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번째#책소개
사유하는 여성에 관한 이 책이 변화하는 현실에 기여하기를 바래본다.
- 본문 중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책의 출판사는 봄알람입니다.
책 소개에 앞서 굳이 출판사를 소개하는 이유는 저의 책을 고르는 기준에 '출판사'와 '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과 내용을 떠나서 나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누구에게 흘러가느냐가 포인트입니다. '페미 코인'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지갑을 노리고 책을 쓰는 그남들의 이야기는 인터넷상의 괴담이 아닙니다. 자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여성은 지갑을 열 때 '누구에게' 나의 '돈'이 흘러가는지 따져보고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봄알람은 페미니즘 출판사입니다. 많이들 알고 계실 이민경 작가의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입트페)와 김지은 님의 [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의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봄알람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말을 하는데 봄알람의 책은 늘 그렇습니다. 믿고 산다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봄알람의 책은 믿고 삽니다.(웃음)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6명의 여성 철학가를 소개합니다.
- 한나 아렌트
-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 주디스 버틀러
- 도나 J. 해러웨이
- 시몬 베유
- 쥘리아 크리스테바
6명의 철학가를 단일 혈통의 계보로 묶거나 '여성' 철학가로 뭉텅거리기보다는 각각의 위치에서 벌인 사유에 관해 엮여있습니다. (p.13) 모든 여성이 같지 않습니다. 여성 철학가가 소수라는 이유로 여성 철학으로만 명명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업적을 너무 좁은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철학가로, 여성 저자의 관점으로 보는 이 책을 꼭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망명 생활 중에 라헬 파르하겐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마주합니다.
라헬 파르하겐은 한나 아렌트보다 한 세기 앞선 시대의 유대인 여성으로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선 비밀 조직을 만들고 당시 독일 관념론과 사상사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라헬은 일생동안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신을 유대인으로 인정합니다. (p.24) 이런 라헬의 삶의 따라가면서 아렌트는 라헬과 함께 합니다.
아렌트는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것이 삶에 영향이 없었고 본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나 히틀러 집권 시기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렌트는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여성이지만 젠더에 무관심한 채 보편적 인간의 이름으로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로 비추어집니다. 하지만 그를 여성에 무관심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남성 철학의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성이기도 하지만 보편적 인간이며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공격받은 삶 속에서 유대인에 대한 사유를 펼쳤다고 해서 그를 '여성'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여성'으로서만 사유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책을 처음 샀던 해는 2017년 겨울입니다. 벌써 4년이나 저의 책장 속에 책을 다시 꺼내 든 계기는 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분의 브런치 글에 등장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서지현 검사님과 김지은 님에게 보낸 말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건 공론화의 2주 정도 지난 후 김쿵쾅님(해당 사건 피해자분의 브런치 작가명)은 3번째 글을 4가지 목차와 함께 올려주셨습니다.
1. 근황
2. 동아제약에게 하는 말
3. 연대해주시는 여성들께 올리는 말
4. 대한민국 정부에 하는 말
3번째 목차인 연대해주시는 여성들께 올리는 말 중에 "저의 용기가 되어주신 두 분(서지현 검사님, 김지은 님) 덕에, 평범한 20대 사회 초년생 직장인인 제가 누군가의 또 다른 용기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여성의 용기와 삶은 또 다른 여성에게 용기가 된다는 것을 가슴 울렁거리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봄알람처럼 여성의 이야기와 학문을 이어가는 출판사의 책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라헬 파르하겐는 생전에 썼던 만 편의 편지 남겼고, 그 편지를 읽은 한나 아렌트가 라헬의 전기를 쓰고. 그 한나 아렌트의 철학, 정치학을 공부한 수많은 여성이 다시 글을 쓰고, 그 글을 인용한 김쿵쾅님의 글을 읽고 저는 또 글을 씁니다. 이렇게 여성의 이야기는 다른 여성에게 길고 긴 유대가 됩니다.
김쿵쾅님은 피해자가 차라리 자신이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울었지만 마지막에 써주신 문장을 쓰고 웃었습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아주 옛날부터 시작된 이 게임에 함께 하는 여성들을 응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여성과 예술에 관한 글을 씁니다.
안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