠깐의 쉼이 필요했고 이 여행은 인생에서 옳은 결정이었다. 


그 짧은 준비 기간에도 원장님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친구로 찾아와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도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가지 말라는 얘기를 전하고 떠났다. 

그 사이 내가 구해놓은 후임이 샵을 그만뒀다는 불행한 소식을 들었고 

 나는 서둘러 준비기간을 앞당겨 떠나버렸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날 해방감을 느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라는

두려움은 이 해방감을 이기지 못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다. 


전화기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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