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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험

똥은 싼 놈이 치운다

2025년 6월

by 혁이창

올해 초, 대팝업의 시대에 3년 반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테라리움 전시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오픈 이래로 전시 내용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꾸준히 관람객들이 찾아주었기에 운영해 올 수 있었는데, 올해 초부터 예약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였다. 겨울이라 일시적인 추세로 볼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3년 반 전에 기획했던 전시의 수준이 늘 내 마음에도 차지 않았기에 남은 1년 남짓의 계약기간을 위해 전시 내용을 바꾸거나 계약을 연장하여 건물을 이어서 활용하기보다는 이때에 정리하는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3월 말까지 운영으로 내부에서 결정했다.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중에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다. 21년, 처음 이 건물을 5년 계약할 때, 나는 건물주가 내게 제시한 임대료를 듣고 화끈하게 반을 네고해 달라고 했다. 기획한 전시의 내용을 보여드리며 서울숲 아뜰리에 거리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건물주는 디자인과 예술에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분이었고 나의 네고를 받아주셨다. 그렇게 테라리움이 오픈하고 2년 정도가 지난 후에 실제로 그 건물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평단가로 거래되었다는 소식을 부동산을 통해 들었다.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정말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찌 됐든 지켜지게 됐다.


새로운 건물주는 미국 시민권자이자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엑싯하고 한국으로 들어오신 분이었다. 임차를 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인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건물주가 바뀌는 시점에 만나 뵙고 커피를 마셨다. 시세 대비 임대료가 너무 낮아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그렇게 계약된 바 건물을 잘 활용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젠틀한 분이셨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임대기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게 되면 건물주 입장에서도 임대료를 시세에 맞춰 받을 수 있을 테니 좋고, 우리는 우리 본업에 보다 집중해 보자는 의미에서 3월 말까지 운영은 모두를 위한 좋은 결정처럼 보였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철거를 하고 원상복구를 마치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가면 되는 수순이었다. 철거와 원복의 사이즈가 일반적인 건물에 비해서 난이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우리 팀 담당자의 의견에 나도 동의했기에, 비용이 추가로 들더라도 전체적인 감리감독과 책임을 져 줄 외부 업체를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4월부터 철거와 원상복구를 시작해서 5월 초에 마무리하는 일정을 잡았다. 임대인과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업체 사이에 조금씩 삐걱대는 부분이 있다고 중간중간 진행 상황들을 보고 받았지만, 으레 있을만한 입장 차이로 보였기에 잘 조율하여 정리해 달라고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마무리를 약속했던 5월 초가 되었음에도 공사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임대인이 원하는 기준과 공사 책임팀이 생각하는 기준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대한 임대인 측이 원하는 바를 맞춰드리라고 했다. 비용을 더 들이는 성의를 우리가 보인만큼 임대인 측에서는 공사 기간을 조금 더 주었다. 그렇게 5월 28일, 임대인과 마지막으로 공사 현장을 함께 보고 마무리 하는 날을 잡았다.


인스펙션 데이 아침 일찍, 우리 팀 담당자는 아직 미비한 부분들이 있다는 메세지를 내게 보내왔다. 유쾌한 연락은 아니었다. 일단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팀 멤버들이 둘이나 더 와 있었다. 미비한 부분들을 챙기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정리를 도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했던 원상복구들이 완료되지 못한 상태였다. 공사 책임팀의 대표와 팀장은 기한을 맞추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임대인과 함께 현장을 같이 둘러보자고 말했다.



머지않아 임대인과 임대인 쪽 담당자들이 도착했다. 처음 건물을 매입하고 커피를 마신 이후로는 처음 뵙는 거였다. 임대인은 반가운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시며 손을 내밀어 우리는 악수는 나눴다. 딱 그때까지였다. 좋은 분위기는.


