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도 괜찮아
이 글은 현모양처 첫 에세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 00가지 순간들'에 들어갈 글입니다.
요가하면서 깨달은 것들
요가 : 산스크리트어 '결합, 통합하다, 연결'이라는 의미.
어근 유즈(Yuj)는 '묶다, 연결하다'라는 뜻.
신체, 마음, 그리고 영혼을 하나로 연결하고자 하는 요가의 철학적 목표를 나타냅니다.
현대적으로는 신체적 건강, 정신적 안정, 영적 깨달음을 동시에 추구하는 수련법.
요가.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도인들이 가부좌 자세를 하고, 눈 감고 명상하는 모습이 요가라고 생각했다.
'궁금하다'라는 생각만 품고 살았다.
그러다 10년 전, 대학교 때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를 겪었다.
문득 요가가 떠올랐다.
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가원 가기 전 주춤했다.
여자들이 하는 운동이란 편견이 있었다.
실제로 요가원에 처음 갔을 때 남자는 없었다.
하지만 오해였다. 남녀를 나눌 이유가 없었다.
남자건 여자건 본인의 몸과 마음을 돌봐주어야 한다.
맨 처음 말한 대로 요가는 내 몸과 마음을 돌보게 해주는 좋은 도구였다.
하면 할수록 요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비보잉을 10년 정도 추었기에, 요가 동작을 하는 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 무엇인지 몰랐지만 요가는 내가 추었던 춤과 달랐다.
무엇이 달랐나?
목적이 달랐다.
내가 춤을 추는 목적은 1등 하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추었다.
남들보다 더 나은 동작을 하려고 했었다. 이기지 못할 땐 우울했다.
'내 춤이 이것밖에 안 되나?' 자신이 없어졌다.
요가는 달랐다.
경쟁하기 위해 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한다.
눈에 보이는 동작이 전부가 아니다.
요가는 하는 내내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 몸과 마음이 도달하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 묵묵히 노력할 뿐이다.
남을 깎아내리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오직 나를 위해서 한다.
그럼에도 처음엔 나는 동작을 잘하려고 했다.
긴장되었다. 호흡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프니 요가를 빠지는 날이 많아졌었다.
나는 인생에 많은 부분을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면서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요가를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가를 하며 가장 크게 배운 1가지.
'못해도 괜찮아'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다.
요가 목적이 이기기 위함이 아니다.
동작이 안돼도 괜찮다. 안되면 안 되는 대로 하면 된다.
그 모습도 내 모습이다.
동작이 된다고 좋고, 안된다고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이 더 많으면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무조건 행복한가?
아니다.
많이 가진 게 행복의 기준이라면,
재벌들과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거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지금 주어진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무엇을 가졌냐 보다 내가 만족하느냐'가 행복에 있어서는 더 중요했다.
요가는 남보다 나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 지금 그대로 괜찮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요가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가는 바로 옆에서 나를 잘 챙겨주는 친구 같다.
덕분에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을 배웠다.
꾸준히 옆에 두고 함께 가고 싶다.
"내 몸과 마음을 돌봐주고 싶다면,
가볍게 요가 한 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