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민주주의 본질은 모두를 위한 문화(Kunst für alle), 즉 인간은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인 ‘문화권(文化權)’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민주주의는 최근 지역문화 협력과 공생에 기반 한 ‘문화권(文化圈)’에 대한 이슈로 논의가 확장된다. 핵심은 문화권역의 협력을 통해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문화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크게 보면 “문화권(文化圈)의 문화권(文化權)”이 바로 문화분권이다. 지역문화의 문화권(文化圈)에는 선악 미추가 없어 ‘격차(格差)’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문화권(文化權)으로 이야기를 돌리면 문화기반시설 인프라의 ‘격차(隔差)’가 엄연히 존재하며, 그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매년 문체부에서 발표하는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이 공개되면 지역 언론은 ‘문화기반시설 수도권 집중 심화’라는 기사를 연일 쏟아낸다. 데이터가 뒷받침을 하 듯 부산의 경우,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기반시설의 숫자만 봐도 제2의 도시 치고는 초라하다. 이웃 경남과 울산 역시 문화기반시설의 전문인력, 이용현황, 소장자료가 전국 최하위권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다. 현재 세 지자체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동남권 메가시티가 완성되어도 수도권에 비해 문화기반시설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동남권 시민들의 문화권(文化權)이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문화기반시설 부족은 결국 지역민의 질 높은 문화예술 작품 향유를 침해한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문화를 공평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국립 문화기관을 설립·운영 중이나,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립 공연장, 미술관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기반시설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합창, 연극, 무용 등 국립 공연예술단체 역시 서울에 집중되어 수도권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이 아니라 서울시립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매번 등장하는 지역 문화계의 문화공약 단골 메뉴가 있다. 국립 문화예술기관의 균형 배치다. 부산의 경우 10여 년 전 부산 국립아트센터 건립,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부산 분교 유치에 적극적이다. 경남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진작 심각하게 검토조차 하지 않거나 정책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컨대, 부산 국립아트센터 건립 요구와 관련하여 문체부는 2011년 [부산 국립극장 기본계획 수립]과 [국립 공연장 시설 재배치 연구] 용역을 실시하였으나, 기초연구로만 남아 용역에 제안된 내용이 정책적으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부산 국립아트센터는 당시 취지와 다르게 국립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체 ‘국제아트센터’로 명칭 변경되었다. 지역 문화계를 위한 공약(公約)이 그야말로 공약(空約)으로 끝나버린 경우다. 동남권의 문화 인프라 확충, 지역균형발전의 관점에 따른 국립 문화예술기관의 재배치에 대한 정무·정책적 대응이 절실하다.
국립 문화예술기관의 수도권 집중은 해외 사례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프랑스는 각 지역과 장르 특성을 고려해 국립공연장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지원체계를 정립한 국립공연장 라벨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주도하여 만드는 국립 문화시설 정책은 영국과 독일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지역에 각종 왕립, 국립, 주립 문화시설을 골고루 배치하여 문화시설의 지원 방식과 예산 결정에 지방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두 지자체가 협력하여 한 지자체는 시설을 두고, 옆 지자체가 운영비를 부담하는 사례도 있다. 런던에 본거지를 둔 영국의 왕립 문화예술단체는 지역의 공연장들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 순회공연·전시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문화예술기관의 균형 배치와 관련한 위와 같은 해외의 정책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최근,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대한 전국 지자체의 국립 문화시설 유치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동남권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문화권리 확보의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 간 경쟁에서 동남권의 문화 인프라 확충이라는 문화권역 정책 어젠다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부산, 경남, 울산은 국립 문화시설 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 동남권의 문화권(文化權) 확보에 대한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先공동유치 後입지선정’이라는 전략적 연대를 맺어야 한다. 이 외에도 부·울·경은 양질의 국립 문화예술단체 프로그램 확보를 위해서도 공동 협력해야 하며, 영국의 사례와 같이 국립 문화예술단체와 장르별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제공받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계약을 국립기관과 맺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의 목적은 바로 지역문화 인프라 격차(隔差) 해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체부의 정책 입안자는 이점을 꼭 명심하며 부디 법대로 법을 집행해주길 바란다. 부·울·경도 지역 균형발전에 걸맞게 국립 문화예술기관의 동남권 이전 및 균형 배치를 문화정책적 차원의 검토를 넘어 이제는 국가정책 의제로 격상해서 공동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