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
때로는 양식 대신 빗물을 걸어놓고
하루치 허기쯤은 청빈이라 여기며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그렇게 살아간다
사부작사부작 놀고 운동도 소심하게 한다.
읍성은 그래서 나의 놀이터이면서 운동의 장소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는 풍경들이 그곳에 있다.
저토록 찬란한 거미줄을 펼쳐놓고 거미는 꿈꿨으리라. 먹이가 넘치도록 풍성한 하루를. 그러나 어쩌랴. 삶은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럼에도 눈부신 것이 삶이다. 내가 꿈꾸던 미래가 펼쳐지지 않는다 해도 빗물을 걸어 둔 저 거미줄처럼 초연하게 영롱하게.
#디카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