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대기 회고
첫 회사는 학생 때부터 다녔던 패션 학원이었다.
대학 졸업 후, 집에 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엄마는 내가 다니던 학원을 찾아갔다. 무엇이 그리 불안했는지 엄마는 원장님에게 하소연했고, 원장님은 도와주겠다고 했다.
안심되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학원에 같이 가자고 했고, 영문을 몰랐던 나는 엄마와 함께 학원을 찾았다.
몇 년 동안 다닌 학원의 원장실은 그날 처음 들어갔었다. 원장님은 내게 학원 사무직을 권했고 나는 승낙을 했다.
이유는 익숙한 곳이었고,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비는 시간에는 강의실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졸업 후 한 달 정도 집에 있던 나는, 딸이 집에서 노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엄마의 마음을 시작으로 직장인이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학원 문을 열고, 출결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청소를 하고, 학생 관리와 상담, 정산을 했다. 비는 시간이 긴 경우는 흔하지 않았기에, 실제로 공부를 할 순 없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2~3일 후, 대학교 교수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패턴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이 아는 친구가 패턴샵을 열었는데, 어시스트를 찾고 있어. 여기에서 일해 볼래?"
당시 나는 패턴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항상 노래를 불러댔기에 내가 패턴에 관심이 많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나의 꿈을 생각한다면 정말 좋은 기회였다.
패턴사는 신입은커녕 인턴도 뚫기 힘든 아주아주 희박한 직업이니까.
3~5초 정도 고민하던 나는 이 제의를 거절했다.
이유는 학원 출근을 이미 하고 있었고, 원장님과 엄마의 이야기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거졀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엔 나도 이때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교수님은 정말 좋은 기회라며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며 다시 한번 거절했다.
그렇게 꿈에 다가갈 수 있었던 기회를 보내고, 1년을 학원 생활을 했다.
살면서 중간중간 그때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많이 아쉬웠다. 거절 후에도 잘한 건지 잘 몰랐다.
당시의 나는 어른들의 눈치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봤다.
패션 일러스트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도 비용도 부담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원장님은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해 주셨고,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학생들은 사무 책상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자신들과 수업을 같이 듣는 것을 의아해했으나, 이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업 중간에 상담이 오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나는 상담을 해야 했다.
수업은 대체로 7시~9시까지 진행되었기에 상담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긴 상담이 오면 그날 수업은 듣지 못했다.
어느 날 원장님은 재직자 내일배움카드를 만들어서 수업을 들으라고 하셨다. 개인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수업 시간은 2시~6시로 근무 시간과 겹쳤기에, 수업 시간에 출석을 하고 수업을 듣되, 상담이 오면 상담을 해야 하는 경우였다. 학원 상담 빈도 자체가 많진 않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어르신 분들을 알게 되었고, 내가 화장실에 가 있거나 할 땐 어르신 분들이 상담자에게 잠시 기다리라며 안내를 해 주기도 하셨다.
감사한 경우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이 직업에 만족도가 높진 않았다.
사무직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줬다. 학생 출결/관리는 나에겐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3달 정도 사무직을 하다 원장님에게 괴로움을 호소했다. 밤에 잠도 잘 안 온다는 말을 들은 원장님은 중고생 대상 방학특강 강사로 나의 포지션을 변경해 주셨다.
사무 포지션은 새로운 분이 오게 되었다.
강사 일은 확실히 사무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학습 자료를 직접 만들면서 공부가 되는 점이 가장 큰 이점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가르치는 일은 매우 떨렸다. 요즘 학생들 무섭다는데.. 하는 식의 걱정을 했고, 내향적인 내 성격 또한 염려되었다.
하지만 막상 진행을 하니 아이들은 잘 따라와 줬고 커리큘럼이 공통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크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번의 방학특강을 무사히 잘 마쳤다.
특강 강사이기 때문에 사무직 보다 근무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급여도 그만큼 낮아졌지만 만족도는 높았다.
어느 날, 저녁에 진행하는 중고생 담당 선생님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나이가 26~28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어리셨네..)
원장님은 그 자리에 나를 넣어주셨다. 나는 준비가 안 됐다며 걱정했지만, 원장님은 걱정 말라며 하셨다. 퇴사하시는 선생님은 학생들 진도 상황을 알려주셨고, 나는 긴장을 엄청한 채 첫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자신이 알던 선생님이 아니라서 놀란 눈치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담당 선생님 변경에 대한 공지를 했다. 방학특강에서 봤던 학생은 기뻐했고, 이전 선생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당혹감이 서렸다.
첫 수업 이후, 학원을 관두는 학생이 생겼다. 원장님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남은 학생들에게 잘 가르쳐주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학생들도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원 강사 일에 만족했다.
원장님이 미용실에 다녀오겠다며 학원을 봐 달라고 하셨다.
나의 퇴근 시간에서 1시간 전에 하신 말씀이었다.
1시간 정도 오버될 수 있다고 하셨고,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님은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학원에 돌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원장님을 기다렸던 그 시간은 나를 굉장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생각나나 보다. 원장님은 미안하다며 생각보다 소요가 오래됐다는 말을 했다. 어서 집에 가라는 말에 나는 바로 학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처참한 기분을 느꼈다. 하루가 학원에 다 버려진 날이었다.
다음 날 늦게 출근하는 일은 없었다.
방학특강에서 저녁반까지 수업을 듣는 학생이 서류를 들고 나에게 왔다.
"선생님, 저 패션과로 이 학교랑 이 학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단지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옷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게 내가 아는 전부인데, 일부 학생들은 진로까지도 나하고 상담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무게와 책임,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 아이에게 어떻게 답해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날 이후, 나는 원장님에게 퇴사를 말했다. 퇴사 사유는 나는 아직 부족하고 실무를 경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내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라서 걱정이 된다는 말로 회유를 하려고 하셨지만, 끝내 설득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첫 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장님을 통해 부조리한 동시에 득을 본 경우도 있었다. (포지션을 바꿔주신 것처럼)
그리고 원장님 말씀처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졌던 걸 수도 있겠다.
큰 고통이나 큰 일을 겪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후의 나는 퇴사를 엄청나게 하게 된다.
현재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