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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애라 Apr 04. 2024

웃는 얼굴에 속지 말자

살고 쓰다

이것은 반성문이다. 지난 3일에 올린 내 글에 대한 반성문이다. (참조글: https://brunch.co.kr/@178da6e9256d4c7/31) 지난 글에 들어있는 내가 창피해서 지우고 싶지만 지우지 않겠다. 이런 어리석은 사례는 두고두고 표지로 삼아 훗날의 애견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3일이라고 썼지만 어제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밖에 안 지났다. 일주일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저께 개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부터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런 저런 일정과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불안했던 모양이다. 불안하니까 잠을 잘 수가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브런치에 대고라도 떠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걱정은 개가 치매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모자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개 치매에도 약이 있을까? 진단을 받고 나면 손도 못 쓰고 나빠져 가는 걸 봐야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됐는데, 개 치매에도 약이 있었다. 혹시 나 같은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으면 가까운 대형 동물병원에 가서 문의하시길 바란다. 작은 동네 병원에서는 모를 수도 있다.)


일정을 다 취소하긴 했지만, 날씨가 궂고 비가 제법 와서 나가는 일을 자꾸 미루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에야 외출을 결심했다. 마침 동네 병원 중 하나는 수요일에는 점심시간이 없고 대신 문을 일찍 닫는다고 했다. 그리로 가기로 결정했다. 새로 개업한 곳이라서 다니던 병원이 아니었는데, 이참에 새로운 곳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정말 하늘이 도운 일이었다. 지난번 병원은 개의 나이가 너무 많다 보니 웬만한 것을 전부 '노환'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병원은 달랐다. 나이가 16~17살로 추정된다고 했는데도 매우 꼼꼼하게 진료를 보았다. 백내장인 줄로만 알았던 눈도 여러 원인이 있다고 했다. 일단 털을 잘 깎아주라는 뼈아픈 충고를 들었다. 털이 복실복실하면 보기에 귀엽기 때문에 놔두곤 했는데, 그러면 각막을 털이 긁어서 악화된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평화로웠다. 진짜 문제는 소변을 못 가리는 일로 치매 상담에 들어갔을 때 터졌다.


돌아보면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싶다. 대소변이 아니라 소변인 것이 이상했어야 했다. 정신이 이상하다면 둘 다 못 가려야 하지 않나? 어째서 소변만 못 가리는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좀 했어야 했다.


아무튼 제대로 검사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었고, 결과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끔찍하다. 개의 뱃속에 엑스레이 판독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방광과 요로에 수십 개의 돌들이 들어 있었다. 동글동글 모여 있는 것이 알집 같기도 하고 작은 포도송이 같기도 했는데, 끔찍하게도 커다란 돌덩어리 두 개가 방광 크기에 맞먹게 들어 있었고, 요로에는 손가락 두 마디는 족히 될 길이로 잘디잔 돌들이 길을 꽉 막고 있었다.


의사는 징후가 없었냐고 내게 물었다. 오줌을 볼 때 아파서 낑낑대거나 혈뇨를 보거나 하는 게 징후라고 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지만 병원을 나오며 생각하니, 혈뇨 증상이 있긴 했다. 몇 달 전에 남편이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이상한 자국을 발견했다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남편은 개의 건강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아주 무심하게 넘긴 듯했다. 나 역시 그때 더 세심히 살피지 못했으니 비난할 자격은 없다. 둘 중 누구라도 살폈으면 일찍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모든 후회를 넘어서 가장 가슴이 아픈 사실은 우리 개가 아픈 내색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는 낑낑대거나 아니면 끙끙 앓기라도 했을 거랬지만 단연코 그런 적이 없었다. 소리를 낼 때는 화장실 가고 싶다고 울 때뿐이었다. 문을 열어주면 금세 뚝 울음을 그치고 들어가서 볼 일을 봤다. 그저 볼 일 보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는데, 그건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이제 알겠다. 자다가 벌떡 깨서 어딘가로 마구 걸어가는 이상행동은 통증을 참기 위한 것이었다. 의사가 테스트 해봤을 때 시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는데, 집에서는 의자 다리 같은 곳에 머리를 쿡 처박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통증 때문에 앞을 살필 여유가 없었나 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놀랍고 애처롭다. 밤새 헥헥거리며 집안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걸 내가 말려 보려고 끌어안으면 펄떡거리며 빠져나가려고만 했지 아프다고 낑낑대지조차 않았다. 내 개는 놀라울 정도로 고통을 잘 참고 어리광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병명을 진단 받던 당시에 나는 정말 우리 개가 아픈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한 술 더 떠서 어리석은 질문도 했다. 수술을 하지 않고 두면 어떻게 되냐고. 개가 나이가 많은데 수술 위험을 감수하는 게 맞느냐고. 그랬더니 의사가 그냥 놔두면 죽는다고 했다. 천천히 죽는 게 아니라, 이 정도 상태면 오늘 내일 중에도 방광이 터지면서 죽을 수 있다고. 지금 살아있는 게 운이 좋은 거라고. 돌이 너무 많아서 동네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쪽지를 받고 부랴부랴 남편에게 알렸다. 당장 대구로 가야 한다고. 그랬더니 남편은 황당한 모양인지 나와 개를 데리러 와서 의사에게 나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개가 나이가 많은데 수술하는 게 옳으냐고. 그러자 의사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나이가 많아서 생기는 수술 위험과 지금 병증의 정도를 저울질하면 수술하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말이다. 개가 결석 때문에 엄청 고통스러울 거라고.


