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그날도 트레바리 책 모임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 클럽 파트너 분이 모임 멤버 중에 한 분이 후기를 보내주셨다며 전해주셨다.
내가 정토회에서 법륜 스님을 통해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멤버가 남긴 후기였다.
위빠사나? 그게 뭐지,, 하며 후기에 담긴 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한 달 뒤에 그다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후기를 남겨주셨던 ㄱㅇ님도 귀가 중이시길래 잘 들어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ㄱㅇ님은 "위빠사나에 대해 알아보셨나요?" 라며 웃으며 가볍게 물어보셨다. 나는 "아.. 아직이요 ㅎㅎ"라고 답을 드리고 우린 각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랩탑을 열어 이름도 요상한 '위빠사나'를 검색했다. 도대체 뭘까.. 하며
허허. 진짜의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가독성이고 편의성이고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는 냄새가 아주 지독하게 나는 공식 웹사이트였다.
처음에 메세지 후기로만 받았을 때는 진지하지 않게 넘겼지만, 한 달 뒤에 하필 집에 가는데 왜 그 ㄱㅇ님이 그 길을 걸어가고 계셨을까,, 그리고 왜 하필 위빠사나 이야기를 또 꺼내셨을까,,
나는 보통 그러면 우주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홀린 듯 가장 빠른 코스 신청 일정을 보니 5월 14일이었다. 그날이 4월 10일이었으니 한 달 조금 지나서 있는 코스에 접수할 수 있었다. 11박 12일의 일정이었고, 체크인과 체크아웃 하루씩을 빼면 총 10일을 수행하는 일정이라 적혀 있었다. 핸드폰, 인터넷, 책, 필기구, 수행자가 대화가 금지라고 했다.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12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일상이나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될, 가족과 회사 멤버들과 주변 몇몇 정도에게만 수행을 알렸다. 부모님은 소식을 듣자 저녁에 동네로 찾아오셨다. 도대체 뭘 가는데 열흘을 넘게 연락이 안 되는 거냐, 사이비 종교 단체 같은 거에 가입하는 거 아니냐, 가서 최면에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하냐는 등,,, 불안해하는 부모님에게 다시 설명을 차분히 드렸다.
하지만 나조차도 웹사이트는 전체적으로 둘러봤지만, 위빳사나 명상이나 고엥까 선생님, 그리고 명상 코스 후기 같은 걸 열심히 뒤져보진 않았다. 그런 정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어설픈 설명에 부모님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표정이나 마지못해 잘 다녀오라 하시며 집으로 향하셨다.
당일이 되어 판교에서 차를 몰고 전라북도 진안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천진난만하게 휴게소도 들러서 호두과자도 사 먹으며 그렇게 내려갔다. 오후 2시-4시 사이가 체크인 시간이라 했고 나는 3시쯤 주차장에 도착했다.
접수처 쪽으로 가니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체크인 중이었다. 나도 체크인 서류를 쓰고 줄을 서서 접수를 시작했다. 핸드폰과 차키, 지갑을 맡겼다. 첫날은 프로그램이 없으니 저녁을 줄 때까지 편하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방 번호를 받아 남자 숙소로 들어갔다. 열흘동안 지낼 곳이니 창문을 열고 방을 닦고 가져온 옷과 짐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도, 책도, 필기구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산책뿐이라 걷기 시작했다. 밖에는 체크인을 한 다른 남자 수행자들이 걷고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분부터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까지 걷고 있었다. 산책로는 넓지 않아 걷다 보면 서로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지만 대화를 나눌 수도 없으니 힐끗 서로를 확인할 뿐이었다.
체크인을 한 첫날은 저녁을 준다고 하여 남자 식당으로 들어갔다. 언제 써 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식판이 지정된 내 자리에 놓여져 있었다. 내가 앉아 있으니 곧바로 옆 자리에 키 큰 서양 남자 수행자가 앉았다. 아 외국인도 오는구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사연 있게 생긴 사람들로 가득했다. 뭐 그들이 보는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명상 또는 휴식뿐이었다. 시간표에 적힌 명상 시간은 하루 10시간, 10일 동안이니 총 100시간의 명상이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니 저녁을 먹고 짧은 산책을 하고 얼른 씻고 누웠다. 늘 쥐어져 있던 폰도 없이 자리에 누우니 허전했다. 평소에 11시는 되어야 누웠으니 잠이 올리도 없었다. 낯선 침대와 베개는 불편하고 낯선 마음을 더 키우고 있었다. 아,, 게다가 4시에 일어나야 하다니,, 이런저런 망상을 한참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0day 코스의 첫날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설렘도 있었고, 폰도 인터넷도 없이 열흘을 넘게 보내는 경험은 군대 훈련소 때 이후로 처음이다 보니 그것이 나에게 주는 또 다른 통찰도 있겠거니 하며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명상홀로 향했다. 알고 보니 첫날 체크인 하러 가는 길에 보았던 멋진 새 건물이 명상홀이었다.
