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학교를 다니며 가장 많이 물었던 것이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만큼 나는 나에 대해 많이 묻고 들여다보며 지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더 몰입했던 건 내가 아닌 나의 자아였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내가 만들어 온 나의 서사에 더 몰입했고 그 서사를 계속해서 쌓아가는 일에 자연스레 관심과 집중이 쏠렸다. 그 서사가 나라고 착각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서사를 쌓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서사를 쌓기 위해서는 보여지는 것들이 중요했다. 나만 알아서는 안되고 남들이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과 프로젝트들에 대한 결정의 성격들이 계속해서 그 서사를 쌓는 것에만 쏠렸다. 결정의 방향들이 틀리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여지는 면들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로웠다. 주변의 응원을 받을만했고 높은 수준의 것을 지향했다. 문제는 그 겉으로 보여지는 면들에만 치중하여 안에 쌓여 올라왔어야 할 실재들이 불충분했다. 실재의 불충분함은 감동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결국 응원을 주고 박수를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나는 배신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배신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기에 변명을 해보자면, 내 에고는 나 자신마저도 속였다. 당시의 나는 진심이었고, 또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알아버렸다. 에고가 만들어 낸 환영 같은 것들이 조금씩 걷혀지니, 나는 나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민낯을 보니 그간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것인지가 명백히 보였고 나는 소중하고 고마운 나의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아무도 들춰내지 않았기에 그저 모르는 척 이전처럼 살아가도, 운이 좋다면 죽기 전까지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거나 모른 척 지나쳐준다 한들, 이제는 내가 알아버렸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어졌다. 아니 떳떳해야만 했다. 쌓아왔던 모든 걸 다 무너뜨리고 잃는다고 해도 나는 당당하고 후련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섰다. 내가 가진 서사, 내가 가진 회사, 내가 가진 집, 내가 가진 차,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나인줄로만 알고 살아왔던 나를 내려놓고,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에고가 들쳐메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려놓으니 많이 가벼워졌다. 다 덜어내고 다시 쌓고 싶다. 결과나 타이틀, 명예보다는 과정이 주는 것들을 곱씹으며 쌓고 싶다. 목적을 따로 두고 음흉하게 하는 행위들이 아닌,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때쯤 나는 진심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지.
찬빈 님의 책을 보면서도 그랬다. 크고 위대한 것들보다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모여 묶인 책이었다.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고 담백히 담아내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 우리 팀 멤버들을 좋아한다. 나랑은 다르게 그런 멋진 면들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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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이에서는 매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독후감을 나눕니다.
9월의 책 '에고라는 적'을 읽고 적어 멤버들과 나눈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