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퇴직하고 식당을 하며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연주해주는 사장님
아이 손님한테 그림책을 연주해주는 식당이 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석천로에 있는 서안메밀집 상동점이 그곳이다.
아이와 함께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로봇이 스르르 다가온다. ‘메뉴를 가지고 왔나?’ 하고 바라보니 엉뚱하게도 그림책이 대여섯 권 놓여 있다. '이게 뭐지?' 하고 갸웃거리는데 이 식당 대표 김효순씨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가서며 말을 건넨다.
"또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을 몇 권 골랐어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보라고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붐비지 않으니 내가 그림책을 연주해 드릴까요?"
뜻하지 않게 로봇이 들고 온 그림책을 만난 아이들은 낯이 환하게 벙근다. 아이와 함께 온 어른이 묻는다.
“아,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을 연주라고 해요. 악기 연주처럼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썩 다르거든요.”
“그렇군요. 그래 주시면 고맙지요.”
“어떤 걸 보고 싶어? 거기서 한 권은 내가 연주할 테니까 나머지는 너희가 해.”
3월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는 서우와 소민이는 <사서가 된 고양이>(권오준/모든요일그림책>와 <부릉부릉 동물버스 고양이집을 찾아줘>(아사노 마스미/한솔수북)를 골라 든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은 김효순 대표는 <사서가 된 고양이>를 연주했다. 오래도록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퇴임하고 음식점을 연 김 대표는 아이들을 금세 이야기 속으로 품고 들어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양이 루루를 사서로 뽑은 도서관장은 루루에게 발바닥 장서인을 찍도록 한다. 장서인 찍기에 재미가 들린 루루는 책뿐 아니라 유리창 여기저기에 장서인을 찍는다. 그걸 본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장서인 찍는 시늉을 한다.
<부릉부릉 동물버스>를 보고 난 소민이는 좋아하는 그림책을 함께 읽고 싶다면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병원에 입원한 내동생>을 꺼낸다. 이 책은 여러 번 보아도 좋다면서 볼 때마다 슬프지만 나중에 기쁘다고 말하는 소민이.
“이 책에서는요. 순이가 무척 아끼는 인형 납작코 아가씨를 동생 영이가 말도 없이 가지고 놀아서 속상해해요. 그러다가 동생이 맹장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순이가 영이에게 줄 선물꾸러미에 이 납작코 아가씨를 넣었어요. 영이가 선물꾸러미를 뜯어 납작코 아가씨를 꺼낼 때가 마음에 쏙 들어요. 가장 아끼던 걸 동생한테 주다니 너무 감동받았어요. 만약에 제가 동생이 생겼는데 막 싸우다가 동생이 아프면 저도 아끼는 것을 줄 것 같아요.”
외둥이인 소민이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좋기는 한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왜 또렷하게 말을 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좋기는 하지만 사랑이 나뉠까 봐 마음이 쓰인단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 골라든 <사서가 된 고양이>, <부릉부릉 동물버스>, <병원에 입원한 내동생> 세 권 모두 바탕에 깔린 것은 사랑, 어울려 살림이다. 어떻게 식당에 그림책을 들여놓을 생각을 했을까?
김효순 대표는 “여기가 쉰한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에요. 꼬마평화도서관에는 그림책이 대부분이에요. 그림책에는 글밥이 적으니까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문을 열었어요. 덜 붐빌 때는 제가 아이들한테 연주해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요” 하고 알려준다.
무엇보다 그림책을 로봇이 가져다주다니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림책을 로봇이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누가 했을까? “꼬마평화도서관 문을 여는 날 온 마을공동체를 이루려는 카페 모지리 김영수 대표가 내놓은 생각이었어요. 모지리 지하에도 꼬마평화도서관이 있어요. 서른아홉 번째라던가?”
꼬마평화도서관은 ‘2030년 우리 아이들을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을 가진 사람들이 뜻을 모아 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들이다.
2014년 12월 9일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카페 ‘보리와 철새’에 첫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열리고 나서 지난 1월 29일 이곳 부천 상동에 있는 서안메밀에 들어선 것은 쉰한 번째이다. 꼬마평화도서관은 아이들만 오는 도서관이 아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모래 틈에라도 들어설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아서 ‘꼬마’라고 했다.
이제까지 반찬가게나 카센터, 다세대주택 현관과 책방 그리고 학교 복도처럼 도서관이 들어설 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곳을 비롯해, 6·25 때 미군이 애먼 민간인들을 굴다리 속에 몰아넣고 총질을 해댄 노근리(충북 영동)처럼 평화가 짓밟혔던 곳에도 있다.
꼬마평화도서관은 책이 몇십 권에서 천 권이 넘는 곳까지 크기는 다 달라도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담겨 있는 평화 풀씨가 움이 트고 줄기를 세워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펼치고 있다.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둘레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평화가 담긴 책을 서른 권 남짓 모으고 책꽂이를 마련하면 꼬마평화도서관을 열 수 있다.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평화도서관장이 될 수 있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면 여섯 달에 한 번씩 꼬마평화도서관을여는사람들에서 평화 책을 대여섯 권을 가려 뽑아 보내준다. 대부분 그림책이다. 꼬마평화도서관에는 한 가지 의무가 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그림책 연주마당을 펼쳐야 한다. 그림책 연주란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가리킨다.
‘고를 평’에 ‘어울릴 화’가 이루어져 빚은 평화, 화는 벼와 입이 모여 이룬 글씨로 고루 먹는다는 뜻이 담겼다. 평화와 밥은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로 서안메밀과 꼬마평화도서관은 찰떡궁합이다. 이 말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다. “네가 누군지 알고 싶으냐? 네가 뭘 먹고 무엇을 읽었는지 알려다오. 그러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마.” 무슨 말씀인가? 내가 먹고 읽은 것이 나를 이룬다는 얘기이니 서안메밀 상동점에 가면 몸은 튼튼 마음은 평화롭게 빚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