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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Feb 12. 2024

사느냐, 이야기하느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또 먹다가 어떤 일이 생겼는지.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난 이야기꾼인 엄마가 찐 웃음소리와 함께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 모습은 봐야 나는 직성이 풀렸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둥그렇게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면 나는 여지없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다. 친구들의 기대 가득한 눈빛 안에서도 기죽지 않고 나는 그 기대들을 충족시켜 내고야 말았다. 지나고 나니 내 이야기에는 과장이 반이었다며 친구들은 그때를 떠올리지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팩토리를 창업하고 나는 타운홀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전 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는 왜 일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전하는 목적의 타운홀이었지만, 전날 밤늦게까지 PPT 안에 실소를 유발할 사진들을 찾아 넣느라 나는 차라리 잠을 줄였다. 시간이 흘러 당시 함께했던 직원들은 요즘도 그때 웃었던 기억이 나고 그립다고 했다.


요즘도 나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이 엄마도, 친구들도,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도 아닌 나 자신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듣는 사람이 내가 되니 오히려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끊임없이 흐른다.


여전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가 있다.


지난날의 그 사람은 내 이야기에서 어떤 이유로 등장했는지 의미를 부여해 나에게 이야기해 본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던 그때의 그 사건은 결국엔 내 이야기에서 어떤 복선이 될 것인지도 내 마음대로 부여해 나에게 이야기해 본다.

우리 집 마당에 내가 골라온 돌덩이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부여해 나에게 이야기해 본다.


동시에 이야기를 듣는 나도 있다.


함평에서 교수님과 함께한 6개월은 앞으로의 이 이야기 안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지가 궁금하다.

장르를 만들어보겠다고 호기롭게 찾아가 엮어낸 여준영 대표님과의 인연은 다음 점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CES 전시 참여를 통해 모든 방향이 글로벌로 열려버린 이 사건의 끝은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고 싶어 모험을 자처하며 지내는 요즘이다.

내 이야기가 궁금하고 내 이야기에 감동하며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살 것이냐. 아니면 이야기할 것이냐.

나는 주저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서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이 시대라면

나는 더 가열차게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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