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평살이 Apr 27. 2021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를 보면서

삶의 아이러니처럼 보이는 미소만이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보았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에서 흥행으로나 작품성으로나 큰 기여를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칸 영화제 29회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하지요. 알려지다시피 마틴 스콜세지는 가장 최근의 작품 아이리시맨까지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해 왔습니다. 게다가 장르의 경계없이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성난 황소, 에비에이터, 휴고, 더 울프 오브 스트리트 사일런스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 이 시대의 천재적인 감독중에 하나라고 불려지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많이 연출한 장르를 압축해서 말한다면 범죄, 마피아, 스릴러가 될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뉴욕 뉴욕(1977), 좋은 친구들(1990), 갱스 오브 뉴욕(2002), 울프 오브 스트리트(2013), 아이리맨(2019)까지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공통적으로 스콜세지에게 있어서 어떤 상징성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그가 뉴욕 퀸의 코로나라는 도시에서 출생을 했고, 그 도시는 마피아를 포함한 범죄자들이 거주 했기 때문에 범죄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탈리아계 부부의 자녀로 이민자의 혈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뉴욕의 규정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부유한 뉴욕과 반대로 그렇지 않은 뉴욕 말입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사회환경은 위선적으로 비춰졌던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작가주의적 태도의 태동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년에 봉준호감독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스콜세지가 인터뷰나 혹은 책에서 밝힌 자신의 작가주의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지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가 개인적인 주관을 갖고 상업적인 면과 간격을 두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자 고군분투 했던 면모를 그의 영화철학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라는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이러한 점이 드러나고 있지요. 

마치 반쯤 미쳐버린 것 같은 주인공인 트래비스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사회의 만연하게 깔려 있는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구호를 갖고 사는 청년입니다. 그리고 어떤면에서는 자기 주장에 대한 일종의 당위를 강력하게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규정합니다. 


"매춘부, 깡패, 남창, 호모, 마약 중독자 등등 인간 말종들이다. 언젠간 저런 쓰레기를 씻어내릴 비가 쏟아질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가 되면서 그는 올빼미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밤새 운전을 하다가 잠이 오지 않아 포르노 극장을 전전긍긍하면서 잠을 청하기도 하지요. 그러던 중에 대통령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자 베시를 보고 트래비스의 대쉬 끝에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그가 일상적으로 관람하는 포르노 상영관에 가게 되면서 그러한 모습에 실망한 베시는 그를 떠나 버립니다. 그러던 중에 12살의 어린 창녀로 일하는 아이리스를 만나 그녀를 구출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매춘부를 포기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선자들, 즉 갱단이 갈 데가 없는 자신을 받아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트래비스는 '언젠간'을 수행하기 위해 차기 대통령이 될 위원인 찰스 팔렌타인을 암살하기 위해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깎고, 선거 현장에 나가게 됩니다. 

왜 찰스를 암살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선 많은 논란과 모호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베시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가 존경하고 있었던 찰스에게 울분를 토해냄으로써 자신의 고독과 소외감을 해소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덧붙여서 모히칸 머리는 베트남 전쟁의 관습이라고 합니다) 트래비스는 찰스 암살을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갑작스레 아이리스가 있는 매춘굴로 길을 나섭니다. 아이리스를 관리하는 조직원인 매튜를 총으로 쏴버리고, 매춘굴 안에 돈을 관리하는 갱, 아이리스와 매춘을 하고 있었던 갱, 3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총을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총알이 없어 쇼파에 앉아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 경찰이 들어와 상황이 정리가 됩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트래비스는 아이리스를 매춘으로부터 구출한 영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트래비스의 택시에 그가 사모했던 베시가 택시에 타고, 베시가 트래비스의 영웅담을 신문에서 봤다며 안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요금을 받지 않고, 그녀를 백미러로 보고 있는 그의 미소와 함께 뉴욕 밤거리가 은은하게 빛을 내는 장면으로 영화가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는 인과관계가 추동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실 트래비스라는 인물이 사회를 깊숙하게 관조하면서 객관적인 성찰을 하는 경우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될 사람에 정책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주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악의 근절에 대한 외침을 그저 무의식적으로 호소할 뿐입니다. 특히 찰스를 암살하는 결단에는 큰 계기가 존재하지 않지요. 이는 베트남전과 같은 전쟁터에서 '선'과 '악'의 분별없이 싸워왔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연약한 모습이라고 할까요. 트래비스의 황폐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충동적인 성적욕구였고, 옆에서 대화해 줄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섹스'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을 보아 후자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영화는 트래비스의 아이러니에 대한 공감을 관객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트래비스안에 요동치는 그 공허한 마음에는 보편적인 정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선인지, 악인지를 인지 하지 못한채 하는 생각들과 행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이리스를 구원하고 싶은 트래비스에 마음에 화답하지 못하는 것 같은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트래비스는 마침내 미소를 얻었습니다. 삶의 아이러니의 미소를. 아니 아이러니처럼 보이는 미소를.

P.S 

뉴욕의 밤거리를 시종일관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음악은 트래비스와 공허하게 화음을 이룹니다. 음악이 흐를때에 보통은 트래비스의 표정에는 활기가 없습니다. 마지막이 되서야 환하게 웃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만이 뉴욕의 밤거리를 함께 비추고 있지요.






작가의 이전글 이승원감독의 세자매(2020)를 보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