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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산 Dec 22. 2022

(Prolife)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나

오클라호마 주지사 제임스 랭크포드의 낙태 반대 명연설

오늘은 미국 오클라호마 현 주지사인 제임스 랭크포드가 상원에서 낙태 반대를 호소한 명연설 주요 내용을 공유드리겠다. 이런 정치인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지길 소망한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어 바로 풀영상을 보셔도 된다. 영상길이는 20분에 불과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P3GmPZO2gHE


<제임스 랭크포드 연설 주요 내용>

최근 출시되는 차에는 엔진을 끄면 "뒷좌석을 확인하세요" 같은 알람 기능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기능이죠. 자동차 업체가 아이들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 아이가 한여름에 차량 뒷좌석에 갇혀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단초로 뒷좌석 모니터링 알람기능이 추가된 것입니다. 그 사건이 언론보도됐을 때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맹렬히 화를 냈고 믿을 수 없어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가끔 우리 문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엄마와 아기가 불과 몇달 전 낙태기관으로 향했다면 그 아이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고 뉴스거리도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한 아이가 차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에 맹렬히 분노했던 자들은 낙태를 엄마의 재생산권이라고 불렀을 것입니. 같은 아이고 같은 엄마입니다. 차이는 하나도 없고 단지 몇개월의 시간차만 있을 뿐입니다. 재생산권이란 참 귀에 듣기 좋게 제조된 단어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참된 의미는 태아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그 몸조각을 흡입기로 하나씩 빨아 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왜 낙태를 정상으로 취급하고, 아이를 뜨거운 차 뒷좌석에 방치해 죽게 만드는 사건만 비극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뻔한 질문에 답변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아기입니까?" 이보다 뻔한 질문이 있을까요? 모든 아이는 소중합니까? 아니면 특정 아이만 소중합니까?


우리 사회에는 팩트에 대해 논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이는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것들이 팩트인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너는 너만의 팩트가 있고 나는 나만의 팩트가 있다고도 합니다. 미디어, 빅테크, 사회운동가 등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가 직면한 분명한 팩트를 수긍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음에 한탄합니다. 분명한 진실에 대해서도 수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아기라고 답하지 못합니다.


금은 크기와 무관하게 가치가 있습니다. 바닥에서 금 조각을 발견했더라도 모양, 크기에 상관없이 가치가 있죠. 금이기만 하면 차별이 없습니다. 금의 가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금의 크기가 크든 작든 그 가치는 동의하면서도 모든 아이의 생명이 가치있다는 사실엔 동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 어떤 사람들은 금이 아이들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소중합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원해서 생기면 소중하고, 원하지 않으면 무가치하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엄마 아빠가 누가 귀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누가 의료 폐기물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계신 모두 우리가 남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원칙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태 안에 있었을 때 어떤 대접을 받길 원하셨나요? 낙태문제에 대해 가볍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도 경솔한 마음으로 낙태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신이 난 채로 낙태를 하러 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 낙태현장에서 본 낙태의 모습, 냄새, 소리를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 않습니다. 그 순간 힘없는 아이가 죽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안고 살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비통합니다. 그들이 재생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비용을 주고 그들의 아이를 제거했다는 그 기억 때문에 말이죠. 저는 그들이 어떤 감정으로 살아갈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결국 우리는 태아가 아이냐는 질문 앞에 놓이게 됩니다.


아이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는 정치적 입장이 있고 이 주제를 끄집어낼 때마다 시끄러워집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제가 교육비, 양육비, 사회 의료비를 위해 충분히 재정을 충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핵심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진짜 질문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모두가 압니다. 우리는 태아가 아이인지에 대한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 중략 -


낙태가 실패해 태 밖으로 나온 아이가 살아있다면 그 아이는 의료간호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것이 왜 어려운 결정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 안에서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몸을 절단하면 안 된다는 게 왜 논쟁거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왜 생명보호를 위해 맹세한 의료계 종사자가 고용주로부터 생명을 앗아가는 낙태시술을 강요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것이 왜 논쟁거리인가요? 미국이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생명권, 자유, 행복추구권입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런 권리들이 자명(Self-evident)하다는 것입니다.


낙태 옹호자는 태아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낙태를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고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감독 하에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에게 당신들이 과학을 따른다는 말따위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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