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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혁 Nov 30. 2023

당신이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장례식장에 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제가 집을 비우면 육아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됩니다. 그래서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목소리가 힘이 없더군요. 직장에서 생긴 갑작스러운 일들로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지더군요. 일단 장례식장은 저녁 시간에 가게 되어 퇴근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아직 퇴근을 못하고 있었고요.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에 문득 아내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집에서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입니다.^^ 그래서 아내 대신 저녁을 준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먼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많은 재료가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빼고 나니 남은 것은 냉동 고기와 계란 그리고 밑반찬뿐이었습니다. 순간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라는 약간의 오기가 생기더군요~



애들 오는 시간에 맞춰 압력 밥솥에 밥을 올리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기 굽다가 냄새가 너무 좋아 몇 개 집어먹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굽기 시작했습니다. 배고픔은 가장으로서의 무게감보다 무겁더군요. 암튼 잘 참아내며 고기를 구웠고, 뭔가 허전해 보여서 계란도 부쳤습니다. 나름 번듯한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내심 고맙다는 말을 기대했지만 그 누구도 저에게 고맙다고 말을 안 하더군요.ㅠㅠ 바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단 밥을 못 먹게 했습니다.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말과 함께 기다리라 말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보챘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의 욕망도 채워야 하니까요~



얼마 전 김민섭 작가님과 밥을 먹을 때 작가님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 저도 얼마 전부터 일상의 기억들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암튼 사진을 모두 찍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이 밥 먹는 것을 보고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아내가 웃으며 아이들과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더군요.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으니 아내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정말 고맙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일상의 작은 친절 하나가 지친 아내에게 편안함을 주었다는 것이 참 저를 행복하게 만들더군요.



여러분들도 가장 가까워서 무던할 수 있는 주위 사람에게 작은 친절 하나쯤 베풀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참 힘나게 합니다.~


이제 곧 아내에게 이 글을 보여주려 합니다. 오늘은 저도 편안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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