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아나운서 시선 끝의 방송국
방송을 시작한 지도 어언 3주 차가 됐다. 말이 3주지 벌써 방송을 14번 했다. 주변에서 농담조로 돈 내고 방송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진짜 방송국에 들어오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간 시청 아나운서와 시의회 아나운서, 사내 아나운서와 행사 진행자 등 다양한 방송 경험을 해왔지만, 방송국은 차원이 달랐다. 오늘은 따끈따끈 신입 아나운서로 요즘 배우고 있는 점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실 아나운서로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물으면 '협력'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내가 생각하던 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협력과 책임감이 필요했다.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피디님부터 작가님들, 감독님들 등등 정말 수십 명이 함께 작업한다. 그전에는 조직에서 일하더라도 '내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자!'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1분 1초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아침방송을 보고 있으면, 나도 타인의 타임라인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방송국 안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다다다 달리는 것부터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 외신 기사 마감을 좀 더 빨리 당기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분업의 향연 속에서 나도 열심히 발맞추는 중.
더불어 1분 1초가 급하게 돌아가는 아침이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오랜 시간 헤메를 받을 수 없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거의 25분 만에 헤메가 완성되는데, 분장 선생님 속도는 정말 놀랍다... 그렇다고 급하게 헤메 하시는 건 아닌데, 손이 굉장히 빠르셔서 아직도 속도감에 놀라는 중.
첫 방송에 투입된 날 정말 멘붕이었다. 생방송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간 2번의 리허설 때는 원고를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읽어볼 수 있게 해주셨었다. 그런데 실전은 달랐다. 방송 시작 10분 전에 완성된 원고를 받아볼 수 있었다. 뉴스부터 대담과 외신, 날씨 등 모든 원고를 10분 안에 읽어야 해서 첫 방송에서는 말 그대로 긴장됐다. 원고 숙지가 덜 됐다는 생각을 하니 더 심장이 쿵쾅거렸던 거 같다. 예전에 한 스터디에서 예독 시간을 5분만 갖고 장르부터 뉴스까지 모든 원고를 촬영하는 커리큘럼으로 했었는데, 그때 스터디가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스터디 하기 전에 미리 뉴스 안 읽어가고 스터디에 가서 급하게 읽었던 과거의 나도 조금 칭찬 ^^...
큐시트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방송 길이를 고려하면서 대담 진행 질문 개수도 계속 바뀌고, 뉴스도 큐시트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뉴스 중간에 새로운 원고를 받기도 하고 뉴스가 빠지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모든 흐름을 인이어로 듣고 있어야 했다. 무예독으로 읽는 뉴스는 참 짜릿했다 ㅎㅎ
또 하나, 단신과 리포트 처리 방법이 달랐다. 앵커멘트는 프롬을 보고 쭉 하면 되지만, 단신은 첫 문단만 프롬에 나오고 그다음 문단부터는 원고를 보고 읽어야 하기에 내가 계속 손에 쥔 원고를 큐시트에 맞춰 들어야 했다. 정말 다행히도 스피치코리아에서 이런 수업을 종종 해서 현장에 투입돼서는 잘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프롬 문제가 있을 때도 있는데, 손에 쥔 원고로 빨리 잘 확인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십년감수!
방송을 시작한 이후 최 앵커님께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3주 만에 정말 많이 성장했다. 오프닝 제스처부터, 예고 딸 때의 음역대와 속도감, 코너별 분위기와 제스처 등 정말 많은 것을 챙겨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 시청 아나운서로 일하던 작년 영상과 비교하더라도 정말 많이 성장했고 바뀌었다. 원래 굉장히 차분하게 잔잔하게 뉴스를 리딩 하는 편인데, '아침 방송'에 맞게 임하고 있다. 차분하게 잘 리딩을 소화해 내는 데 방점을 두는 게 아니라, 아침에 소식을 잘 전하는 것에 방점을 두며 임하니 리딩이 또 달라졌다.
대담 진행할 땐 원고를 많이 수정한다. 조금 더 입말로 고쳐서 표현하는 중이다. 이것도 최 앵커님 진행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등'은 '같이'로, '했으며'는 '했고' 등으로 구어체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또 변화하는 수치에 민감히 반응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계속 증가세를 보이는데 매일 아침 원고를 보다 보면 수치가 다르게 표기돼있는 걸 확인할 때도 있다. 이런 정보 디테일도 확실한 정보인지 계속 팔로우 업을 해야 한다는 걸 배우는 요즘이다.
아나운서 준비생을 거치면 발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이다. 기존 스터디에서는 '받침을 끝까지 해주세요' 등등 정말 많은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는데, 방송 시작 후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발음은 'ㅗ', 'ㅜ'이다. '오'와 '우' 입모양만 확실히 잡아서 잘 발음해 주니 발음이 더 명확하고 명쾌하게 되기 시작했다. 스코 수업에서 호정쌤이 항상 'ㅗ', 'ㅜ'부터 모든 발음은 입모양을 만들고 조음점을 정확히 찾아서 발음해야 한다고 했다. 그걸 이제 매일 더 열심히 실천 중이다 하하하
워라벨 최상이다. 아침 7:30에 출근해서 10시에 생방 후 11:30에 퇴근한다. 짜릿하다. 오전에 근무 마치고 모두가 점심 먹을 때 퇴근하는 삶이란..! 그래서 오후에는 피부샵도 가고, 네일샵부터 맛집 탐방에, 낮잠도 자고, HSK 학원도 가고 삶을 말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 아직 전에 하던 계약 건들이 만료되지 않아서 시의회 촬영에 여러 촬영도 진행 중인데, 이른 퇴근 후 아나운서가 아닌 나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은 때가 있다. 스코 수업 때 한 번은 큐시트에 뉴스 원고를 다 뽑아서, 최창은 쌤이랑 투 앵커로 뉴스 진행 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호정 쌤이 피디님 역할을 맡아서 인이어로 말하는 것처럼 뉴스 중간중간 수정 사항을 계속 알려주는 식으로 진행됐던 수업이었다. 그날, 호정 쌤이 뉴스 하나를 뺀다는 신호를 주셨고, 바로 '마지막 뉴스입니다! 뉴스 마칠게요'라고 말해서 단신을 읽다가 내가 멈춘 적이 있었다. 이렇게 하자마자 쌤들이 엄청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뉴스라는 신호가 인이어에서 들린다 하더라도 내가 뉴스 마지막 문단까지 마무리를 짓지 않고 멈추면 그냥 방송 사고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때는 '아 그러넹' 하고는 넘어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하다. 이 수업이 없었다면 난 여기서 '긴가민가'한 순간이 많았을 거 같다. 그때 수업이 없었다면 생방송 중에 사고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인이어로 뉴스 수정이나 대담 진행 수정을 요청하는 말을 듣고 말을 바로 멈추는 등 '과거의 내 애티튜드'라면 정말 큰일 났을 거 같다.
여튼 참 감사한 날들이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다분히 노력하고 매번 초심으로 임해야겠다. 최 앵커님이 매주 금요일에 항상 '이번 주도 잘 넘어갔네요!'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 매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큰 사고 없이 한 주 한 주 평탄히 방송이 마무리됨에 항상 감사하다. 자만하지 말고 항상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가는 사람이 돼야겠다. 아자아자!