내부를 함께 둘러보니 미비된 부분들이 많았다. 최종 현장 점검날이었음에도 아직까지 현장에서는 원상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어설프게 마무리한 부분들도 눈에 띄었고 임대인과 약속했던 대로 진행하지 않고 마무리한 부분들도 보였다. 임대인은 언성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그리고 약속과 다르게 마무리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원상복구 담당 팀장에게 묻기 시작했다.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그 팀장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임대인은 이렇게 마무리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이미 작업이 된 부분들까지도 이제는 신뢰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현장에서 보니 임대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게 무작정 과하다 말하기 어려운 수준의 마무리였다. 더 나아가 임대인은 원복을 위해 우리가 고용한 업체에 대한 신뢰가 모두 깨졌으니, 임대인 측에서 업체를 구해서 다시 원복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전 건물주가 전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처음 받았던 임차인이 우리였다. 심지어 건물 내부의 기존 형태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인테리어를 진행해서 테라리움을 만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완전히 이질적인 경험을 그 공간에서 누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철거와 원복 공사비는 일반적인 수준을 이미 한참 넘어선 상태였고, 이 또한 내가 이러한 전시와 공간을 원했기에 감행한 일이니 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새로 바뀐 임대인이 기쁘게 자신을 건물을 이후에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들인 시간과 비용이 무색해진 상황이었다. 일단 임대인에게는 구체적 방안을 다시 준비해 말씀드리겠다 하고 돌려보냈다. 원복을 총괄한 업체의 대표와 팀장을 데리고 근처 카페에 앉았다. 그들은 내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억울한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임대인이 요구하는 수준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었다며.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했을 것들을 지키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라 말했다. 이미 임대인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바, 만회하기 위해서는 보지 않았어도 되었을 손해를 볼 마음을 가지고 제안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임대인이 현재 기대하고 있지도 않은 부분을 오히려 더 제안해서라도 마무리를 잘할 수 있는 제안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 방안이 준비되면 임대인을 직접 찾아뵙고,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씀을 직접 전하려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늘 그렇듯,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그날 오후 임대인 측에서 보낸 공문을 받았다. 임차인인 우리가 약속했던 원복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이행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속인 부분들도 있으니 임대인이 직접 남은 원복을 진행하고 모든 비용을 우리에게 청구하겠다는 공문이었다.


허허.

원래의 나였다면 인정할 부분도 있지만 억울한 부분들도 있기에 전화를 해서 강하게 어필을 한다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법적으로 가서라도 끝장을 보는 방향을 잡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그 불쾌감을 나는 지켜볼 수 있었다. 내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임대인의 입장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원복 총괄을 한 업체의 입장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았다. 각자의 아쉬움과 억울함들이 보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임대인에게 전화를 드렸다. 내일이나 모레 직접 찾아뵙고 싶다고.


그렇게 이틀 뒤 임대인의 압구정 사무실로 이른 아침 찾아갔다. 임대인은 공문을 그렇게까지 보낸 이유는 원복을 한 내용들을 디테일하게 살펴보니 우리가 맡겼던 업체에 마무리를 맡겼다가는 어설픈 원복으로 인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들이 보였기에 즉각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조금은 민망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직접 업체를 써서 마무리를 할 범위와 그 비용들이 담긴 리스트를 내게 보여주었다. 2억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이미 우리가 철거하고 원복을 하는데 쓴 비용만큼을 다시 청구하겠다는 말이었다. 억울함에 다시 뜨거운 것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임대인이 보기에는 섬세이는 최선의 원복을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관리 감독을 할 업체를 고용한 것인데 그들이 재료를 속이고 시공법을 속였다고 말했다. 그들이 속인 내역들과 그들과의 대화 내용 등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그들을 소송해서 비용을 받으라고 했다. 자료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며.


방향을 잡아보겠다고 하고 자리를 나왔다. 원복을 챙긴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임대인이 원하는 범위와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진행하고 청구하겠다는 임대인 측 내용을 전했다. 그 대표는 이건 너무 과하다고 했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임대인이 원하는 수준까지 잘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제와 잘 마무리하더라도 임대인은 만족하지 않고 기존의 입장을 유지할 것이 뻔했다. 그럼 이 업체는 있는 대로 시간과 돈을 써서 또 나름의 마무리를 하겠지만, 결국에는 소송으로 갈 것이 뻔했다. 임대인은 우리에게, 우리는 임대인에게.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이 업체에게. 1-2년이 걸려 소송이 끝나고 나면 그곳에는 누구도 승자일 수 없을 게임이었다. 서로가 자존심을 지키며 자기가 옳다고 1-2년을 우겨대다가 적지 않은 비용을 모두 소송 관련 비용과 변호사들에게 납부하고 피를 철철 흘리며 끝날 스토리였다.


