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안면도

ONE FINE DAY

by 타이거ㅎㅎ

육지였다가 섬이 됐다가 다시 육지가 된 안면도(安眠島). 편안한 밤을 약속하는 안면도에서, ‘나만의 바다’를 찾았다.





나만의 섬을 가지리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육지와 너무 멀지 않으면서 나에게만 접근을 허락하는 비밀의 섬. 그 고독한 낙원에서 어디에도 없는 휴식을 꿈꿨다. 섬은커녕 내한 몸 뉘일 방 한 칸 마련하기도 녹록지 않은 것이 범인(凡人)의 삶이라. 바지런히 주택청약을 넣는 짬짬이 섬으로 여행 가는 것이 일상의 낙이다.

물 위에 서있어 섬이라던가, 뱃사람 쉬엄쉬엄 가라고 섬이라던가. 섬(island)을 보면 ‘isolate’란 단어가 떠오른다. 섬 특유의 가라앉은 공기와 적막감은 이 때문이 아닐까. 쓸쓸함과는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이처럼,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늑함이다.


연륙교를 건너자마자 객을 맞이하는 백사장항. 안면도의 랜드마크인 '대하랑꽃게랑'에 오르면 눈앞이 시원해진다.


안면도는 섬이다

낙엽도 자취를 감추는 겨울의 초입, 오랜만에 안면도를 다시 찾았다. 태안반도의 남쪽에 길게 누운 안면도는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다. 안면대교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오래된 다리가 보인다. 1970년에 완공돼 안면도와 태안반도를 연결한 최초의 연륙교(連陸橋)다. 길이 208m에 2차로 뿐인 작은 다리지만, 저 다리가 놓이기까지 300년이나 걸렸다.

연륙교 준공을 ‘2만 도민의 꿈’이라 칭한 1970년 12월 9일 자 동아일보를 보면, 안면도민이 ‘다리’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다. 10마력짜리 발동선으로 한 사람에 20원씩 받고 나르던 뱃사공과, 백사장나루터에서 장사하던 열 개 남짓의 주점 주인들….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내일 먹고살 길을 궁리하며 마지막 영업을 준비하던 이들도 있었으리라.

백사장나루터는 사라졌지만, ‘백사장항’은 여전히 성황이다. 안면도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항구인 이곳은 봄부터 여름까지는 꽃게를, 가을부터는 대하를 주로 취급한다.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이 생기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1970년에 세운 첫 번째 다리와 1997년에 세운 두 번째 다리, 그리고 2013년에 세운 세 번째 다리. 다리 세 개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자니 괜스레 잡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섬의 적막함이 섬의 토박이에게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백사장항에 가득한 저 횟집 중에 나루터에서 옮겨온 가게가 있을지….

한 관광객이 사진 좀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대하랑꽃게랑이 잘 나오게 담아드렸더니,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동서남북으로 한 장씩 요구하신다. 애써 잡은 감상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 그래도 사진을 확인하고 까르르 웃으시는 모습이 꼭 우리 엄마 같아 함께 웃었다.



트래킹 코스이기도 한 '쌀썩은 여'
생태체험 중인 아이들, 그리고 천상병 시인 고택(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로 261-10)


안면도는 섬이 아니다

300년 만에 육지와 연결된 안면도. 그러나 안면도는 본디 섬이 아니라 육지였다. 안면도 앞바다는 예부터 암초가 많고 안개도 잦은 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유속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문제는 삼남(三南)에서 인천 제물포로 가는 조세선이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것이었다. 조세선이 안면도를 통과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일이 잦자, 조정에서는 남면 드르니와 안면곶에 운하를 건설하기로 한다. 그러나 당시 건설 기술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일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공사는 조선 인조 16년(163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지금의 안면대교 자리에 조선 최초의 운하를 완공한 것이다. 이는 1869년에 건설한 수에즈 운하나 1914년에 개통한 파나마 운하보다 무려 250여 년이나 빠르다. 안면도 신야리에 가면 ‘쌀썩은 여’라는 곳이 있다. 좌초된 배에서 흘러나온 쌀이 해안까지 떠밀려와서 생긴 지명이다. ‘태안해변길’ 트래킹 코스이기도 하고, 차로도 접근할 수 있으니 안면도가 ‘안면곶’이었던 증거를 눈으로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들러봐도 좋다.

