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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선순환

내가 용서받았는데 누굴 용서하지 못할까.

우리가 방임되었을 때 나는 10살, 두 동생은 9살과 6살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을 피해 외가로 도주하고, 아빠는 정신이상으로 다른 곳을 배회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끊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키가 닿지 않아 의자를 딛고 찬장의 그릇을 꺼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냄비 높이를 머리맡이 채 넘지 못했기에, 의자 위에 서서 어설프게 라면을 끓였다. 그렇게 의자 위에 올라서서 살아가며 보호자 없이 두어 달을 위태롭게 지냈다. 그동안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동생들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는지, 책임 없이 떠나버린 엄마와 아빠가 한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어린 자식들을 버려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위탁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위탁보호자 분은 명절마다 친부모님의 친척들에게 보내 같이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 그때마다 만난 아빠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셨다. 요새 왜 연락을 하지 않냐며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아빠 기억도 안 하냐며 마음이 변했다고 의심을 품고, 때로는 폭언을 일삼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오히려 내가 화를 내고 싶었는데, 반대로 내가 아빠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저 사람을 아빠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위탁보호자 분과 친척 어른들이 이다음에 커서는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아빠를 불쌍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22살이었던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버리고 간 사람들을 대체 왜 찾아 나서야 하지. 이제 와서 같이 살라니 양심이 있는 건가.



시간이 흘러 대학교에서 후배를 멘티로 받아 멘토링을 하고, 연합동아리에서 회장을 비롯해 크고 작은 자리를 맡아 후배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무언가를 맡고 책임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약속시간에 늦어 양해를 구하고 체력이 소진되어 돌연 약속을 취소하면서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깎아먹었다. 내 입으로 한 말을 지키지 못하고 내가 자처한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번번이 보였다. 자기모순적인 모습에 몹시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은 체력도 능력도 부족한데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섰구나, 나는 그런 자리에 설 수 없고 타인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없는데 공동체에 더 있어봐야 피해만 줄 거라고 자기 비하의 늪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만난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실수와 잘못으로 넘어지는 나를 받아주고 기다려주었다. 사회가 느리고 뒤쳐지는 모습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내가 용서받았는데 누굴 용서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받고 이해받았더니 누군가를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나 또한 실수하듯이 엄마, 아빠도 부모라는 역할이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용서하게 되었다. 내 인생을 망쳤다는 분노의 마음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지금 이렇게 잘 자라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변화되며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졌다.


24살이 된 지금은 종종 아빠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날카로운 말에도 상처 받지 않고, 억지로 내 탓을 할 때도 웃으며 인정할 만큼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프시니까 보살펴야 할 분으로 온전히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뵌 적이 없는 엄마께 연락할 마음까지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년 전 22살 때에 비해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분명 성장한 것이니 이후로도 변화되고 성숙해질 것을 믿는다. 미움에서 자유로워진 채 웃으며 엄마를 만날 날을 소망한다. 엄마도 마음의 짐에서 자유롭게 사셨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과거에 매이지 않으려 한다. 원망하면서 주저앉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다. 집 안에서도 위험에 노출되기 쉬웠던 기억을 되살려 소외계층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간호 전담관리 공무원이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꿈을 이루어 사회에서 단절된 사람들을 돕고 깨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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