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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품격에 관하여  

우아한 여유를 갖고 산다는 것 -피에르 이브 로숑 일화

미국과 유럽 생활을 하면서 겪어 본 많은 사람들중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품격 있는 멋쟁이는 단연 피에르 이브 로숑이다.  상상할 수 없는 부를 가진 사업가나 명문가 출신들을 만나봤지만 그 누구도 이 80살의 프랑스 신사에게는 대적할 수 없다. 럭셔리 호텔 인테리어의 일인자로서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그 주변의 공기를 전염시킬 정도의 우아한 아우라를 뿜는 품격 있는 신사이다.  뉴욕의 Waldorf Astoria 나 파리의 Four Seasons Hotel George V와 같은 럭셔리 호텔 디자인의 대명사인 그는 호화로운 클래식 프렌치 디자인으로 유명한데 혹자는 그가 보여주기 식의 허세스러운 디자인으로 무장한 속물이라고 비난하지만 가까이서 겪어본 그는 내가 만난 어떤 슈퍼 스타 디자이너보다 고상한 인품과 겸손한,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 하겠다.  




나는 28살 무렵 운이 좋게도 그의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시카고지사와 파리 지사를 오가며 유럽과 아시아 곳곳에 5성급 호텔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하는 탓에 그와 출장에 동행하는 일이 잦았는데 포시즌 호텔 시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일이 생각난다.  20년대 아르데코 양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그는 비율에서 오는 균형 잡힌 미학을 중시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섬세한 디테일과 장식에 집착하면서 우리를 트레이닝 했다. 예를 들면 자그마한 꽃 종류 나이나 냅킨의 자수 장식 색까지도 철저하게 발란스를 맞춰야만 했다. 이것은 '시선이 어디를 향하든 진심이 깃든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는 그만의 hospitality design 철학이였다. 설명하니 않아도 느껴지는 우아함을 위해서는 진심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그의  사람에 대한 배려와 디자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의 진심어린 배려는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품격있는 행실에도 느낄수 있었다.  미팅을 마친 테이블을 치우러 온 호텔 직원에게 보이는 친절이나 회사 말단 직원에게 쓰는 말투와 표정들, 사려 깊은 손짓은 그가 입은 멋진 캐시미어 양복보다 더 품격 있게 느껴졌다.  40년 동안 유지되는 클라이언트 명단과 명성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에게 정말 품격이란 인간이라는 걸 느낀 건 그의 친절함보다 위기상황을 대하는 그의 고요한 노여움을 마주하게 됐을 때였다. 한가지 일화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부자와의 첫 미팅 자리,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세련된 말투에서 느껴지는 품위 있어 보이는 그는 수행 비서 한 명을 대동하고 회사로 들어왔다.  그러나 왠걸, 입을 여는 순간 그 품위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미팅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그의 피에르에게는 깍듯했지만 자신의 수행비서와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경박한 어조와 상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며 거들먹이는 행동을 보였다  간략한 프레젠테이션 후 그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하며 피에르에게 일을 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미팅룸을 나갔다.



피에르는 그가 나감과 동시에 미팅룸에 있던 우리 직원들에게 그를 대신해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는 좋은 프로젝트는 좋은 클라이언트에서 온다며 오늘 같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기분은 나쁠 수 있으나 한 가지 가르침은 있다고 말했다.  바로 돈이 도덕성 위에 있으면 안 된다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람과는 일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 프로젝트를 정중히 거절했다.  허세와 타협하거나 자기의 가치를 낮추지 않고 일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 품위를 잃지 말고 일하자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급이 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리더 밑에서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일도 배웠지만 그의 인격을 닮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디자이너는 유명세가 따를수록 에고 (자아)는 높아지고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는 자기만족의 디자인으로 편향되기 쉽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데 급급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품격을 지키며 일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면에서 오는 품격의 중요성을 조금만 인식한다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행동의 변화가 찾아올 법도 하다.  직원들에게도 호텔 스테프에게도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를 고귀하게 대하는 그의 품격과 품위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 살랑바람이 불어오는 듯 전염됬으며 우리로 하여금 우아한 여유를 느끼게 했다. 내공에서 느껴지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 이 모든 게 그가 디자인한 수많은 럭셔리 호텔들보다 더 고귀하고 노블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 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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