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마야 4

자살 No! 살자 Yes! 자 살 자 !

by 행복이

자살 No! 살자 Yes!

순정이가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산다는 게 너무 재미나서 미칠 것 같다는 얼굴로 항상 재재거리던 순정이가 죽겠다고 약을 먹은 겁니다. p166.


항상 “미칠 만큼 재미있다”고 하며 활발한 모습만 보이던 순정이 갑자기 자살을 시도한다.

겉으로 가장 밝은 아이가 오히려 가장 깊이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과 웃음 뒤에 감추려 했던 고독은

청소년기의 감정이 얼마나 급격하고 복잡한지를 드러낸다.

또한 순정의 자살은 죽고 싶음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의 과잉, 내면의 허기, 사소한 계기로 폭발하는 충동성의 결과로 보인다.


“마야나 주혜는 그냥 죽고 싶을 때가 없니? 나는 문뜩문뜩 그냥 죽고 싶을 때가 많아. 아침에 창문을 열고 눈부신 태양을 볼 때도 그렇고, 담장에 붙은 시든 장미 이파리를 볼 때도 그렇고,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엄마의 등을 볼 때도 그렇고, 외박하고 돌아온 아빠의 얼굴을 볼 때도 그렇고, 잔디에 누워 너무나 새파랗게 맑은 하늘을 봐도 그렇고......” p.170~171.


순정은 너무 놀랍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사춘기 감정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벅찬 감정의 과잉’이 동시에 ‘허무’를 불러오는 상태이다.

순정이 드러내고 있는 양가적 감정. 삶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은 존재론적 흔들림과 함께 결국 죽음 충동으로까지 돌변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아니,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어. 정말 죽어 버렸다면 큰일날 뻔했어. 산다는 거 참 좋은 일 같애. 매사 새로워 보이고 탄력성이 생긴 거 같애. 새로 산 고무줄처럼. 자살미수라는 보증만 있다면 자살이란 건 한 번쯤 할 만한 일 같애.” 마치 굉장한 모험에서 돌아온 탐험가처럼 의기양양해서 순정이는 자기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p172.


순정은 죽음의 문턱을 살짝 밟아본 후,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느꼈으리라.

죽음의 그림자를 지나온 뒤 삶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역설이랄까...

또한 마치 모험가처럼 의기양양한 순정의 태도라니! 우리는 그녀에게서 청소년 특유의 허세와 과장된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이제 살만한가 보네. 순정!


“주혜야. 너도 그냥 죽고 싶을 때가 있니?” “응.” “그럼 너는 자살을 기도할 용기가 있니?” “없어. 나도 사실은 몇 번이나 약을 사모으고 버리고 했어. 지금도 내 서랍엔 17알이 있을 거야.” “주혜, 너도 그랬니? 난 죽고 싶다고 하루종일 외고 다니긴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건 아니야. 나는 산다는 게 참 좋은 걸.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아름다운 일이 펼쳐질지도 몰라.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보면 막 가슴이 뛰어. 아직 열 다섯인데, 근사한 사랑 한 번 못 해보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거야. 그래서 나는 빨리 자라고 싶어. 세월을 실패에 실감듯이 감아버리고 싶어. 주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니?” p173.


겉으론 차분하고 온순한 주혜도 약을 모았다 버렸다 했단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멀리 떠나 있으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삭혔을 내면의 고독들!

마야는 약간은 철없이 죽고 싶다고 떠들어 댔지만 살아 있는 것의 기쁨, 미래에 대한 호기심, 사랑에 대한 기대, 삶을 향한 본능으로 가득한 아이다.


내가 마야를 사랑하는 이유다.


“가엾은 우리 아빤 남들보다 백 배 더 죽고 싶으셨을 거야. 그래도 아빤 전혀 그런 거 나타내지 않고 열심히 사셔. 나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책임이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내가 죽을 수 있니, 조금 죽고 싶다고 해서, 그런 충동이 불쑥 일어난다고 해서...... 나는 그럴 수는 없어. 나도 아빠를 사랑하니까, 아빠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해. 사랑은 책임을 갖는다는 말이야.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해. 아빠 마음에 꼭 드는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어. 그 여자처럼 되어선 안돼...... 그 여자의 몫까지 아빠에게 보상해야 해.” p173~174.


주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이고 따라서 남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죽음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엄마의 자살을 넌지시 비난하면서...

스스로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니...


너무 일찍 성숙해 버린 주혜.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주혜와 아빠 사이 너무 부러워!


“나쁜 여자야. 자기가 조금 괴롭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린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p175.


다시 한번 얘기한다. 주혜는 아빠를 두고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이나 행동 안할거라고...


집으로 돌아와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새삼스레 주름진 엄마의 얼굴이 반갑고 고마워서 나는 무턱대고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중략)

“엄마가 좋아서 그래. 엄마, 우리 엄마.” 나는 다시 한번 달겨들어 엄마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방으로 건너왔습니다. p176.


마야는 속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늘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도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살게.”


<맺으며>

죽음 충동은 사춘기 소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의 폭풍이다.

밝은 아이, 조용한 아이, 활달한 아이 모두 예외가 없다.

세 소녀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을 선택한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자살’이라는 주제는 세 인물이 성장하는 통과의례이다.

죽음을 한 번 생각해 보는 일 자체가 삶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경험이 된다.


난 살아 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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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살 자 !



나늘 찾는 여정 0번째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