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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Nov 07. 2022

시간여행자의 오늘

타임슬립(Time slip)에 열광하는 이유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걸 갖고 싶어?

8살 둘째와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말장난을 할 때면 아이가 한결같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당신은 어떠한 초능력이 갖고 싶은가?


상사가 던져버린 보고서를 허리 굽혀 주울 필요 없이 내 손으로 가져오는 '염력'
경쟁조직에서 벌어지는 전략회의 같이 비밀스러운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투명인간'
산 건너, 물 건너, 머나먼 출장지도 눈 깜빡할 사이에 옮겨 다니는 '순간이동'
구글맵도 부럽지 않은 천리 밖을 내다보는 '천리안'
소위 복도통신이라고 하는 온갖 뒷담화와 소문들을 섭렵할 수 있는 소머즈급 '청력'
손바닥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손 안대고 무례한 상사의 뺨을 올려칠 수 있는 '장풍'


A4 사이즈 종이 한 장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그 종류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초능력 속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바로 타임슬립(Time slip), 즉 시간여행이다.


타임슬립(Time slip):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시간여행


여행의 사전적 개념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행의 대상이 이곳저곳이라는 '공간'이 아닌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된다는 점은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시간은 바람과 같이 흘러간다. 그 누구의 의지에도 아랑곳없이 그냥 흘러간다.

대통령도 재벌 총수도 나도 같은 시간을 함께 흘려보내며 살고 있다.

물론 그 사람이 가진 부와 명성에 따라 똑같은 1분도 다른 가치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은 붙잡을 수도, 모아둘 수도 없고, 그래서 '나중에'라는 기약도 공허하다.


시간을 아낀 뒤 자신의 의도에 따라 아껴둔 그 시간에 더 큰 의미부여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을 아껴 쓰라는 말을 하며 산다. '아껴 써라', '함부로 쓰지 말아라'라는 말은 대개 시간, 돈, 물 등에 쓰인다. 표현은 같지만 '시간'은 '돈', '물'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나 물을 아낀다는 의미에는 '쓰지 않는다'는 부작위의 의도가 강한 반면

시간을 아낀다는 말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쓴다'라는 작위의 의도가 강하다.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렇기에 '시간을 쪼개 쓴다'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쓰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다.

또한, 시간에는 중간 멈춤이 허락되지 않는다. 시간의 멈춤은 죽음이라는 영원한 멈춤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허락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타임슬립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20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과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사건을 막을 수 있다면..
20년 후의 미래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내년의 증시정보를 알 수 있다면..


당신에게 타임슬립이 허락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타임슬립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시간을 인간의 자유의지 안으로 옮겨 놓는다.

타임슬립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기회는 단지 '시간'이라는 두 글자로 함축하기에 벅찰 정도이다.

타임슬립이 주는 무한의 상상 속에는 당신이 안타깝게 놓친 무수한 기회와 가보지 못한 미래의 무궁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간을 엎어지든 매치든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겠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시간을 되돌리거나 미래로 가보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기에 타임슬립을 열망하는 것이다.


*출처: 나의 최애 드라마 tvN 시그널(2016)


이러한 열망을 배경으로 타임슬립 영화나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그런데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타임슬립 스토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흡입력 있는 타임슬립 스토리에 넋을 잃고 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타임슬립 스토리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타임슬립은 타임슬립 그 자체보다도 타임슬립을 인지한다는 설정이 핵심이다.

주변인들과 달리 주인공과 주인공의 핵심 관계자들은 타임슬립 자체를 인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간을 매개로 한 주인공의 어떠한 행위로 인해 주인공의 배경의 되는 공간, 사물, 주변 인물들의 상황이 슬로모션으로 변하는 장면은 이러한 설정 설명에 자주 애용된다. 거기에 주인공의 어안이 벙벙한 표정까지 클로즈업!


실제 타임슬립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본인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백날 천날 타임슬립이 일어나도 그건 타임슬립이 아닌 것이다.

다르게 보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실제 타임슬립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은 타임슬립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온 내가 맞이하는 설레는 첫 날일 수도 있다.

아쉽게도 기억을 가지고 타임슬립을 하지 않아 이 엄청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타임슬립을 하지 않는 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지금과 똑같은 오늘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타임슬립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이나 미련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기분이 든다.


아직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를수록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쌓여간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음에 후회스러움의 농도는 짙어간다. 후회도 지나치면 병이 될 수 있다.

그럴 땐 타임슬립의 핵심을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되돌아온 나에게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자.
설혹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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