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환 Mar 21. 2021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눈물, 떨림, 움직임


감정을 움직인다는 것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 할 것인가?"

김환기, 1968년 1월 26일 일기


김환기 화백의 일기 중 일부입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아무리 거장 반열에 오른 화가라도 감정을 다루고,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현대미술을 다룬 책 '홀로 문을 두드리다'의 일부분을 빌려 말하자면 예술 작품이나, 현상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모두 결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마음과 부딪혔을 때 남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말이지만, 저는 그런 순간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1악장 후반부에 나오는 트릴에서의 떨림, 뉴욕 MoMA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무너지는 감정, 타국에서 잠 못 이루는 밤 들었던 '고향의 봄' 분명 무언가 부딪히는, 감정의 움직임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감정의 끝 눈물

어렸을 땐 눈물은 단순하게 고통, 슬픔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꼭 슬퍼야만 눈물이 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팝아트를 대표하는 그림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 있겠습니다. 묘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눈동자 속에는 고통, 슬픔보다는 다른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어책에서 다들 한 번쯤 보셨을, 문인 연암 박지원의 문집 중 '통곡할 만한 자리'에 의미심장한 내용이 나옵니다. 340년 전 저자는 기쁨, 분노, 슬픔, 사랑, 욕심 등 인간의 보편적인 일곱 가지 감정인 칠정(七情) 모두가 극에 이르면 울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그러한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이 크게 움직이고 떨리면 감정에 상관없이 모두 눈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 디자이너

눈물 나는 기획! 감동의 디자인! 뭔가 어색하죠(웃음). 아쉽게도 제가 업으로 삼고 있는 이 일로는 감동을 주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고민이 어느 정도 마음에 와닿기도 합니다. 직접적으로 대상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음악, 글과 달리 추상 혹은 구상적 회화는 마치 거울처럼 작용해 대상자가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해야 하기에 다른 예술에 비해 몰입하기 조금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저는 저시력자와 색맹을 배려하는 디자인부터 불편함과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디자인으로 감동보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그들의 삶에 임팩트를 남긴다는 것,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멋진 일입니다.




참고자료

로이 릭텐스타인 - 제니스 헨드릭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김환기 영원을 노래하다 - 환기미술관

홀로 문을 두드리다 - 인지난, 김태만

착한 디자인 - 김상규

Fintech, Behind The Simplicity - Toss

작가의 이전글 너와 나 사이의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