서둘러 의사에게 받은 병원 목록에 전화를 걸고 오늘 바로 응급 수술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은 병원으로 차를 몰아 달려갔다. 평소 멀미가 심하고 차량 이동을 거의 하지 않던 노견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내내 헥헥거리며 괴로워했다. 그 헥헥댐이 고통의 표현이란 것이 마음 아팠다.


밤새 히죽히죽 웃으면서 집안을 종종걸음으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상상해 보았다. 비명도 인상 찌푸림도 없는 그 히죽거림이 사실은 고통의 표현이다. 그는 지금 뱃속에서 칼로 긁어내는 듯한 통증을 참는 중이다. 우리 개가 요로결석 때문에 밤새 겪은 일을 사람을 치환하면 이럴 것이다. (나는 와중에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서 사진을 떠올렸다. 조르주 바타이유가 변태처럼 들여다봤다는 사진 - 조각을 찢겨 죽은 중인 사람을 찍은 사진 말이다. 개의 고통을 상상하는 나는 바타이유만큼이나 변태인가? 아니면 객체를 이해하려는 몸부림인가?)


한 시간을 달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엑스레이를 이관시켰다. 집 근처 병원에서 40분 넘게 기다려서 진료를 보고, 다시 큰 병원으로 한 시간 넘게 차를 몰아와, 또 진료 대기를 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온갖 검사 항목을 안내받고 우리는 또 대기했다. 내 멀미가 심해서 근처 약국에 가서 남편이 멀미약을 사왔고, 드디어 의사를 다시 만났다. 검사 중에 카테터로 요로 쪽의 결석을 방광으로 밀어올렸으니 이제 방광을 열고 수술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심장이나 신장 등 다른 부분은 나이에 비해 매우 건강해서 수술에 문제가 없겠다는 소견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기뻐야 하나 울어야 하나 속상해야 하나 자책을 해야 하나.


집에 초등생인 아이들만 있고, 저녁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수술이 끝나고 나오는 개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수술 결과만 알려달라고 하고 집으로 와야 했다. 작은 병원만 있는 지방에 산다는 게 이럴 때는 정말 속상했다. 병원 접근성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데, 그건 노인이나 아이나 다 마찬가지고, 개도 마찬가지다. 큰 병원 옆에 살았으면 덜 아프고 덜 고생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속이 많이 상했다. 남편은 대구로 이사올까 하는 빈 말을 또 해댔다. 이사할 수 없는 거 알면서.


어제는 저녁 내내, 그리고 밤새 급체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경을 너무 써서 그런 것 같았다. 밤새 잠을 설쳤더니 새벽에 몸이 무거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얼른 아이들 등교준비부터 시켰다.


오늘 첫 면회시간에 맞추려고 캡 모자를 눌러쓴 채로 기차를 탔다. 대구 시내 운전이 처음이라 차를 가져가면 오히려 지각할 것 같아 불안했다.


기차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종종걸음을 쳐서 면회 갔더니 개가 이러고 있었다.

 


입원실 밑에 의자를 놓고 기다려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깊이 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잔뜩 눈치 보는 사람처럼.


눈도 안 보이고 유리에 막혀 냄새도 안 나니 내가 온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 녀석이 들리도록 크게 소리를 치면 다른 입원견들에게 민폐일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그런데 십 분 뒤에 우리 개 위층의 반려인들이 들이닥치더니 큰소리로 개를 부르고 유리를 두드리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밀려났는데, 밀려나서 후회했다. 나도 불러나 볼걸. 아니다. 그건 민폐지. 그리고 우리 개에게 인사를 전하고 돌아나왔다. 내 인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기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사진을 보내주었다. 답신이 왔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반월당 환승로에서 아이들 줄 간식으로 빵을 살 때도, KTX 열차를 기다릴 때도, 열차를 타고 돌아올 때도 누구와 어떤 대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말이든 글이든.


슬픔은 언어와 연동되어 있나 보다. 슬픔을 참고 있을 때는 언어도 막혀 버린다.


나는 왜 다른 견주들처럼 호들갑스럽게 슬퍼하지 못할까? 고통을 잘 참던 우리 개처럼 나도 참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참는 사람인걸까? 개는 주인을 닮는다던데.


집에 와서도 내내 마음이 안 좋아서 쌓아둔 할 일 틈에서 갈팡질팡 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병원에서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 웃는 모습 어떻게 포착했는지 병원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저 녀석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웃는 바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아니지. 마음 놓지 말아야지. 저 웃는 성격에 속아서 개를 죽일 뻔 해놓고 무슨 말이래?


내일과 모레는 인천에 간다. 미리 예매한 공연이 있는데 취소할 수 없는 표인데다가 양도할 곳도 없어서 강행하기로 했다. 게다가 숙소까지 미리 예약해 뒀는데 다 날릴 수는 없었다. 모레는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내려와 다시 자차로 대구로 달려가서 퇴원 수속을 밟아야 한다. 원래 일정은 인스파이어 리조트를 구경하고 공연을 본 다음에 다음날 부천 관광까지 하고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공연만 딱 보고, 새벽같이 서둘러 내려와야 한다.


훗날 이 일들이 추억이 될까?


삶은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고통을 덮는 웃음들로 가득하다. 그게 내일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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