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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효 Jan 11. 2021

물건의 나이

아띠끄 파리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생각해보면 물건은 인간보다 오래 산다. 살면서 인간의 별의별 꼴을 다 보았을 것이다. 길게 늘어뜨려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다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분명 수 없이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버려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 물건이 닳아 없어지기까지 인간은 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이렇게 지구를 포화 상태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버려지지 않는 삶도 분명 존재한다.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귀중한 물건들은 그 물질적 가치를 떠나 이미 귀중하고 소중한 티가 난다. 할아버지가 엄마 결혼 선물로 물려주셨다는 자개장은 한눈에 봐도 사람 손을 타 윤기가 나고, 할머니가 장작불을 때서 밥을 짓던 솥은 이미 몇십 년도 더 되었다는데 새 것보다도 반들반들하다. 


시간을 담은 빈티지 물건을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상자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희열을 즐기는 이가 분명 나 이외에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쓰임이 없어져 창고에서 혹은 서랍장에 몇 년이고 잊혀 있던 물건들이 주인을 찾아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깨지거나 갈라져 더 이상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도자기도 흠이나 균열을 가리기보다 오히려 드러내면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오브제가 된다. 일본 도자기 복원 기술인 킨츠키 (Kintsugi)는 갈라지거나 깨진 도자기를 유약이나 점토, 생옻으로 접합을 하고 위에 금분 혹은 은분으로 접합부를 마감하여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매력적인 공예 기법으로 물건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오롯이 존중한다.   


이렇듯 손 때 묻은 오래된 것에는 늘 사연이 있기에 좋다. 아주 매끄럽고 완벽한 것은 매력이 없다. 깨지고 금이 간 것들은 역사를 담고 있기에 시간이고 사연이겠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금이 간 벽에 스미는 늦은 저녁의 석양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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