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랜만인가 하면 8살 둘째가 걸음마할 때 가고 안 갔으니 마지막으로 성당을 간지 5년 이상 지난 거 같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그간 반복되는 주말에도 성당에 갈 생각은 전혀 안 들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이끄는 몇 개의 좌우명 중에 하나가 '닥치면 다 된다.'이다.
소심하고 안정지향적인 성격으로 워낙에 미리 걱정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 스타일이기에 의식적으로 그 에너지를 모아 닥쳐서 이겨내자는 쪽으로 나 자신을 자주 다독이는 편이다.
닥치면 다 된다는 이런 무대포 정신은 종종 운명론자의 길을 걷게 한다.
나의 일상을 바꾸는 어떤 '계기'나 '누군가'가 불현듯 나타나고, 그로 인해 내 삶을 확 달라지게 할 '무언가'가 운명처럼 존재한다고 믿는다. 성당에 간 것만 해도 그렇다. 갑작스럽게 확!
그간 열혈 신자이신 엄마께서는 성당에 가라고 나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내 삶을 이끄는 또 다른 좌우명인 '내 인생과 결혼생활의 의미를 절대 종교에 두지 않는다.'를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엄마다. 크면서 늘상 듣던 '내가 주님 때문에 산다.', '주님 아니었으면 이 가정 벌써 깨졌다.'는 엄마의 말이 어찌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삶의 근원과 결혼생활의 이유를 왜 주님에서 찾는 건지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고 조금 비겁해 보였다. 그나마 엄마가 믿는 종교가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천주교이기에 다행이지 어디 이상한 사이비 종교였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아찔함도 자주 느끼곤 했다. 이제는 엄마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건지 조금은 알 거 같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거기에 무신론자인 남편을 만난 뒤 팔랑귀인 나는 성당에 가지 않을 그럴듯한 명분까지 갖췄다.
본 투 비(born to be) 공대 오빠인 남편은 과학적 사고에 기반하여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특히, 지금의 종교는 다 인간이 만든 부질없는 허식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내가 옳네, 네가 틀리네'하며 서로 드잡이를 하고, 종교 본래의 의미를 퇴색한 채 수단이 목적으로 변질된 상황들에 심한 거부감과 염증을 느낀다고나 할까. 남편이 자신의 종교관을 가끔 내비칠 때마다 속으로 '맞네~ 맞어~'를 외치며 나도 슬며시 물들었다.
그런데 어쩌다 성당에 갔을까?
시작은 언제나처럼 뜬금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소설이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극적인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럴듯한 개연성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뜬금없음에 대한 이해나 설득을 구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뜬금없이 '뜬금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잠도 푹 자고 일어나 몸도 가뿐하고
약간 흐린 날씨에 쌀쌀함이 묻어 나오는 평범한 일요일 오후다.
남편은 서재 방에서, 큰 꼬맹이는 자기 방에서, 작은 꼬맹이는 거실에서 각자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로에게 치댐 없이 여유로운 시간이다. (기특한 작은 꼬맹이)
나는 침대에서 뒹글 뒹글 책을 읽다 유튜브를 보다 웹서핑을 하다 다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시간 나는 김에 '집안 정리를 좀 해볼까나~'라는 생각으로 일어난다. 펜트리에 가서 뒤죽박죽 된 과자와 김과 라면들을 정리한다. 둘째 꼬맹이가 먹고 그대로 둔 빈 과자박스만 치워도 펜트리가 깔끔해진다.
내친김에 '사부작사부작 정리를 좀 더 해볼까나~'라는 생각으로 나는 거의 쓰지 않는 바깥 욕실로 간다. 거기서 작년에 웹서핑을 하다 이뻐서 충동구매했던 묵주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택배가 오자마자 큰 꼬맹이가 자기가 낀다고 가져가더니 한 동안 손가락에서 보이지 않아 이제 돌려달라고 말해야지 했던 게 벌써 몇 개월 전이다. 손 씻으려 욕실 선반에 빼놓고 잊은 지 오래됐는지 은반지가 흑반지가 되어 있다. 민간요법인 치약으로 흑반지를 다시 은반지로 만들어 손가락에 낀다. 다시 봐도 참 이쁘다. 신난다.
그러다 문득 열혈 천주교 신자이신 엄마의 말이 귀에 맴돈다.
묵주, 묵주반지, 십자가 같은 성물을 신부님 축성 안 받고 가지고 있으면 귀신이 든다나 뭐다냐..
흠~ 갑자기 '축성받으러 성당에 가볼까나~'라는 생각이 든다.
집 근처 성당 두 곳을 검색해보니 마침 30분 뒤에 어린이 미사가 있는 곳이 있다.
나같이 신심이 깊지 않은 돌아온 탕아에게는 어린이 미사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게 또 없다.
아다리가 딱딱 맞는 이 상황!
거기에 더 추워지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지극히 소소한 동기부여까지 합쳐진다. 머리를 쓱쓱 빗고 패딩점퍼를 걸치고 나는 어느새 큰 꼬맹이의 자전거 페달에 발을 대고 있다.
제천변을 끼고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를 신나게 질주하니 등에 땀이 베일 즈음 성당에 도착한다.
미사 시작 2분 전. 차로 오는 시간보다 빨리 온 듯하다.
정말 오랜만에 미사를 모신다.
잊은 줄 알았던 기도문들을 내 입은 기억하고 있다.
어린이 미사답게 신나게 노래하고 도우미 학생들의 율동을 따라 하다 보니 금세 미사가 끝나 있다.
보통 미사가 끝나면 집도하신 신부님께서 성당 현관에 나와 신도들에게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해주신다. 그때 축성을 부탁드리면 해주신다.
이런 건 안 변했겠지? 현관에 나가 있으면 되려나? 쭈뼛거리며 느릿느릿 나서는데 누가 아는 척을 한다.
다른 부처에 있는 동기이자 대학 후배이자 친한 동생이다.
반갑다. 이런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동생의 안내로 무사히 묵주반지에 축성을 받는다.
'고맙다. 또 보자' 인사하고 다시 자전거를 탄다.
오는 길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가는 길이다.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알록달록해진 나무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천변을 따라 날아가는 커다란 하얀 새(두루미?)를 구경하느라 잠시 자전거를 멈춘다. 한참 새를 따라 내 고개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가고 새는 점이 되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