억울했다. 나는 그저 좋은 마음으로 임대인이 깨끗한 건물을 다시 돌려받기를 바랐다. 직접 우리가 공사를 챙겼다면 비용을 줄일 수도 있었겠지만, 더 책임감 있게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업체를 고용했고 관리감독을 맡겼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 벌어진 대로였다. 일이 틀어지고 임대인과 협의를 위해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건, 임대인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후 자기 집을 판교에 직접 짓고 그 이후로 서울에만 7개의 건물을 올리거나 대수선 한, 경험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예민하고 과한 요구를 한다고 보기보다는 그저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는 것이 많기에 많이 보였던 것뿐이었다. 반대로 업체는 통상적(?)이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원복을 진행했다. ‘이 정도는 대부분 임대인들이 잘 몰라요’ 라던지 ‘섬세이 쪽의 비용을 최대한 아껴드리려는 마음으로 줄인 관리비용과 재료비들’이라고 말했다.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다. 그저 전체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입장 안에 갇힌 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일을 처리했을 뿐.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기존 관습대로 어설프게 원복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업체의 잘못인가? 물론 그렇지만, 그 업체를 쓰겠다고 승인한 사람이 나였다. 또한 원복이 시작되는 시점에 임대인과 업체까지 삼자미팅을 내가 주선하여 함께 진행했다면, 임대인의 스타일도 파악할 수 있었을 테고 일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이 책임과 원망을 바깥으로 돌렸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문제의 뿌리는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굴에 철판 깔고 나도 억울하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소송까지 가 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에 나로 살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척 나도 우겨볼 수 있었겠지만, 내가 나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솔직하고 싶었다. 억울하다고 자꾸 올라오는 감정들을 누르며, 나는 내가 싼 똥을 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원복의 최종 마무리는 임대인이 하되 그 범위와 비용을 최소화해서 청구액을 줄이고, 동시에 직접 재시공을 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이 들터이니 원복 업체는 그 금액을 차라리 임대인에게 주자고 협의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임대인의 청구액을 아무리 줄여도 원복 업체가 기꺼이 부담하고자 하는 비용으로는 메꾸어질 리가 없어 보인다는 것.. 그 사이의 갭은 우리가 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이슈로 이미 우리 팀의 핵심멤버도 너무 오랜 시간 이 일에만 매달려 있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도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그보다 그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이런 일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 우리로는 손해라고 생각했다. 늘 좁은 시야로 이런 일들을 보아왔던 과거의 관점에서는 금전적인 손해부터 감정적인 억울함까지 너무 많은 것을 잃는다 보았겠지만, 법적 공방부터 시작해서 이 일에 매달리며 수없이 낭비할 나와 우리 팀의 에너지들이 보였다. 당장의 손해와 감정은 구체적이기에 쉽게 눈에 보였지만, 미래에 낭비될 에너지는 차분히 보아도 흐릿하게 보였다. 흐릿해도 그것이 빛이었고, 뚜렷이 보여도 그것이 어둠이었다. 당장 속은 쓰려도 빛이 옳을 것이라고 내 마음과 가슴을 설득했다.


먼저 원복 업체 대표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원복 업체는 얼마까지 협의금으로 지급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어차피 임대인이 부르는 협의금과의 갭은 내가 메꾸겠다고 했다. 아니, 왜 그렇게 하시려고 하냐며, 임대인의 요구가 너무 부당하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모두의 이해관계가 다른 이 상황에서 누구 하나가 손해를 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고 보았으니 그건 내가 맡겠다고 했다. 이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한 책임감의 숫자를, 그저 정해서 말해달라고 했다. 누구나 그 책임감의 수준을 정하는 기준이 다를 터이니 나 역시 대표님께 어떤 숫자를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틀 정도를 고민한 대표님은 2,000만 원 초반을 협의금으로 지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최종 협의를 위해 임대인을 만났다. 임대인도 사는 동네가 판교라 익숙한 서판교 스타벅스에서 아침 7시 30분에 만났다. 임대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임대인 역시 우리나 원복 업체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 법정공방으로 갈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표정의 한 꺼풀 안쪽에선 긴장이 보였다. 나 역시 이 일을 빨리, 그리고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임대인이 요구하는 범위와 보상금액은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니 협의를 위해 합리적인 수준의 범위와 보상금액을 말씀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가 부담할 수 있는 협의금은 2,000만 원 초반임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나는 이 분쟁으로 인해 우리뿐 아니라 임대인, 그리고 원복 업체까지 서로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또 방어하는데 쓰일 부정적이고 무쓸모한 에너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대인이 부르는 협의금과 업체가 말한 협의금 사이는 내가 메꾸겠다고 말했다.


