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솜사탕 Jul 03. 2024

자연 한 모금

장맛비를 바라보며

토독! 토독!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방으로 향했다.


토독! 토독!

 창문을 열자 집 앞 벚나무 초록향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집 안으로 스며든다. 우리 집에 들어오고 싶어서 계속 창문에 노크했나 보다. 손님이 왔으면 접대를 해야지. 나는 조용히 커피를 내린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굵어졌다. 풀 향기가 짙어졌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어라, 원래 이렇게 향이 약했던가? 표독스러운 커피도 장마 향기에 기를 펴지 못한다.


 쏴아- 쏴아-

 새소리도 없다. 풀벌레도 숨었다. 라디오 속 DJ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비가 삼켰다.


  쏴아아아-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산책은 힘들 것 같다. 나들이를 취소한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 있겠지. 공사를 멈추고 운항을 멈추기도 하겠지. 여행 가서 숙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비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


 이번 장마로 어딘가는 무너지고 잠기겠지. 과수원의 탐스러운 과일들도 맥없이 떨어지겠지. 그러면서도 이 빗방울들이 바다를 만들고 구름을 만들겠지. 그리고 인간과 동물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배불려 주겠지. 이 작은 한 방울의 빗방울은 얼마나 많은 개미를 먹여줄까.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어떤 식물들의 목을 축여줄까. 이 머그컵 안 커피 역시 빗방울이 모여 키워냈겠지.


 쏴아- 쏴아-

 오만하지 말라고 비가 내게 말한다. 인간이 모든 걸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우쭐대지 말라고 비가 경고한다. 그리고 속삭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토독, 토독. 톡! 톡!

 다시 빗줄기가 얇아진다. 빗소리에 맞춰 풀향기가 내 몸 속 가득 차오른다. 머그컵 안엔 어느새 흑빛 커피는 사라지고 초록이 담겨 있다.

 장마철에만 만끽할 수 있는 자연 한 모금.

 빗방울에 담긴 메시지를 나는 조용히 가슴에 새긴다. 자연의 위대함에 숨을 죽인다.

 그렇게 나는 빗방울에 담긴 생명을 삼킨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허락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