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채워집니다
1부에서는 간단히 내가 왜 절에 올라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맥락과 생활을 이야기했다면 2부에서는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입으로 말한, 마음속으로 말한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스님이 말했다.
이런 날씨에 절에 자진해서 올라온 젊은 사람 치고는 정상인 사람이 없는데 그대는 무슨 사연으로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실 어느 정도 일들이 정리되고 입산했기 때문에 징징거리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혼란과 더불어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스님은 나보고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다.
스님 스마트폰 쓰시지요? 거기 안에 있는 앱을 만듭니다. 디지털 속세에서 왔습니다. 내 선에서 Product Designer를 스님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스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두 가지 말을 하고 떠나셨다.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끝없는 번뇌와 함께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리저리 마음을 쓰기에 살아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절에서 무언가를 깨닫거나 채우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대신 어중간하게 채워진 마음을 모두 비우고 내려가십시오. 비울수록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모두 비울 수 없다면, 잠시 내려놓고 쉬다 내려가십시오. 잘 쉬고, 잘 먹고, 다시 디지털 속세로 내려가십시오.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많이 아렸다.
야심한 밤, 불을 다 끄고 달빛에 의존해 앞을 보며 108배를 시작했다. 일단 이거 생각보다 힘들다. 나같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들은 50번 채우는 것도 힘들 것이다. 고난도 요가 동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5, 6... 절을 한번 한번 하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솔직히 좀 명상적인 장면을 상상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머릿속은 온통 천박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와 씨 3,000배 하다 병원 가는 거 아니냐?', '무릎에서 왜 뚝뚝 소리가 나지?', '배고파', '나물밥 먹고 이걸 어떻게 해!'.
50번이 넘어가니깐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라. 중장거리 수영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도 500M 까지는 힘든데 그 이상부터는 그냥 팔이 돌아간다. 절도 50번이 넘어가니깐 그냥 몸이 움직이더라.
횟수를 의식하던 나의 마음은 점점 고요해졌고, 숲 냄새와 바람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다음날 다리가 아팠지만, 꽤 낭만적인 밤이었다.
숙소 뒤편으로 숲이 있길래 아침 공양(밥)을 마치고 산책을 했다. 소나무인지 잣나무인지 겨울인데도 초록초록한 경관을 볼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머리 위로는 푸른색 나뭇잎, 발아래로는 갈색의 흙으로 돌아가는 죽은 나뭇잎들. 문득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삶이 꽤 유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고등학교 졸업하고 전역한 거 같은데 24살이네? 이러다 곧 30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갑자기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유한하고 덧없는 삶, 나의 미천한 재능과 능력으로 살아있는 동안 조금은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나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기쁨,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스님이 말씀하신 덕이 아닐까 싶다.
이직 후 기회가 된다면 다문화 가정, 학교폭력을 겪은 친구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뒤편에 나보다 먼저 수행을 하고 간 수행자들의 탑들이 있었다. 저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나도 돌탑 수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점심 공양을 먹고 탑을 쌓았다.
생각보다 어렵더라.(참 인생에 쉬운 거 없다) 쌓다 보면 어느 순간 첫 부분이 꼬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문득 지난 2년간 내가 만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주니어지만, 나의 생 주니어 시절을 떠올리자면 꽤 답답한 사람이었다. 눈은 높은데, 손은 안 따라주는,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에 매몰된 꽤 오만하고, 막힌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지금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분명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무너진 돌탑과 비슷한 인연들이다. 다시 쌓을 수 있다. 그리고 무너진 탑을 보며 후회하기보다는 이미 내 주변에 있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쌓은 탑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그들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싱글몰트를 마시면서 방에서 잠만 잤을 것이다.
고맙다.
일이란 뭘까? 디자인이란 뭘까? 디자이너란 뭐하는 사람일까? 산멍을 때리던 중 Jony Ive의 CCA 졸업연설이 떠올랐다. 역삼 사무실에서 바쁜 나머지 다른 일을 동시에 하며 2배속으로 들었는데, 흥미로웠던 기억이 남아있어 천천히 다시 들어보았다.
중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며 읽은 리앤더 카니의 '조너선 아이브'에 많은 영감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그의 이야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인생의 교착점에서 항상 아이디어를 주는 Jony이다. 들으면서 크게 공감이 된 부분을 공유하자면
What bothered me was just how easily my attention was consumed with the specific skills of design rather than the fundamentally important ones of creating.
Not a sound hopelessly dramatic, but I almost felt I was betraying the dreaming and the wondering that had really sustained me as a child.
Without imagination, without profoundly new thinking and potent ideas, our practice has no purpose.
왜 억지로 영어학원에 다니는 중학생 김동환이는 하라는 숙제는 안 하고 시키지도 않은 디자인 원서를 사전을 찾아가며 읽으려고 했을까?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포토샵을 설치해 뭘 만드려고 했을까?
어느 정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문장으로 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드는 행위는 꽤 오랫동안 나의 삶을 유지시켜준,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재미있는, 잘하는, 좋아하는 일을 할 것.
하드 스킬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를 잃지 말 것.
마지막 날, 산속의 밤은 고요했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빼고는 정말 완벽한 고요였다. 이곳에는 알람도, 오토바이도, 사람들도 없었다. 역삼의 외로운 고요와는 달랐다. 무언가에 안긴 듯 한, 아늑한 고요였다.
엄청난 깨달음과 득도의 순간은 없었다. 대신 잔잔한 분위기 속 회복과 영감이 있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몇 가지 생각들을 하산 전 마음에 담았다.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좋아하는, 재미있는, 이왕이면 잘하는 일을 할 것.
인생의 선택 지점에서는 무언가를 만들고 상상하는 행위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것.
멘탈 역시 체력과 똑같이 관리할 것.
금전적 무언가를 넘어 재능과 능력을 나누며 살 것.
각자만의 템포,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그렇게 마지막 나물밥을 먹고 중생은 다시 역삼으로 돌아오게 된다.
참 오자마자 러시아워 트래픽이 날 반겨준다. 테헤란로에서 6시에 양보란 없다. 분명 디지털 속세에서 살면서 또 걱정거리와 고민은 생길 것이고,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을 것이다. 번아웃과 삶의 위기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번 수련으로 스스로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 없는 인생이지만, 그런 불확실 속에서도 꾸물꾸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움직이는 그런 노력이 아름다움이고, 그런 과정 자체가 보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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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속세, 테헤란로 이웃 주민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나의 삶에 걱정보다는 나눔과 행복이 많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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