쌀 썩은 여에서 차를 돌려 대야도로 향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로 시작하는 시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의 고택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태안반도의 끝자락, 대야도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꽃지해수욕장과 삼봉해수욕장 등 안면도에서 이름난 해변과 소나무 숲이 우거진 안면도 자연휴양림을 모두 지난다. 이윽고 ‘시인의 마을’이라 쓰인 표지판을 만나면, 천수만 갯벌을 바라보는 소나무 언덕에 자리한 작은 집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의 단출한 집. 문단에서 소문단 주당이자 기인이었던 천상병 시인의 옛집은 본래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있었다.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천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지인이 자신의 고향 안면도에 사재를 털어 집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이다. 천 시인 부부의 지인,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모종인 씨는 2010년 작고했다. 그들이 인연을 맺었던 인사동 카페 ‘귀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따금 옛집을 찾고, 그들을 추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름다운 소풍’은 계속될 것이다.



장삼포해수욕장

나만의 바다를 찾아서

마음에 드는 바다를 만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맨발로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고운 모래, 야트막한 수심, 청량한 파도…. 대개 이런 바다들은 일찌감치 소문이 나서 발 디딜 틈이 없거나 어설픈 위락시설로 옛 경관을 망치기 일쑤다. 하지만 안면도의 바다는 다르다. 어느 바다에 가든 모래가 곱고 파도가 잔잔하니 특정 해변을 편애할 까닭이 없다. 백사장,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두에기, 방포, 꽃지, 샛별, 운여, 장삼포, 바람아래…. 이름도 아름다운 해변이 연달아 손짓한다.

안면도에서 ‘나만의 바다’를 꼽으라면 장삼포해수욕장이다. 유리의 원료인 규사가 풍부한 백사장은 이른 아침 햇빛에도, 한낮의 태양에도, 주홍빛 일몰에도 반짝반짝 투명하게 빛난다. 편의시설은 몇 개의 펜션과 작은 슈퍼마켓, 오토캠핑장, 공중화장실이 전부. 흔한 식당 하나 없지만 그래서 장삼포는 더 빛이 난다. 오로지 바다에 집중할 수 있어서. 순수해서.

장삼포해수욕장의 유일한 슈퍼에서 사이다를 한 병 샀다. 막 모래를 쓸어내고 온 이점숙 씨가 “가을부터 오는 사람이 진짜 단골”이라며 반겼다. 그는 바로 옆 한마음펜션을 함께 운영한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오토캠핑장부터 유스호스텔 스타일의 숙박시설, 너른 잔디마당이 딸린 45평 독채까지 선택지가 다양해 장삼포를 찾을 때마다 묵는 곳이다.

낮에 대하를 눈여겨봤지만 사지는 않았다. 동네 맛집은 현지인에게 묻는 것이 정석이니까. 한마음펜션 사장님이 추천한 곳은 방포항에 있는 방포수산. 따로 캠핑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과연, 다른 곳에 비해 관광객보다 동네 주민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기분 탓인지 생물 상태가 훨씬 싱싱해 보였다. 광어가 더 맛있어 보였지만 매운탕을 생각해서 우럭과 소금구이용 새우를 샀다. 맞은편에서 회를 떠서 바로 옆 회타운에 자리를 잡았다. 크, 술을 절로 부르는 이 맛. 이래서 바다를 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남아 포장한 새우만 한가득이다. 다시 장삼포로 돌아왔다. 새로 손님이 왔는지 텐트에 불이 환하다. 같은 여행객이니까, 넉살 좋게 포장한 새우를 나눴다. 어느새 사장님이 귀신같이 참나무 장작을 꺼내 두셨다. 타닥타닥. 한 손엔 새우, 다른 한 손엔 맥주, 서라운드로 노래하는 파도소리. 안면도의 밤이 이렇게 또 한 번 깊어간다.


한마음펜션캠핑장(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 617-1), 방포수산(충남 태안군 안면읍 방포항길 64)
지아비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는가
넋이라도 함께 하려는가.
물에 잠길 때마다 헤어지는 꽃지의
할미·할아비 바위는
물 빠질 때만 오매불망 기다린다.
서로의 손을 다시금 꼬옥 붙들기 위해서.


WORD 이현화

PHOTO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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