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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Feb 20. 2023

커피머신을 추천해 달라고요?

커피 향? 디자인? 무엇이 중요하신가요

단톡방에 커피 머신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한 수다 떠는 나는, 단톡방에 한 번 휘말렸다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쉬이 끼어들지 못한다.

드롱기부터 일리와 네쏘 머신 등 많이 쓰는 것 위주로 서로 추천한다. 어떤 분은 그 모든 걸 다 갖고 있다며 나란히 서 있는 아이들의 인증샷을 보낸다. 여러 가지를 사용해 본 분은 아무래도 커피 맛이 좋은 것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갓 볶은 콩을 사서 바로 갈아서 내려먹는 커피가 캡슐커피보다 맛있겠지. 당연할 것이다.

편안한 쪽으로 추천 방향이 바뀌자, 부드러운 맛과 심플한 디자인이 일품인 일리 캡슐커피로 의견이 몰린다.

그러다 문안하고 저렴한 모델이 많은 네쏘 머신 이야기로 옮겨간다. 처음엔 맛의 일품인 버츄오 캡슐 찬양이 이어진다. 결국은 스타벅스, 일리 등 다른 캡슐과 호환이 가능한 일반 네쏘머신 승리를 거두었다.

중간중간, 몰래 톡을 읽던 나는 추천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네쏘머신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 집에 있는 10년 넘은 머신은 우유 거품기가 달려있는 네쏘머신 일단 여기서 벌써 남다르다. 10년간 고장이 난 적이 없단 말이다. 고장이 아직 나지 않았을 뿐, 언제 망가질지 조마조마한 머신에게 나의 애정과 사랑과 감사와 동정을 보낸다.

일단 위염이 심해진 이후로 라테를 좋아하는 나는 잘 사용하지 않는 에어로치노가 있어서 어찌나 든든한지.

물론 부드러운 라테 캡슐로 사랑받는 캡슐 기계들이 있지만, 순하고 연한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다. 단 한 잔으로 잠이 홀딱 깨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카페인 강도가 높은 캡슐도 좋고, 커피 강도가 13으로 높은 캡슐은 우유와 어우러지면 얼마나 맛있게. 다른 브랜드의 캡슐보다 네쏘 캡슐이 진하고 잠도 훅 깬다.

그뿐 아니다. 캡슐 기기이니 만큼 먹는 방법만큼이나 단순한 청소방식이다. 캡슐통이 다 차면 쓰레기통에 훅 버리면 되니, 가루날림도 없다. 그리고 그 캡슐통과 물통, 밑에 물받이만 헹궈주면 되는데 설거지하기 편하게 입구가 넓거나 넓적한 모양이므로 게으른 나에게도 문제없다.

나보다 커피를 두 배나 더 많이 마시는 남편은 그나마도 어려워 보인다. 캡슐 통이 다 차면 새로운 캡슐을 넣고 뚜껑을 닫을 수가 없는데, 무식하게 막 그냥 눌러 넣고 닫아버린다. 기계 망가진다고 바로바로 버리라고 잔소리를 하면 한동안 비우기는 하는데, 그걸 비운 후 다시 제자리에 끼우는 데 애를 먹는다. 그게 어렵다고 물어보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캡슐통은 내가 매일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밑에 물받이가 넘쳐도 씻을 줄 모르는 남편이라고 밖에서 말한 적은 없다. 그래도 나보다 낮과 밤에 덜 바쁜 바람에(연봉은 나보다 높고) 설거지, 빨래, 육아 등 주 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인데 그 실체를 내 주변인이 아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 우리 집이 돼지우리랍니다 광고하는 거 같기도 하고, 누워서 침 뱉기이기도 하고.

어쨌든 난 커피 없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고, 그래서 그 기계 없으면 못 사는데 남편이 그렇게 함부로 사용하니까 언제 망가질까 늘 불안하다. 그래도 어디 육아서에선가 육아 채널에선가 얼핏 봤는데, 부모 중 한 명만 멀쩡해도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두 배로 사랑해 줘야지. 망가지지 않도록. 머쉰을? 아이를? 남편을?

지금 남편이 함부로 사용하는 물건이 그것뿐만이 아니기에. 냉장고, 공기청정기, 건조기, 청소기 등등  많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고장 나면 집안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런 단순한 구조의 머신도 게을러서 관리 잘 못하고 있는 우리 같은 부부에겐 네쏘 머신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다. 세련된 디자인 그게 뭔가요. 크레마의 밀도가 웬 말인가요. 진한 강도의 커피가 없다면, 내 스트레스는 뭘로 푸나요?

*네쏘 : 네스프레소

#출근하면믹스커피마셔요
#카누더블샷라떼
#카누돌체라떼
#살찌는맛최고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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