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그리는 <달 기슭>에서 얻은 깨달음
쪽빛 바탕에 노란 그림이 또렷이 맞서는 앞뚜껑에 붙은 <달 기슭>을 보면서 ‘기슭이 비탈 아래나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니 달 기슭은 달 아래나 달 가장자리를 일컫는 말일까?’ 갸웃거리다가 책을 펼쳐 들었다.
달을 좋아하는 순이가 밤새 달을 바라보다가 달 그리움에 북받쳐 모두 깊이 잠든 한밤중에 달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보이던 달은 가도 가도 가까워질 낌새가 보이지 않고,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발은 흙에 묻힌다. 그대로 산이 되고 만 순이가 눈물 흘린다.
가닿을 수는 없어도 달을 그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눈물방울은 모여 작은 웅덩이가 되고. 어디선가 날아든 씨앗들이 웅덩이에 고인 눈물을 머금고 싹 틔우고 꽃 피운다. 순이처럼 달님에게 가려다가 지친 고양이와 작은 새, 아이들이 이 산 기슭에 머무른다.
산은 우리말로 ‘뫼’다. 뫼는 ‘모이다’에서 왔다. 달을 그리며 달에 가려다가 비록 힘에 부쳐 쓰러졌으나 한결같이 스러지지 않은 달 그리는 마음이 모여 이룬 기슭이라서 달 기슭이라 했을까?
‘달에 가려다가 쓰러진 기슭이 달을 그리는 이들이 머무를 쉼터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평화를 외치다 뜻에 숨을 거둔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렸다. 큰 어른들이 맞서는 이들이 쏜 총탄에 쓰러진 기슭에 흐른 핏물과 눈물을 머금고 피어난 풀씨들도 누리 곳곳으로 날아다니며 살려 사는 살림살이를 퍼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달 기슭>을 연주하면서 ‘꿈틀’이란 낱말이 떠올랐다. 소리 내어 그림책 읽기를 ‘그림책 연주’라고 한다. 꿈틀, 처음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꼴시늉말이다. ‘꿈틀’이 꿈을 이루려고 내디디는 첫발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순이가 달님 그리기에 머물지 않고 ‘꿈틀’하고 달을 찾아 길을 나선 모습이 좋다. 비록 힘겨워 쓰러졌을지라도 뜻이 꺾이지 않고, 꿈을 이어가는 다른 이를 보듬도록 빚은 지은이 마음 결이 가슴에 남는다.
뜻을 다 이루지 못하면 실패, 패배라고까지 하는 세상에서 힘껏 하는 데까지 하다가 넘어졌더라도 그대로 아름답다고 일깨우는 <달 기슭>. 힘닿는 데까지 하기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넘어진 기슭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을 품기는 더욱 어렵다. 산이 된 순이가 지친 이들을 품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달 기슭>, 어지러운 세상 그릇된 어른 탓으로 공부에 내몰리다 지친 아이에게, 어려운 시대를 헤쳐가느라 고달픈 어른에게 “넘어져도 괜찮아. 흘린 눈물이 누리를 살리는 바탕이 될 수 있어.” 하면서 다독이는 마중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