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Feb 26. 2024

결국엔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타강사의 한 마디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버텨냈냐고

실패 후에 밀려오는 패배감은 어떻게 이겨냈냐고.


그러게. 스물다섯에 시작한 사업으로

모든 순간이 선택이었던 나에게

그런 순간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내왔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 그 순간들을 지내왔었나 더듬다가

수능을 준비하며 현장 강의를 들으러 갔던 하루가 떠올랐다.


당시에 시대를 풍미한 언어 선생님이 현장 강의를 한다기에

어렵게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날이었다.

이상수 선생님은 이투스에서 온라인 강의도 하고 계셨지만

나는 그분의 에너지라도 받아 성적을 높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현장 강의를 찾아갔다.


찾아간 강의실은 족히 200명은 넘는 학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은 짧지 않았다. 두세 시간은 넘게 이어진 수업이었다.

비싼 강의비를 내고 멀리까지 들으러 간 나는 아쉬움이 없도록 열심히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온 학생들은 모두 전투적으로 그 수업을 들었다.


이상수 선생님은 길었던 수업을 마무리 멘트로 정리하시다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남으라고 하셨다.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잠시나마 내가 수업 중에 딴짓을 했었는지 아니면 졸았는지 지난 시간을 얼른 돌이켜 보았다.

특별한 게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남으라고 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더워졌고 온몸에서 땀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났고 질문이 있는 학생들이 몇몇 남았다.

그들의 질문이 끝날 때까지 나는 강의실 한 편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기다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다 떠올려보고 있던 중이었다.


남았던 학생들의 질문이 모두 끝났는지 강의실에는 이상수 선생님과 나만 남았다.

선생님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서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읊조리듯 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와 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강한 눈빛으로.


"너는 성공할 거다. 니 눈빛에서 내가 봤어. 나중에 성인이 되서 성공하게 되거든 내가 이 말을 했다는 걸 잊지 마. 나는 봤어.."


집에 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뭘 봤다는 건지. 왜 잊지 말라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200명이 넘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대를 풍미하며 가장 잘 나가는 언어 일타 강사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은 생각보다 강하게 내 인생을 받쳐주었다.

그 이후로 실패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왜인지 모르게 그때가 떠올랐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읊조렸던 선생님의 그 목소리와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던 선생님의 그 눈빛이.


그때만 떠올리면 결국에 나는 될 것이라는 마음이 불쑥 차올랐다.

그렇게 나는 언제 넘어져도 훌훌 털어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엔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에

우연히도 마주한 순간의 장면이 내 인생 전체를 지탱해 주어

결국에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오늘까지 이어진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