임대인은 나에게 이 대표는 얼마를 생각하고 왔냐고 물었다. 나는 정하고 온 숫자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임대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가 아니라 직접 그 업체에 대응하는 일이었다면 그냥 법정으로 끌고 갔을 거고 어떻게든 그 업체에 큰 손해를 입혔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중간에서 이 대표가 손해를 보려고 하는 것이냐며 난감하다고 했다. 내가 입는 그 손해로 이 일에 엮인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임대인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는 진짜 미안해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저 미안해하는 척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늘 내가 해왔을 결정과는 정반대 되는 이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결정했기에 이 상황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피하지 않고 책임을 지기로 했기에 나는 주인이었다.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며 들리는 내 마음과 가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어렵게, 또는 어려운 것처럼 임대인은 1억 1250만 원을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이 숫자가 괜찮은 것인지, 이 대표 생각은 어떤지 왜 말해보지 않고 알겠다고 하냐며 물었다. 나는 어떤 숫자여도 받을 마음으로 온 것이었고 그 사실에 진실했다. 나는 숫자를 생각지 않고 왔다고 말했던 것이 거짓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모두의 에너지가 옳게 쓰이기를 바라고 그뿐이라고 말했다. 임대인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에, 원복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대인의 최종 제안 금액이 여전히 높지만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음을 전했다. 원복 업체 대표는 3,000만 원까지 본인도 부담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분쟁이 마무리 됐다.


또 다른 우주에서 임대인은 우리를 소송하고, 우리는 임대인은 맞소송하고, 동시에 우리는 원복 업체에도 소송을 하고 있었다. 1년이 넘게 임대인은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는 억울해하다가 분노하다가 그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우리는 원복 업체를 미워하고 있었고, 원복 업체는 처음에는 미안해하다 시간이 흐르니 그들 역시 우리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에너지에 둘러 쌓인 채 우리는 일 년을 넘게 지내오고 있었다. 잘 지내다가도 테라리움을 떠올리면 화가 나고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 우주를 맞이하게 나는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분쟁을 마무리하는 데까지 나 역시 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손해 보는 걸 눈곱만큼도 싫어하는 과거의 내가 수없이 튀어 오르며 평정한 마음을 수도 없이 깼다. 다시 그때마다 다시 호흡하고 평정한 마음을 되찾으려 애썼다. 다시 고요해진 그때에만 흐릿하게 보이는 현명한 길을 나는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어렵게 그것을 붙잡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길을 현실에서 실제로 행하는 것은 몇 배나 더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는 한 번이라도 진짜로 살아보고 싶은 나는, 꾸역꾸역 올라오는 과거의 나를 삼켜대며 행했다.


남 탓을 하면 나는 온전한 척 할 수 있었겠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저 깊은 곳에 있는 진짜 나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나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다른 이의 탓을 하고 있음을. 왜 찝찝한 기분을 가슴 깊이 지닌 채 살아야 하는가. 더 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졌다. 내 탓이다. 나 때문에 회사는 손해를 보았으니 나는 다시 벌어 채울 것이다. 실수를 했으면 인정을 하고 책임을 지고 만회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내 삶의 주인으로 내가 해야하는 순수하게 옳은 일이다.


뻔하다. 앞으로도 나는 실패가 아닌, 시도라는 이름의 똥을 계속 쌀 거라는 게.

적어도 내가 책임지고 치우는 한, 그 똥엔 아무 문제가 없다.

똥은 싼 놈이 치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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