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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Aug 02. 2023

다른 나라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의 고충

외국어강사로 살아간다는 것

 전화일본어 강사 3년 차. 요즘 나는 고민이 많다.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말을 가르친다는 건 상당한 지식과 노력, 자기개발이 필요하다는 걸 매해 느끼고 있다. 현지에 살고 있지 않으니 더욱 그 한계와 자신의 무능함을 실감한다.

 이 고충의 발생원인은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단어를 까먹는다는 것. 그리고 현재 현지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껏 공부하고 외워도 신조어는 채 3개월을 못 가고 새로운 유행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언어란 생기고 사라지고 변하는 유기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만 강사로선 이 점이 아주 고역이다. 우리가 모국어인 한국어의 모든 단어를 모르듯이 내 전공 언어의 모든 단어와 어원을 알 순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답변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일본어로 OOO는 뭐예요?’, ‘OOO는 한국어로 뭐예요?’라고.

 아는 것은 당연히 대답하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속어나 신조어를 질문할 때면 모르는 것도 사실상 많다. 알아도 답하기 남사스러운 것도 있다. 때로는 한국어로 표현 불가능한 그 나라 고유의 감성이 담긴 단어도 있다. 그러면 이게 또 설명이 길어지니 학생들은 사전에 검색하면 띡 하고 깔끔하게 정답이 나올 법한 간결한 단어로 축약되길 원한다. 더구나 내가 모른다고 하면 것도 참 전문가스럽지 않아 보여서 난감하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외국어는 정말이지 해석 불가능일 정도로 어렵다. 그 또래 문화, 그 분야 매니아들 사이에서 존재하고 꿈틀대는 말이라 애초에 그 문화 감성, 분야 지식이 없으면 유추도 어려운 경우가 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서 비전문가 같고, 알아도 직설적으로 말하기 난감해 빙 둘러말해서 모호해지고. 이러나저러나 프로페셔널 해 보여야 하는 입장에선 골치가 아프다.

 전공을 했으니까, 강사니까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외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으로서 가끔은 학생들 질문이 두렵기도 하다.

 음질 안 좋은 사투리 가득한 음원을 들려주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든가. 전화강사이다 보니 전화 너머 음원을 알아들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준비한 수업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는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긴장되기도 하다. 몰라서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크게 실망한다거나 하진 않더라도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왠지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긴달까, 위축이 된다고 할까.

 ‘내가 모르는 저 말이 사실 엄청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알 수 없는 초조함과 함께 내가 쇠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이런 불안은 대부분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느낄 감정이겠지만 교육자라는 위치에서 무지의 무게는 엄청나다. 답하지 못하는 빈도에 따라 신뢰도를 완전히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시 원서를 휙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직접 번역을 해본다거나 여러 방송을 보며 스크립트를 써보는 등 한국이란 나라에서 외국어 강사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일본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는 있는 인맥 없는 인맥 긁어모아 알아보기도 하고, 검색도 해보고. 아주 용을 쓰고 있다.

 대학 가고 졸업하면 더 이상 공부 안 해도 된다는 어른들의 옛말은 다 거짓말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매일이다. 어찌 보면 나를 향한 학생들의 기대감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참, 보통 일이 아니다.

 외국어 강사는 언제쯤 자기 개발을 쉴 수 있는 걸까? 하루라도 편해져 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 사이 또 새로운 표현과 말들이 나오겠지. 잉잉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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