명상홀에도 지정 방석이 있었고 나는 21번이었다. 남자 수행자보다는 여자 수행자들이 조금 더 많았다. 그래도 어림 남자수행자는 30-40명, 여자 수행자는 40-50명쯤 되어 보였다. 조금 있으니 남자 선생님 한 분과 여자 선생님 한 분이 모든 수행자가 바라보는 방향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나도 반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조금 있으니 스피커를 통해 무슨 주술자가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그로테스크한 목소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WOCLg84NgA&t=23s
명상홀의 적막을 꽉 채우는 목소리였다. 바로,, 바로 그 고엥까 선생님이시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고엥까 선생님이 챈팅을 하시고 명상 방법을 영어로 먼저, 이어서 한국어로 번역되어 녹음된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첫날은 호흡을 알아채는 아나빠나 수행을 먼저 한다고 했다. 호흡을 들여다보고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포개진 다리가 저려와서 자세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반가부좌 상태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것 역시 어려웠다.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에서 다른 수행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슬금슬금 다리를 풀었다가 다시 앉았다가를 수도 없이 하며 꼼지락 거릴 수밖에 없었다.
코스 시간표대로 모든 일정은 흘러갔다. 제공되는 모든 아침과 점심은 채식이라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알고 보니 봉사자로 오신 분들이 준비해 주시는 거였다. 이미 10day 코스를 이전에 수료하고 봉사자로 오신 분들이. 저녁은 식사가 아니라 차 마시는 시간이라 쓰여 있었는데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니, 나처럼 처음 온 수련생들은 작은 간식이 제공된다고 했다. 강냉이와 튀밥이었다.
식판에 강냉이와 튀밥을 담아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벽을 보고 앉아 먹는 자리였다. 옆에 강냉이와 튀밥을 챙겨 온 서양인 수련생도 이내 앉았다. 둘 다 벽을 보고 강냉이와 튀밥을 나는 손으로 집어 먹고, 서양인 수련생은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하는데 뭔가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ㅎㅎ 수련생 중에는 이미 이 코스를 한 번 이상 수료한 구 수련생들도 있었다. 구 수련생들은 강냉이와 튀밥마저 불가했다. 모든 규율들은 수행을 위한 것이라 했으니, 나도 애처로운 마음이 들면서까지 강냉이와 튀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ㅎㅎ 그래서 그 첫날 이후로는 나도 저녁을 스킵하고 16시간 단식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했다.
저녁 간식 시간이 마무리되면, 한 시간의 명상이 있고 저녁 7시부터는 고엥까 선생님이 1991년에 비디오로 녹화해 둔 법문을 1시간 정도 매일 듣게 되었다. 하루 종일 목소리로만 듣고 그 고엥까 선생님의 얼굴을 실물 영접하는 시간이었다. 통통하시니 인상 좋은 미얀마 할아버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45년 이상 수 만 명의 수련생을 배출하고 201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렇게 법문을 통해 수행법에 대한, 그리고 사람의 마음 작용에 대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들려주신다. 내가 열 흘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법문 영상 시청이 끝나면 30분 정도 더 명상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잠에 들었다.
셋 째날까지 고엥까 선생님은 계속해서 아나빠나 수행을 가르쳤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러니까 망상들에 끄달리지 않고 다시 내 호흡으로 나의 의식을 집중하는 훈련이었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고 하루하루 수행법에도 익숙해져 다른 생각에 잠시 빠져도 금방 빠져나와 다시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도에 뒤떨어지지 않게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알려주는 대로 수행도 잘 되니 기분도 아주 상쾌했다. 앞에 앉아 계신 남자 담당 선생님은 한 번 자리에 앉으시면 움직임 한 번이 없으셨다. 게다가 따뜻한 색의 핀 조명이 선생님 두 분을 비추는데 홀리한 분위기가 극대화 됐다. 그냥 가끔 눈을 떠서 선생님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문제는 넷 째날부터였다. 드디어 위빳사나 수행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3일 동안 높여 놓은 의식의 집중력을 통해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이래저래 해보는데 내가 느끼고 싶은 그런 종류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어떤 감각이 느껴져서 이건가 싶다가도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빼서 왔는데 이왕이면 잘 배워가고 싶었고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 잘 안되네 잘 안되네 하면서 수행하다 보니 어김없이 저녁 법문 시간이 되었다. 고엥까 선생님은 내가 너희들 그럴 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이미 수많은 수련생들이 나같이 잘 안돼서 투덜대왔던 것 같다),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프고 하니 콧잔등에 땀도 나도 열도 나고 그러지 않느냐. 그것도 감각이다. 라고 하시는 거였다.
엥? 엥??? 그건 이렇게 명상하고 집중해서 느끼지 않아도 느껴지는 건데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 명상법에 대한 신뢰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감각을 알아채려고 내가 내 자유도 던져버리고 여기에 갇혔다고? 억울함과 허탈함이 동시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매일 점심시간 이후에 신청자에 한해서 5분씩 앞에 앉아계신 선생님과 면담을 통해 질문이 가능했기 때문에, 정말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선생님께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다리가 저려서 터질 것 같아도 식은땀까지 흘러나와도 꾸역꾸역 4일 차까지 버텼는데,, 마음이 무너졌다. 그냥 퇴소한다고 할까,, 하는 마음도 불쑥 들었지만, 이 수행법이 가짜라고 판단되던지 진짜여도 나랑 안 맞는다고 하면 남은 기간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산책이나 하고 지내보자 하는 생각으로 버텨보자 싶었다.
앉아서 이런 생각을 쭉 정리하고 눈을 살짝 떠서 앞을 보니, 아니 웬걸,, 핀 조명이 떨어져 비추는, 그 홀리했던 선생님의 얼굴과 인상이 누가 봐도 사기꾼 같이 보이는게 아닌가!! 아오,, 좀 더 잘 알아보고 올 걸,, 으휴,, 하며 숙소로 돌아가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씻고 자리에 누웠다.
그날 밤은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