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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Oct 27. 2024

나의 이름으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

"직장은 일시적이지만, 성장은 영원하니까" - 핑크슬립 파티에 다녀와서


지난주 수요일, 볼트엑스가 주최한 ‘핑크슬립 파티’에 다녀왔다.
‘핑크슬립’이란 미국에서 해고 통지서를 뜻하는 말인데, 처음엔 해고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재취업을 도모하는 자리로 시작되어 나중엔 채용 담당자들이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직과 네트워크의 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국내에서 열린 첫 '핑크슬립 파티'행사에는 퇴직을 경험한 사람들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직장인들, 그리고 인재를 찾는 채용 담당자들까지 모였다. 참가자는 사연을 담은 신청서를 통해 선정되었고,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초대받아 참석할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아니 멀쩡히 회사 잘 다니는 애가 거길 왜 가?” 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도 됐고, 나보다 더 절박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괜히 내가 방해가 되진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든, 요즘처럼 구조조정과 권고사직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는 상황에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나의 불안감은 단순히 회사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UX Writer로 일하고 있다.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브랜딩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 업무로 여겨질 때도 있다. 특히 아직 불안정한 스타트업에서는 내 역할이 언제든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회사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은 언제든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매번 괜찮다고 스스로 달래봐도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 자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머릿속에 자리했다. 


하지만 불안의 이유는 단순히 해고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전의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더 컸달까. 일이 많아도 신이 나서 즐기던 때가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더 나은 결과를 고민하며 몰입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런 나를 다시 찾고 싶었고,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이 파티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고민도 나누고 서로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또 전 구글코리아 임원이었던 정김경숙 님의 세션도 꼭 듣고 싶었다.



전) 구글 임원 '정김경숙'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모습.

정김경숙 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왔다. 구글에서 해고된 뒤,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시작한 그녀의 경험이 단순한 위로 이상의 울림을 줬다.


“회사가 성장한다고 내가 성장하는 건 아니에요.
회사를 통해 포트폴리오와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꼭 그게 성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일 수도 있어요.
지금 하는 일이 결국 미래의 자산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 내 눈앞에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들어 가세요.”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 결국 성장은 회사가 아닌 내 몫이라는 걸. 회사가 나를 키워주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경험이 다 나의 자산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한때, 나의 젊음을 쏟아부은 위메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퇴사한지 2년이 다 되었지만, 내 직장 생활의 절반을 함께했던 곳이기에,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애정이 남아 있다. 몇 달 전, 뉴스에서 위메프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주위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와, 기가 막히게 나왔다. 지금은 안 다니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역시 너야. 똑똑해."


솔직히 말하면, 위메프가 당장 망할 것 같아서 이직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더 성장하고 싶어 나왔을 뿐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사회 생활 꼬꼬마 시절, 나를 키워주고 성장시켜 준,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곳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신경쓰이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마치 오래전에 사랑했던 연인의 소식을 듣는 기분이랄까. 이별했지만 여전히 응원하던 곳이라 더 아팠다.


가끔, 마치 오랜 연인과의 추억을 열어 보듯, 앱을 열어 남아 있는 내 흔적을 발견할 때면 그게 그리 반가웠다. 새로 추가된 기능을 볼 때면 “이건 함께했던 동료들이 만든 걸까?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의 손길일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 합류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멋진 동료들과 함께 일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큰 위기로, 여러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 일로 이 사실을 이미 깨우친 것 같기도 하다.


“아, 회사는 영원하지 않구나. 직장도, 동료와의 인연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든 끝날 수 있구나.”


그 이후로는 위기에 잘 대응하고자,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으려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멈추지 않고 배우고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여전히 엄마는 "그래서 큰 회사가 좋은거야. 다음엔 좀 더 큰 물에서, 안정적으로, 좀 편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돌림노래처럼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그게 편한 거 알아, 엄마. 근데 여긴 잔물결이 끊이질 않아. 가만히 있으면 휩쓸려버리잖아."

가끔은 정말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하며 버티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결국 나는 대비하고, 움직이고, 또 뭔가를 만들어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핑크슬립 파티로 나를 다시 더 돌아볼 수 있었다. 해고된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파티는 불안과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 회사가 아닌 나 자신에게 기대고, 나를 지켜낼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달까.


앞으로도 불안에 휘둘리기보다는 내 가치를 발견하고 기회를 만들어가는 내가 되기를. 회사가 아닌 내가 나를 성장시켜야 하니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만들어갈 가장 큰 자산이 될 테니까.




제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불어주기를, 힘이 되기를 바라며.

공감과 댓글은 제게도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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