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대하여
그렇게 고생하고 바라던 소르본 상경학 석사 학위를 손에 넣었건만 대학에서 배운 불어는 도대체가 직장 생활에서는 별로 쓰임이 없었다. 상사의 말을 80% 알아듣고 나머지는 불어 사전에서 그와 비슷하게 들린 단어로 짐작해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업무를 익히기도 빠듯한 시간에 단어를 찾느라 진이 다 빠져 스트레스가 늘어갔지만 언어도 운전과 마찬가지로 실수하더라도 하면 할수록 는다고 생각하고 그저 묵묵하게 견뎌냈다. 그랬더니 언어가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눈치가 늘더라.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배우자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 파리 경시청으로부터 가능한 비자 인터뷰 날짜가 8개월 후라는 편지를 받았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말인즉슨,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전락되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으며 내게 할당되었던 실업 급여 역시 비자를 발급받을 때까지 당분간 보류된다는 뜻이었다. 화가 치밀어 다짜고짜 경시청에 전화를 걸어 따지기 시작했지만 전화를 받은 경시청 직원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기다리라며 말을 줄이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뭘 하지?
늘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고, 시작하고, 설계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철장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휴가라기엔 너무나 긴 8개월 동안 마음껏 쉬거나 혹은 그 시간 동안 할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그때 여기저기에서 사다모은 빈티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빈티지, 빈티지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골동품이 아니라도 예전 것들이다. 퇴계와 율곡 같은 분이 쓰던 유래 있는 문갑이 아니라도, 어느 조촐한 선비의 손때가 묻은 대나무로 짜서 옻칠한 문갑이다... 화려하여서가 맛이 아니다. 오래가고 정이 들면 된다."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에세이 글 중 하나로 "사람은 가구와 더불어 산다"로 시작되는 페이지 한편을 접어 둔 것이 새삼스레 참 나 다웠다. 화려한 새 것보다 정이 들어 윤기 나는 물건들이 더 귀하고 아름답다고 이전에도 생각했었나 보다. 빈티지로 돈을 벌겠냐며 몇몇 비웃는 이들이 있었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 썩 개의치 않고, 차분히 해야 할 일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업 계획서를 쓰고 회계사를 만나 회사 설립을 논의하고 비용을 지불하니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회사가 설립되었다. 그때 나는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종종 연인들에게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묻곤 하는데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짠내 나는 구구절절한 이후의 이야기보다 희망에 넘치는 시작의 낭만을 선호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끝은 늘 아쉽고 슬프지만 시작은 늘 그렇듯. 낭만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